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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사순 제1주일 독서·복음 해설
  • 김수복
  • 등록 2016-02-13 10: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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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신명 26,4-10)

<선택받은 하느님 백성의 신앙고백>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사제가 너희 손에서 광주리를 받아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시편(90)

주님, 환난 가운데 저와 함께 계시옵소서

  

제2독서(로마 10,8-13)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


형제 여러분,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대가 예수님께서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루카 4,1-13)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가신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 사순 제1주일 ~ 독서·복음해설 ~


제1독서(신명 26,4-10) 해설

<선택된 백성이 주님께 아뢰는 신앙고백>


이 대목은 이스라엘 백성이 햇곡식을 바치며 주님께 아뢰는 신앙고백이다.


햇곡식(거두어들인 첫 소출)을 봉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이집트 땅에서 벗어나게 하고 좋은 땅을 주셨다는 신앙고백을 하였다. 5절에 나오는 ‘아람인’이란 이스라엘 백성의 족장인 야곱을 가리킨다. 이 아람인인 야곱이 떠돌이 신세를 감수해야 했던 것은 그가 유목민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아직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으로 계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가 마치 ‘길 잃은 양’과 같았기 때문이다(참조. 시편 118; 176). 그리고 햇곡식을 바치는 이유는 장래 희망을 두고 하느님을 향한 기대와 신뢰만을 표시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실제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것은 또한 참으로 좋은 땅을 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단순히 햇곡식만을 봉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두어들인 모든 것이 진실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고 온갖 좋은 것의 유일한 소유자가 하느님께서심을 인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모든 좋은 것을 서로 나누고 감사드리는 행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햇곡식을 봉헌하면서 신앙고백을 함께 곁들이는 것은 신앙고백도 하나의 봉헌행위로서 주인을 주인으로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임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신앙 또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신앙 역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자 은총이다. 사람은 신앙을 선물로서 받아들일 때 만물과 자신의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을 주인으로서 받들 수 있으며 사람들끼리는 서로 형제자매로서 사랑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신앙을 선물로 받아들일 때 자신의 존재가 오로지 하느님께로부터 나왔으며 하느님의 소유인 온갖 것을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나누어 사용함으로써 모든 것의 주인인 그분께 모든 소유물을 되돌려드리게 되며 봉헌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시편(90) 해설

<주님, 환난 가운데 저와 함께 계시옵소서>


이 시편은 주님께 “나의 피신처, 너의 산성이신 나의 하느님, 나 그분을 신뢰하네.” 하고 고백하러 온 신자를 사제가 격려하는 시편이다. 이 시편은 하느님께서 당신께 신뢰하고 의탁하는 사람들에게 주인으로서 그리고 인자하신 아버지로서 구원과 생명을 주시리라는 약속으로 끝난다(14절 이하).


첫째 독서에 이어서 부르는 이 시편은 햇곡식을 바치며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주는 하느님의 응답이다. 신앙 고백을 통하여 그리고 햇곡식을 봉헌함으로써 하느님의 복이 그에게 내리고, 구원과 생명이 충만하게 베풀어진다. 이같이 구원을 애타게 찾는 경우를 루카 17,11-19에 나오는 사마리아인과 나병환자에게서 볼 수 있다.


제2독서(로마 10,8-13) 해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신앙 고백>


이 대목에서는 바오로가 이스라엘 백성의 신비(로마 9-11)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불신에 빠지자 그 대신으로 이방인들이 회개하는 신비에 대하여 거론한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신앙 안에서 얻게 되는 ‘올바른 관계’(의화)에 대해 비단 자기가 전파하는 복음에 나올 뿐 아니라, 모세의 법률인 토라(모세오경: 율법)에서 이미 예고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사실 바오로에게 율법은 하느님과 사람끼리의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는 도구로만 간주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율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맡은 구실은 따로 있다. 율법은 우리가 자기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신을 구원해 낼 수 없음을 실증해 주고 우리 혼자로서는 죄악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음을 알려 준다(참조. 로마 7,7 등). 동시에 우리 구원이 우리 바로 곁에 있고 우리 입에 있으며 우리 마음에 있다고 선언한다(참조. 신명 30,14). 다시 말하면 율법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공으로 주신 신앙을 받아 하느님께서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며 고백하면 족하다는 것을 제시해 준다.


