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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소가 되고 남편이 농부되어 쟁기질하는 풍경
  • 전순란
  • 등록 2016-02-26 13: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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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5일 목요일, 맑음


시골에서 농사에 쓰는 퇴비는, 예전과 달리, 농협에서 배정해주는 분량만큼 사서 쓴다. 옛날이야 풀을 베다 져서 쌓아놓고 소똥이든 돼지똥이든 인분이든 마구 섞어서 삭히고 뒤집고 해서 퇴비를 만들어 썼지만, 만드는 것도 옮기는 것도 번거로워 지금은 퇴비생산 회사가 목재소의 톱밥에 돼지똥을 섞어삭혀서 20kg 비닐봉지에 담아서 판다.


농협이 50%를 감당하고 농민은 50% 가격에 사서 쓴다. 소유하고 있는 땅의 크기에 비례해서 배급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120포에서 두 개가 빠진 118포가 올해 배당되었다. 작년 우리가 없을 때에 ‘이번에 정해진 수량이 앞으로 5년간 할당되는 분량’이라는 말을 듣고서 진이아빠가 내 대신 신청해 놓았다(우리 집에서 농지부를 갖고 있는 농민은 ‘성염’ 아닌 ‘전순란’이다. “나도 땅 좀 가져 봅시다.”라는 요청에 따라서 텃밭을 내 명의로 등기해 놓았기 때문이다). 오늘 퇴비를 배달하겠다는 연락이 어제 와서 오늘 아침부터 배밭 작업을 시작했다.



배나무 거름은 1월에 주었어야 하는데 외지에 나가는 일이 잦아 시기를 놓쳤다. 가까운 나무는 보스코가 한 포씩 안아서 나무마다 한 포씩 배당을 해 놓았다. 운동을 않고 책상에만 앉아 있어 배가 나왔다고 내가 늘 구박하지만 이럴 때 20kg짜리 퇴비 부대를 안고 가려면 뱃심으로 떠받치는 수밖에 없단다.


좀 떨어진 곳에는 두세 포씩 손수레에 실었는데 보스코가 손수레 미는 일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내가 현수막 천으로 끈을 만들어 손수레를 앞에서 당겼다. “여보, 당신이 소가 되고 내가 농부가 되어 쟁기질하는 기분이야.” 보스코의 말에 작년 봄에 소를 팔아야 했던 옥규 영감이 연화동 논에서 써레질을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영감이 써레를 앞에서 끌고 어람댁이 써레를 밀고 가던 풍경... 그 영감은 그 써레질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눕고 말았다.




퇴비를 나르고서 보스코는 사다리를 놓고 점심 때까지 배나무 전지를 시작했다. 나는 유채밭 김을 매고 올해 감자를 심으려고 가을에 마련한 두럭의 비닐멀칭들이 바람에 날아간 자락들을 손질하고 흙을 덮었다. 곡식도 채소도 주인 발소리에 큰다는데 봄도 오고 농사도 시작하니 외지 나들이를 좀 줄여야겠다(주로 보스코에게 오는 강연 초빙 때문에 나가지만).


오후에 비료배달 트럭이 오고 남정 한 분이 차에서 우리 밭으로 옮겨 쌓는데 작년에 온 남정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키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일이 부실한지 지켜보는 내가 더 조마조마하였다. 쌓인 부대도 이리 삐지고 저리 미끄러지고 엉망이다. “아저씨, 잘 좀 해 봐요. 안 그러면 내가 다시 쌓아야 하는데...”



절반도 미처 못 하고서 땀을 뻘뻘 흘리며 팔다리를 떠는 품이 이런 일은 처음 해 보는 사람 같다. 내가 거들어 함께 부대를 들어주니까 “내 평생 이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에요.”란다. 귀농은 했지요, 처자식은 먹여 살려야 하지요, 일거리는 없지요... 그래서 일판에 나왔으려니 생각하니 되레 가여웠다. 그가 가고 난 다음에 내가 거름더미 위에 올라가 판판하고 가지런하게 정리정돈하였다.


소담정에서 흘러나오는 하수관이 터져서 겨우내 길 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다 못해 소담정 주인 도미니카씨가 아랫집 장정에게 일을 시켰나 보다. 콘크리트 도로를 자르고 옆으로 도관을 만드는 작업이다. 길이 2.5미터의 도관을 뚫고 PVC 파이프 하나를 묻는 작업에 귀농한 사람들 둘을 더 불러 세 남정이 오후 내내 끙끙거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겠다는 꿈만 품고서 무늬만으로 귀농을 하면 자칫 “사랑하는 님 아내를 한 평생 부려먹는” 놈팡이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남편이 부실하면 어떻게든 입에 풀칠을 해아 하니까, 고학력의 부인이 시골에서 논으로 밭으로 품을 팔러 다녀야 하는 까닭이다. 그야말로 아내를 소처럼 부려 쟁기질하는 농사가 되기 쉽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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