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의 항해를 인도하던 큰 별 하나가 졌다. 그 별은 바로 성공회대 고 신영복 교수이다. 필자는 외사촌에게서 빌린 고인의 책 ‘담론-마지막강의’를 아직 못 읽었다. 자꾸 미루고 있던 차에 며칠 전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죄송했다.
고 신영복 교수는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고 지식인이었다. 활동적인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조용한 모습으로 우리 시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독특한 서예는 소주 이름이 될 정도였 가수 안치환은 고인의 글 ‘처음처럼’을 노래로 만들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자 우리 시대의 스승들이 몇 분 떠올랐다. 필자가 살고 있는 영남지역에는 영남3현이라고 불리는 분들이 계셨다. 이오덕 선생, 권정생 선생, 전우익 선생 이 세분이 현재 국가폭력의 지지기반인 영남지역에 계셨다. 필자는 이 세분 가운데 권정생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 안동의 농촌 개신교회당 종지기 아저씨인 그의 글들이 현재까지도 타이르는 듯하다. (벗이었던 정호경 신부는 몇 년 후에 권정생 선생을 따라갔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까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의 사상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스님도 생각난다.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의 사회참여와 사회적 희생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말년엔 가끔씩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겸손하고 검소한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남한 가톨릭교회 역사에서는 그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그의 장례미사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고 중계방송까지 할 정도였다.
법정스님도 김수환 추기경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가난한 생활, 즉 무소유의 삶은 불자, 그리스도인, 무(無)신앙인할 것 없이 모두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법정스님의 장례는 검소하게 치러졌고 심지어 화장을 한 후 사리를 찾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신영복 교수가 세상을 떠나고 갑자기 고 리영희 선생도 생각난다. 리영희 선생은 한국 지식인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화참여 지식인들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그는 오로지 진실을 바라보며 남한 사회의 우상인 미국사대주의와 반공파시즘에 맞섰다. 뇌출혈로 인해 몸상태가 나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나가 발언 하는 등 죽기 전까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았다.
20세기 말 대한민국에서 큰 스승들이 세상을 떠났다.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같은 성직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구경북지역에는 권정생과 이오덕, 전우익 같은 영남3현 같은 분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리영희 선생 같은 언론인은 이제 더 이상 없다. 법정스님 같은 자비와 무소유로 살아가는 승려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운동에 몸을 담았고, 해방 후 유교에서 만큼은 친일잔재를 청산하려고 노력한 심산 김창숙 같은 유학자와 유생들도 보이지 않는다. (일제잔재인 호주제를 전통적인 제도로 둔갑시켜 폐지를 반대하고 산골짜기에서 세상을 등진 채 도덕을 논하는 사람들을 어찌 유생이라 할 수 있는가)
지금 소위 지식인이란 사람들은 형편없다. 정치를 너무 경박하게 하는 바람에 욕을 먹는 사람도 있고, 정치계로 진출해서 자신의 신념을 배신하는 사람도 있다. 중도를 표방한다면서 파시즘 성향의 인사들을 등용하고 보수와 파시즘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사람도 있다.
돈이라는 가치가 너무 강해져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 길을 묻지 않는 시대다. 텔레비전에는 인문학을 논하는 사람보다 경영학이나 경제학자,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들이 나와 사회문제를 진단하는 시대가 됐다. 심지어 서점에서는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쓴 자기계발서들이 더 잘 팔린다. 이런 ‘학자’란 사람들은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좁히려는 사람들이다. 개인의 노력을 강조해 사회문제에 눈을 감으라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2010년대 한국사회는 스승뿐만 아니라 철학과 사상까지 잃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우리는 스승들의 죽음을 마냥 슬퍼하며 무기력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스승들을 기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스승의 사상을 진리로 보고 다른 사상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건 우상숭배이다. 스승은 하느님이 아니기에 시대에 맞지 않거나 나의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거부하거나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