2015년 12월 14일 월요일, 이슬비
오늘은 ‘한신여동문회’ 총회가 안상님 언니 댁에서 있다. 창경궁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빨래터’ 가기 직전에 집이 있다. 추적거리는 빗속에 올려다보는 창덕궁 얽히고설킨 지붕들은 서로를 지탱해주며, 궁안에서 일어났을 참담하고 아름답고 오래고도 가까운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서 있다. 저 궁 안에서는 왕가와 그 여인들이 온갖 간계와 숨 막히던 암투를 벌여왔겠지만 그 중 어느 인간도 저 지붕들의 주인으로 오늘까지 생명을 누리는 사람은 없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지금도 권좌를 누리며 거들먹거리는 자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짚어 본다. 저울에 달면 다 함량 부족이다.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너의 날수를 헤아려 끝냈다!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 네 나라를 갈라서 넘겼다!”) 보스코가 1979년 10월호 「경향잡지」에 예언자 다니엘(5장)을 인용하며 유신정권의 종말을 예고한 글이 떠오른다. 그 기세당당하던 자들의 성세도 총 한 방으로 끝장난 역사를 돌이켜 너무 속 끓여서는 안 되겠지만, 어리석은 인간이어선지 시국을 두고 이리도 내 마음이 안 좋다.
안상님 언니 댁에 30명 가까운 동문이 모였다. 우리 기수에서는 한국염 목사와 나만 참석했다. (작년만 해도 다 모였는데 김복련은 은퇴한 남편 목사 따라 제주로 내려가 정착했고, 이혜신 목사는 아버지가 입원하셔서, 황성숙 목사는 어머니가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임순혜는 요즘 개떡 같아진 매춘언론을 눈 부라리고 감시하느라 못 왔다.) 전에는 우이동 우리 집에서도 모임을 가졌지만 내가 지리산으로 내려간 뒤에는 겨우 짬내어 참석하는 게 고작이다. 언니 남편 박근원 박사님이 편찮으셨다는데도 선배와 아우들을 살피는 언니의 마음이 참 살갑다.
이문우 회장이 예배를 인도하고, 원금자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유근숙 부회장이 야무지게 모임을 준비해서 선배언니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 돌아가신 안계희, 최옥실 언니, 구춘희 언니에 대한 회고와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성격이 급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던 안계희 언니는 강성 이미지 뒤에 끝없이 부드럽고 착했던 인정을 감춘 분이었다. 강성혜는 그 언니가 자기 시집갈 적에 엄마처럼 손수 꿰매서 이불을 해주고, 공부할 때는 당신 방을 내 주면서 돌봐준 추억으로 눈물을 훔쳤다. 최옥실 언니의 추억담은 김정희 언니가 들려주었는데 “좋은 언니, 진짜 언니 같은 언니”라는 평이었다. 나에게는 이 언니에 대한 기억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구춘희 언니는 70년대 군사독재 하에서 교회여성연합회 총무를 하면서 그 숱한 구속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했고 평화운동, 반핵운동도 앞장선 분이다. 엔지니어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이민 가서도 한국의 민주화 문제를 국제사회 관심사로 이끌어내는데 혼신을 다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언니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빌면서 아우들이 ‘한신 사람’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우는 자리였다.
4시가 넘어 집 방향이 같은 오성애와 한선희랑 함께 전철을 탔다. 선희는 미아사거리역, 나는 수유역, 성애는 쌍문역에서 내린다. 흩어져 살아도 뜻이 같고 나라를 염려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야말로 한신이 우리에게 심어준 신앙과 나라사랑이라는 근본이 같아서다. 요즘은 시국관이 다르면 친지들 사이에서도 원수처럼 살기를 내뿜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집에 돌아와서는 내일 맞을 손님들에게 음식을 준비하러 저녁 늦게까지 바빴다. 보스코는 혼자서 점심을 먹고 외출하여 집에 없었다. 최근에 보스코의 역작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을 펴낸 분도출판사 직원들을 격려하러 장충동을 방문했고, 오늘도 광화문에서 ‘시국기도회’를 개최하는 정의구현사제단 단장 신부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광장에서 저녁 미사를 하고서 10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왔다. 몸도 힘들고 맘도 곤한지 그는 먼저 잠자리에 들고 나 혼자서 부엌에서 자정을 넘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