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하느님의 사람들'을 찾아나선 순례자들
  • 전순란
  • 등록 2016-01-18 16:52:18
  • 수정 2016-01-20 10:36:22

기사수정

2016년 1월 17일 일요일, 흐리다 비




성심원 뜰에 바람이 휘젓고 지나간다. 경호강이 불어 올리는 차디찬 강바람이다. 지난 일요일부터 열흘 안에 네 분의 나환우 노인들이 그 곤고한 인생의 옷을 벗어 한 켠에 차곡차곡 개켜두고 환한 얼굴로 열 손가략, 열 발가락, 오똑한 코와 빛나는 두 눈으로 다시 태어나 당신들의 평생을 함께 절름거리며 걸어오셨을 분의 나라에 들어갔다. 그분의 나라에서는 뚜벅뚜벅 걸어들어 가니까 마지막으로 환우들의 두 발이 되어준 전동 휠체어들이 성당채 현관에 덩그렇게 남겨져들 있다.




주일미사를 집전하시는 유신부님이 오늘도 퍽 피곤해 보였다. 저 환우들과 이승을 예수님의 발이되어 함께 걸어가 주시던 신부님은 어젯밤에도 열두 시 넘어 한 친구를 배웅하고서 그 슬픔에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울리는 음성으로 미사를 드리신다.



나는 그분이 노래로 부르는 사도신경을 좋아한다. “믿나이다! 믿나이다!”로 후렴을 우리가 부르고 그분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힘차게 사도신경 줄거리를 노래하노라면, 웬지 그분이 믿는 창조주를 나도 꼭 믿어야겠고, 그분이 믿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음을 그리고 부활하셨음을또한 믿어야겠다는 의무감이 든다.


“보리피리 불며불며” 산청땅으로 흘러와 경호강을 건너오던 ‘문둥이’들에게, “내 살은 구더기와 흙먼지로 뒤덮이고 내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른다”(욥기7,5)며 천형(天刑)이라 절망하던 사람들에게,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욥기 19, 25-27)는 희망을 일깨워온 저 허연 수염의 선교사 말을 안 믿으면 우리에게 구원은 알쩔 없겠다는 경고를 듣는 듯하다.



그래서 성심원 미사는 늘 감격스럽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시선을 이곳에서 봉사하는 수도자들과 직원들의 언행에서 배울 수 있어 그 또한 좋다. 오늘 복음처럼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독 속에 퍼 넣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분이라면 맹물 같은 우리 삶도 고급 포도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닐 게다. 



주일이면 성당순례를 다니는 통영 형부가 오늘은 성심원으로 순례를 왔다. 유난히 민감한 코여서 미사 중에 나환우들에게서 나는 싸~한 냄새가 코를 스칠 때마다 저 환우들의 고통이 체감되더란다. 아직도 손발에 붕대를 감고 문드러진 손을 주무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명의 질긴 심줄에 울컥하더란다. 벽안의 선교사가 청춘의 나이로 찾아와서 이 땅에서 제일 버림받은 사람들 틈에서 백발로 늙어간 깊은 눈길에서도 울컥해지던란다.



미사 후 산청 읍내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미루네 매장에서 차와 다과를 했다. 대기업의 구매부서에서 오랫동안 책임자로 일한 형부는 한국사회 속의 비리와 부패, 특히 유통구조 속에 속속들이 얽힌 부패의 사슬에 치떨리는 경험이 많았던 것 같다.


남한만 아니고, 한반도만 아니고, 지구 위에 시커먼 구름이 깊이 드리우고 악마가 불길한 입김을 불어대고, 온 세상이 “돈!돈!돈!”하면서 미쳐 날뛰고, 돈있고 나이먹고 배운 사람일수록 증오와 이기심과 살의가 가득 찬 ‘얼음 심장’으로 변신해가는 우리사회를 바라볼수록, 교회의 품에서나마 하느님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가보다.



빵고신부와 영상통화를 했다. 숙제하느라 주말에도 방안에만 틀어박혀 고생하지만 우리 아들답게 여전히 밝고 명랑하다. 남해 형부가 '좋은 신부들의 미사를 보러' 성당을 순례하면서 ‘하느님의 사람들을 찾아내고' 싶듯이, 나도 내 아들이 착하고 소통하는 사제이기를 아침마다, 아니 하루 종일 기도한다.




밤에는 크리스마스 식탁보와 냅킨을 마저 다렸다. 이렇게 예수성탄도 끝나고 연중시기의 거친 시간 속으로 들어섰으니 내가 주님으로 믿는 분의 손을 꼭 붙잡고 “믿나이다! 믿나이다!”할 수밖에...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