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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추녀 밑 쌓이는 달빛”
  • 전순란
  • 등록 2016-02-08 14: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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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7일 일요일, 맑음


오늘은 많은 이들이 길 위에서 긴 하루를 보내고 있으리. 그리고 이 시간쯤엔 자식들 키우느라 게처럼 속을 모조리 뽑히고 껍질만 남은 어머니들의 엷은 미소를 이불 삼아 고향집 아랫목에서들 평안한 잠을 재촉하고 있으리. 할머니 손에서 자란 엽이도 할머니가 펴주신 요에서 환~한 할머니 웃음을 얼굴에 받으며 잠들어 있겠지...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어 갈 곳도 없는 사람들, 기다릴 사람이 없어서 맘 둘 곳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이석기의원사건’처럼 공안당국과 사법부의 기막힌 사슬에 얽혀 쇠창살 너머로 칠흑 같은 그믐밤 하늘에서도 별을 세는 사람들의 눈길에도 아아,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내일 오빠네 집에서 설상에 올라갈 나물을 마련하는 나를 도와 마늘을 까던 보스코의 비명. “여보, 이 마늘통엔 식구가 열댓 명은 돼!” 토종마늘(정옥씨가 보낸) 그 손톱만큼 잘디잔 쪽들을 일일이 까면서 하던 말이지만 그래도 “고향집 마늘밭에 쌓인 눈”을 추억하는 마음들은 따스한 시절을 더듬고 있으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 집 마당 귀 바람은 잠을 잔다 (박용래, “겨울밤”)



오늘 우이성당에서 네 번째로 배출된(그러니까 수유성당에서 분리되어 나온 뒤 네번째) 송학영 신부의 첫 미사가 있었다. 첫 번째는 빵고의 대부이신 손회장님 아들 손진석 신부(빵기의 동창), 둘째는 우이동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 다닌 빵고신부, 세 번째는 한국외방선교회 김베드로 신부, 그리고 오늘 송시몬신부로 ‘성소(聖召)’가 이어지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신학교 입학 추천서를 써주는 본당신부가 그 신학생의 ‘아버지신부’가 되어 줄곧 보살피는 전통이 있다. 오늘도 10년 전 우이성당 주임으로 계시던 이영우 신부님이 와서 새 신부의 첫 미사를 들러리섰다. 빵고의 첫 미사도 성대하게 치러 주신 분인데 당신도 어언 서품 25주년이란다.


새 사제에게 주는 훈계로는 “나는 임금님을 모셔가는 기마(騎馬)였는데 사람들이 임금님께 환호하자 나한테 하는 줄로 알고 건방지게 힝힝거리던 지난날이 부끄럽더라”, “사람의 음성에는 그 사람 마음이 담겨 있는 법. 사제의 목소리에는 주님의 음성이 담겨야 하거늘, 자꾸만 옹졸한 인간의 쇳소리만 나와서 교우들에게 죄스럽더라”고 하면서 새 사제더러 겸허하게 살라고 타일렀다.


내 옆에 앉은 인재근 의원도 하객으로 와서 함께 축원해 주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새 신부의 형 원영이는 빵기, 빵고와 함께 이 성당의 청년성가대를 했던 젊은이여서 눈에 익었다. 그의 세 살배기 아들이 악을 써서 이영우 신부님의 강론을 끊고 말았다. “그래, 그래 미안하다. 이제 그만 할 게.”라며 신부님의 짧은 강론을 그나마 중단시킨 저 떼쟁이가 먼 훗날 제 삼촌을 뒤이어 사제가 되고 오늘 제 울음소리로 끊어놓은 이신부님 강론을 뒤이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저녁에 한국염 목사 부부가 들렀다. 남편 최목사님은 방콕을 방문하고 오늘 오전에 귀국한 길이었다. 외국여행 1000만을 돌파한 한국사회가 태국, 네팔, 미얀마 등의 제3세계를 제대로 방문하며 그곳 사람들과 문화와 사회를 만나는 (몸도 쉬면서)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러 다녀온 길이란다.


민중교회 목회와 외국인 노동자 의료문제로 평생을 보낸 뒤 은퇴를 하고서도 ‘공정무역운동’의 일환으로 동남아 저개발국의 주민들에게 커피를 생산하게 지원하고 그렇게 생산된 커피를 제값에 사들여 동남아 젊은이들과 함께 취급하는, 그야말로 ‘커피 볶는’ 목사님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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