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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꼭 백 살까지만 살아요, 응? 더도 말고 백 살까지만”
  • 전순란
  • 등록 2016-02-10 13:15:47
  • 수정 2016-02-10 13: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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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8일 월요일, 설날 맑음


엊저녁 우리 차를 골목 끝까지 대문께로 바짝 끌어다 세웠다, 오늘 아침 동생들이 도착하는 대로 차를 세울 수 있게. 호천에게 (엄마를 모시고) 어디 쯤 오느냐 묻고 우리 골목에 차를 세우라고 했다. “응, 그러려고 내가 일 년치 주차비 낸 거 알지?” “응, 맞아, 넌 내 동생이니까 꽁짜야.” 어려서도 그렇지만 형제간은 목소리만 들어도 좋다. 갓난이 시절부터 시작해서 일평생 가장 가까이, 가장 오래, 가장 속속들이 알면서 함께 사는 타인이 형제간이 아니던가?


아침 8시 화전에서 출발한 호연이가 먼저 도착하고 호천이도 도착했다. 이렇게 두 아우를 거느리고 내가 맡은 나물과 물김치, 새싹 채소, 한과를 챙기고 각 집에 줄 선물들도 일일이 쇼핑백에 나눠 동생들에게 들리고, 엄마가 와 계신 오빠네 집으로 걸어내려가는 기쁨!



설날 예배 


8시 30분에 ‘설날예배’를 드렸다. ‘성서방’은 대표기도로 “엄마와 온 가족이 몸 성히 보낸 한 해”를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오빠는 설교로 “올해는 나눔을 실천하자! 우리가 그토록 하느님께 많이 받았으니 아껴서 제3세계를 돕자!”는 말로 형제들을 격려하였다. 짠돌이로 소문난 오빠가 마을버스를 안 타고 수유역까지 자전거로 오가는 까닭은 그렇게 6만원 버스비 아껴 동남아에 보내기 위함이다. 대학시절 장학금 받았노라고 뻐기면서도 사회생활 하면서 젊은이 하나도 돕지 않는 인간은 파렴치한이라는 역설도 했다. 덕분에 나는 세 형제에게 ‘굿네이버스’ 가입을 주문할 수 있었다.


예배 후 네 형제가 엄마에게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드리고 형제간에도 합동으로 세배를 하였다. 그 동안 들어오는 모든 돈을 교회에만 갖다 바치시던 엄마가 교회도 못 가시는 지금은 어디에 돈을 쓰시는지 궁금하지만 뱃속에서 안 나오겠다고 버티는 아기마저도 “아가야, 돈 줄게 빨리 나오렴!”하며 5만원짜리 흔들어보이면 대뜸 팔뚝부터 뻗으면서 서둘러 나온다는 세상이라니...




밥상 앞에서 “우리 다섯 남매가 건강하고 먹고 살만하고 큰 탈 없는 것”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엄마(95세)의 목소리가 여전히 쩌렁쩌렁하다. 저 모두가 당신의 ‘기도빨’이라는 사실은 엄마와 우리 다섯, 그러니까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엄마, 꼭 백 살까지만 살아요, 응? 더도 말고 백 살까지만.”이라는 호천의 축원에 엄마도 깔깔 웃으시며 “그래, 꼭 5년 남았구나.”하신다. 호천이가 아침저녁 열심히 팔뚝운동을 하는 까닭은 우리 형제들을 모조리 묻어주고 떠나야 할 것 같아서 힘을 기르는 중이란다. 제발 치매 안 걸리고 잔병 안 앓고 편히 죽기만 하라는 당부다.


“요즘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상가에서 우는 자식들을 못 봐요. 다들 살만큼 살고 8, 90에 가시니 울 일이 없어요. 우리 모두 웃으며 떠납시다. 살만큼 살다 하느님 나라로 직행하는 터에 울 일이 뭐 있어요?”


"너, 굿네이버스 가입할 거야, 안 할 거야?"


순행네만 빼놓고 네 형제가 다 모여 엄마를 모시고 아침과 점심을 함께 먹는 설날은 단지 명절(名節)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마음이 기쁘고 밝은 명절(明節)임에 틀림없다. 빵기와 빵고가 제네바와 로마에서 스카이프 전화를 해 와서 두 손주가 증조할머니께 세배를 드리고, (외삼촌) 할아버지들, (외숙모)할머니들도 얼굴을 보면서 세배를 드렸다.


3시가 넘어 오빠는 연남동으로 혼자 남으신 장인께 세배를 드리러 가고, 호천네는 엄마를 모시고 모래내로 떠나고, 지난달 장모님이 마저 돌아가신 호연은 맏사위인 자기 집으로 모일 처제네들을 맞으러 화전으로 떠나고 우리 부부는 집으로 올라오고...어르신으로는 울 엄마와 오빠네 장인만 생존해 계신다. 이렇게 설날이 갔다.


엄마의 세뱃돈 결산


올케 언니가 멸치를 한 상자를 설빔으로 줘서 집에 돌아와 오후 내내 머리와 ‘똥’을 떼어내서 멸치 한 포를 다 손질했다. 설날이 이러니 올해도 난 이렇게 음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점괘다. 책상머리에 앉아 설날에도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 저 보스코 역시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 해가 되리라는 운수를 예고한다. 라디오에서 내가 즐겨듣는 ‘세계의 모든 음악’이 흘러나오고...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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