그러므로 올바른 관계를 발견하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속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 즉 우리 능력이 미치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 대신 그리스도께서 고성소에서 다시 하늘에 올라가셨기에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시는 분으로 마음으로 믿고 고백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인은 율법만을 완벽하게 준수하여 자력으로 구원받겠다는 고집을 버리고 자비로운 주인이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신뢰하고, 이방인은 선행과 공로만을 많이 쌓아서 그 대가로 구원을 얻겠다는 고집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신뢰할 때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의 차별과 분열이 없어지고 하느님만이 모든 사람의 주인으로서 군림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사람을 똑같은 형제자매의 우애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실 것이다.


복음(루카 4,1-13) 해설

<예수께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다>


오늘 복음은 나머지 두 독서에 나오는 신앙이라는 핵심 개념을 분명하게 밝혀 준다. 이 복음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전개한 일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신학적 일화에서 예수님의 비유의 가르침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루카 복음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아들(루카 3,22)이신 새로운 아담(참조. 루카 3,23-38)’을 제시한다.


옛 아담(사람)은 악마의 유혹에 빠졌지만 새로운 아담(사람)인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모든 고통을 감수해 내며 온갖 유혹도 받았지만 모두 이겨 내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당신 직분을 수행하실 때만 유혹을 받으신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수님께서는 죽기 직전까지 “네가 유다인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37)라는 유혹을 받으셔야 했다(13절).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고 주님을 멀리할 때는 다른 사람을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이용가치로만 여기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는 것처럼, 인간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임을 밝히고 지상의 어떤 왕보다 더 강력한 세속적 권력을 장악하여 모든 사람을 굴복시키라는 유혹을 줄곧 받으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가장 사람다운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를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고 그 가능성을 열어 주셨다. 즉 예수님께서 온갖 유혹을 이겨 내실 수 있었던 것은 확고한 신앙 덕이었다.


신앙은 단순히 교리적인 진리만을 지식으로 알고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처지에서도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신뢰하는 행위인 것이다. 인간 예수님께서 그 같은 신앙을 완벽하게 실천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해 주셨다.


묵상


신앙은 인류 역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행적을 읽어 내는 능력이다


믿는 사람들은 역사와 현실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구체적인 현실과 사건들 속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계시하신다. 그분은 결코 당신 자신을 형이상학적인 사변이나 사람들이 만들어 낸 추상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계시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더욱 긴밀하게 체험하려면, 모든 민족의 역사와 사건들 속에서, 그리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등 하느님을 섬기던 선조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생애 속에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느님께서 선조들과 당신 아들에게만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말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구도자로서 고뇌하며 살고 간 모든 성현에게도 당신을 계시하셨으며 선택된 것처럼 보이는 뛰어난 인물만이 아니고 이름 없이 살고 간 수많은 사람 개개인에게 당신을 계시하신다. 그러므로 지금도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세상 마칠 때까지 인간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당신을 계시하신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만들어 내는 삶의 구체적인 상황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지역, 종족, 문화, 종교 속에서 일하시는 그분을 발견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정성스레 그분을 모실 줄도 알아야 한다.


유혹을 이겨 내신 인간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닮아야 할 가장 모범적이고 완벽한 사람이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온 생애를 통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순간까지 시련과 유혹을 당하고 이겨 냄으로써 부활이라는 승리를 얻으셨다. 하느님 앞에 선 사람의 당연하고 의연한 자세는 바로 사람에게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시려는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신뢰하고 내맡기는 자세이다. 그런 자세를 굳게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만을 자기 주인으로 여기며 다른 어떤 사람도 주인으로 삼지 않는다. 사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억누르거나 다스릴 아무런 자격도 없으며 또한 자신을 위해 이용할 권리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 연대감을 가지고 돕고 살며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자세를 늘 견지하는 길이다. 예수님께서도 갖가지 유혹에서 당신 자신을 구출해내셨고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낌없이 당신을 십자가상의 죽음에 내맡기셨다. 물론 그 쓰디쓴 잔을 물리쳐 달라고 아버지께 간청하기도 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당신 목숨을 내맡기셨다. 우리는 모두 가장 완전한 사람의 생애를 살아온 예수님을 닮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시련을 이겨 내면서 역사와 현실 속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펼치시는 활동을 체험하며 그분을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마누라와 아들 둘, 손자 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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