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3일 화요일, 맑음
테라스에 뿌려놓은 쌀알이 간밤에 내린 눈에 보얗게 불어 있다. 어려서 닭을 키울 적에 물에 불은 밥을 닭에게 주면 닭이 축농증에 걸린다면서 밥알은 개한테만 주라고 엄마가 타이르시곤 했다. 누룽지를 먹는 닭이 어째서 축농증에 걸리는지 얼마 전 엄마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몰라!”였다. “엄마, 그 말 뻥이지?”라는 물음에도 대답은 “몰라!”
우리 어렸을 적 엄마는 모르는 게 없어 아빠로부터 “조박(曺博)”[조정옥 박사의 준말]으로 불렸다. ‘조박’이던 엄마에게 “엄마 왜 다 ‘몰라!’야? 엄마 바보야?”라고 놀려도 대답은 여전히 “몰라!”다. 그렇게 울 엄마처럼 바보가 된 노인들을 비롯해서 버려진 유아들로부터 정박아, 고아, 온갖 장애우들을 거두고 보살피며 사는 복지활동 종사자들, 정확하게는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의 2016년도 전체직원연수에 보스코가 강연을 하러갔다. 서울 우이동에서 원주 봉산동까지, 강연 후 원주에서 함양 문정까지 나는 오늘 총 450여km를 달렸다.
서울 서북쪽 끝자락의 우이동에서 8시에 출발하여 상계동과 태릉의 트래픽을 거치고 중부고속도로에서 밀리고 밀리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기까지도 두어 시간이 걸렸다. 간밤에 뿌린 눈은 다 녹았지만 노면이 얼어 미끄러워도 ('파리의 택시 운전사' 아닌) ‘로마의 택시 운전사’(내가 급한 운전을 할 때 종종 듣는 호칭)는 액셀을 마구 밟아 목적지 원주 봉산동 성당에 도착하니 강연시작 7분전!
신부님이 강사만 아니라 이 '택배'기사도 청중에게 소개를 하여 박수를 받은 김에 내가 마이크를 잡고 남편 강연의 분위기를 잡는 뜻에서, 류시화 시인의 “직박구리의 죽음”을 낭송하였다. 이웃집 다운증후군 아이가 시인 집의 대문을 두드리고, 직박구리의 시체를 들고 와서 뜰에 묻어달라고 어눌하게 부탁하고, 조금 뒤 다시 대문을 두드리고 자기 신발 한 짝을 내밀며
새가 춥지 않도록 그 안에 넣어서 묻어 달라고
한쪽 신발만 신은 채로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을 하고서
부탁하는 말에 시인은 곰곰이 생각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인가...
... 날개가 아닌 팔이라서 날 수 없으나
껴안을 수 있음
500명 가까운 청중을 상대로 보스코는 “가난한 그리스도의 가난한 살을 만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복지활동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격려의 말과 묵상의 실마리를 풀어갔다. 자기네가 돌보는 사람들의 무죄한 인생고(人生苦)를 두고 하느님께 던질만한 원망스러운 질문에 보스코는 엔도 슈샤쿠의 「사해의 호반」 마지막을 인용하였다.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로 끌려가며 공포에 질려 오줌을 질질 흘리고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수인의 왼편에 소설 작가는, 똑같이 수용소 죄수복에 다리를 절며 오줌을 흘리며 함께 걸어가는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는데, 보스코는 수인의 오른편에 같은 행색으로 수인을 부축해 걸어가는 또 한 사람을 설정하고서 “다름 아닌 바로 여러분이 그 사람입니다.”는 말로 90분 강연을 맺었다.
원주 사는 보스코의 ‘주일학교 제자’(50여년전) 실비아를 만나 치악산 기슭에 올라가 커피를 마시면서 딸 얘기, ‘시남편(媤男便)’ 얘기를 들으며 한참이나 깔깔거렸다. 퉁명스러운 딸과는 달리, 성이 조씨인 사위가 부엌까지 들어와 애교를 부리면서‘조(曺)며느리’를 자칭하는 얘기에서 그니의 사위자랑은 절정에 이르러 내게도 딸 하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되살아났다. 5월경 드디어 외손녀가 태어나면 입담 좋은 실비아의 얘기는 손녀자랑으로 끝을 모를 게다.
중부고속도로를 내려오는 길에 버스 한 대가 택시 저리가라 할 요령을 부리며 지그재그로 달리는 곡예운전을 보다 못해 “에이그, 넌 버스 운전할 자격 없어. 택시 운전도 안 돼! 50cc 오토바이로 자장면이나 배달하렴!”이라고 욕설을 내뱉었더니 곁에서 듣던 보스코의 한 마디가 초를 친다. “오늘 아침, 우이동에서 원주까지 당신이 바로 저렇게 운전했어!” “??? ... !!!” (그래서 자길 강연 시작 7분 전에 고이 모셔갔는데... 은공도 모르는 승객 같으니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