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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윤리, 기원과 그 차이
  • 이기우
  • 등록 2025-08-01 13: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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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폰소 마리아 데 구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2025.08.01) : 레위 23,1-37; 마태 13,54-58



신앙과 윤리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믿고 지킬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믿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지키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 길이 없습니다.


오늘은 18세기 이태리에서 활약했던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그는 윤리신학의 대가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윤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이를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비추는 프리즘으로 삼겠습니다.


윤리의 기초는 신앙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고, 그분이 보내신 구세주를 받아들이며, 구세주께서 내려주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천주 존재, 구세주의 강생구속, 삼위일체의 신앙 진리에서 윤리가 나옵니다.


윤리의 공리는 선과 악을 식별하여 선을 추구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 귀결은 선행에 상을 주고 악행에 벌을 주는 상선벌악(賞善罰惡)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본성상 양심의 질서로 부여하신 진리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를 하나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문명사회의 기본질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규정하고 운영하는 원리가, 사회의 공동선에 기여한 사람을 칭송하여 상을 주고, 그 반대로 공동선을 어지럽히고 다른 이들을 괴롭힌 사람을 비난하여 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선피악(行善避惡)이라는 이 기본 윤리 질서의 초점은 사회의 공동선에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공동선을 이룩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질서로서 사추덕(四樞德)이 있습니다. 이는 집에 비유하자면 기반을 이루는 네 군데 주춧돌과도 같은 것으로서, 지혜와 정의와 용기와 절제의 덕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러한 윤리질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일차 관문입니다. 이 윤리질서를 집대성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하느님께 대해 지켜야 할 대신윤리(對神倫理)  세 가지와 인간에 대해 지켜야 할 대인윤리(對人倫理)  일곱 가지를 이미 지금으로부터 삼천 년도 넘는 그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하느님께로부터 부여 받았습니다.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도 이는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으로 존중 받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이러한 윤리질서에 목표를 부여하셨습니다. 공동선의 목표는 최고선이며 이는 하느님께 이르는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행선피악의 양심으로 지혜와 정의와 용기와 절제의 덕은 향주덕을 향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이를 수 있는 길로서 가르치시고 모범을 보여주신 바를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을 수 있는 향주삼덕(向主三德)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십계명에 담긴 대신윤리와 대인윤리의 차원이 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을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동격에 놓으시고 이 두 가지 일이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이며 똑같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교의 십계명과 그리스도교의 십계명은 마치 기원 전의 역사와 기원 후의 역사가 달라진 것처럼 해석이 달라졌습니다. 행선피악과 사추덕만으로가 아니라 향주삼덕으로,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순차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계명으로서가 아니라 단일한 계명으로서 실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을 가르치시며 이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한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셨다는 데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안식일 계명을 둘러싸고 예수님께 일어났던 일을 돌이켜보면, 그저 일주일에 하루동안 하던 일을 쉬고 종교적인 제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그분의 관심사에 따라 좋고 옳은 일을 해야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하느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삶이 요청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흠숭하기 위해서도 미신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을, 그것도 존중받지 못하고 차별받는 이웃을 하느님처럼 소중하게 돌보는 삶이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과 실천은 대신윤리인 상삼계(上三戒)에만 국한 것이 아닙니다. 대인윤리인 하칠계(下七戒)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다만 부모를 공경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가족이기주의를 넘어 가정적 불행을 겪고 있는 이들이나 곤경에 처한 가정을 돌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간음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성과 사랑과 생명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죽이지 않거나 다른 이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생명을 존중하고 노동과 경제의 인간화를 이룩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말과 글을 진실되이 사용하여 공동체의 의사소통이 하느님 나라에로 향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의 일곱 가지 계명이 하느님 사랑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들에게는 행선피악의 기준에 따른 윤리적 행동질서를 기대하고 요구하면서도 자신은 이를 넘어서서 향주삼덕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성찰하고 채찍질하는 더 높은 신앙적 윤리의식이 요구됩니다. 윤리와 신앙은 그래서 차이가 있고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은 모세의 가르침을 따르는 나머지 이처럼 더 높은 윤리 의식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가르침에 놀라고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배척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오늘 미사의 전례적 취지, 즉 현대 가톨릭 윤리신학을 집대성한 알폰소 성인을 기리는 뜻에 따라서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오늘 독서인 레위기는 유다인 가정에서 아이들이 글자를 익히면 제일 먼저 읽게 하는 성서라고 합니다. 유다인 어린이들은 레위기를 읽으면서 하느님의 거룩한 가치와 그와 다른 세속적 가치를 구분하는 안목을 배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종 제사 규칙으로 빼곡한 지루한 레위기를 먼저 읽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로서는 신앙에 따라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일 이상의 중요한 일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윤리로 파생되었습니다.


행선피악의 윤리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이 윤리는 지혜와 정의와 용기와 절제의 사추덕으로 요약됩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진리를 향한 지혜를 추구해야 하고, 약자들에게 정의로워야 하며, 선행을 하기 위해 용기를 발휘해야 함과 동시에 자기가 지닌 모든 것을 사용함에 있어서 절제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명 사회가 요구하는 필수 교양입니다. 비록 강대국들이 어지럽히는 국제 질서에서는 이 같은 필수 윤리가 실현되기가 요원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나라들의 사회 현실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이 필수 교양이 존경의 척도입니다.


만일 이 필수적인 사추덕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은 존경을 거두고 멸시와 조롱의 시선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이런 현실에 빗대어 예수님께서는 그물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물고기는 밖으로 던져 버린다.”(마태 13,48)는 것입니다. 이렇듯 엄정한 현실은 바로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양심을 통해서 내리고 계시는 심판의 현실입니다. 일시적으로는 권세나 재물 같은 힘을 가진 자들이 득세할 수는 있어도 역사의 대세는 하느님의 뜻대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고대와 중세, 근세와 현대에서 세계 인류의 역사를 좌지우지 해 온 패권 국가들의 운명도 그렇게 부평초처럼 바뀌어 왔습니다. 단지 시간과 기간이 좀 더 길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역사신학입니다.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亦天者)는 망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공자와 더불어 유학의 시조로 추앙받는 맹자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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