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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작은 바늘 끝 하나로 쨍!하고 깨지는 것을
  • 전순란
  • 등록 2016-03-02 10:04:01
  • 수정 2016-03-02 15: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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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일 화요일, 맑음


3.1절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카톡방에 오른, ‘애국지사’ 앞에 ‘여성’이라는 칭호가 붙은 "김락 열사(金洛烈士)“에 관한 글을 읽었다. 이윤옥 시인이 쓴 “독립운동가 3대 지켜 낸 겨레의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 '김락'”이라는 글이었다.


우국지사 시아버지의 단식 절명, 남편의 순국에 이은 두 아들의 독립운동을 몸소 겪은 여장부로 친정 집안 역시 대단한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친정 오라버니(김대락)는 1911년 1월 전 가족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하여 이상룡·이동녕·이시영 등과 항일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3·1만세운동 당시 쉰여섯의 주부로 일제의 고문으로 눈이 먼 채 한 많은 삶을 살다간 애국지사 김락은 안동 밖에서는 알려지지 않아 나도 오늘 처음으로 그분의 생애를 접했다. 나라를 잃고 얼마나 많은 우국지사들과 그 가족이 고통받고 죽어갔으며 지금 그 후손들마저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 대신 나라를 팔아먹고 친일파로 득세하며 떵떵거리다 해방 되자마자 친미반공분자로 돌아서서 독립투사들을 암살하고 학살한 다음 오늘에 이르기까지 호의호식하며 권력과 재력을 독차지한 자들이 지금도 정권을 쥐고 한반도의 운명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우리 엄마가 계시는 ‘유무상통’의 우국지사 방상복 신부님은 이런 일에 애가 타서 양로원 마당에 커다란 안중근의사 동상을 세워 겨레의 죄송한 마음을 표하셨다. 안중근의사 어머니의 심경을 그린 이윤옥 시인의 노래도 비장하다.


아들아 / 옥중의 아들아 /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 칼이든 총이든 당당히 받아라 / 이 어미 밤새 네 수의 지으며 결코 울지 않았다 /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조국 위해 싸우다 죽는 것 /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 지어니 / 비굴치 말고 당당히 왜놈 순사들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 

하늘님 거기 계셔 내 아들 거두고 / 이 늙은 에미 뒤쫓는 날 / 빛 찾은 조국의 푸른 하늘 새 되어 / 다시 만나자 / 

아들아 / 옥중의 아들아 /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 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 / 중근아. (이윤옥, ‘목숨이 경각인 아들 안중근에게’ 「서간도에 들꽃 피다」에서)


나라면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처럼 빵기나 빵고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위해 칼이나 총을 들라고 했을까? 나라를 위해 나가서 싸우다 장렬히 죽으라고, 이 담에 하느님 나라에서 보자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집 우국지사’ 보스코라면? 물어봐야지. “당신도 한때 대사로서 나라의 녹을 먹었으니 나라가 망하면 24일간 곡기를 끊고서 죽을 수 있겠소?” (한 끼만 굶어도 세상이 끝장나는 사람인데.) 나는? “순국열녀 전순란”(?) 발음상으로는 꽤...



날씨가 쌀쌀해도 해가 나오자 어제 그 많던 눈이 싹 녹았다. 눈 온 다음날은 따뜻해서 거지도 빨래를 해 입는다지만 오늘은 꽂샘 추윈지 제법 춥다. 겨울이 지나서도 날씨가 추우면 그래도 봄은 오려니 하는 믿음이 있는데, 이 나라 시국은 영원히 얼음여왕의 통치에 갇혀 벗어날 기미가 안보이다. 그녀가 흔드는 지휘봉 하나에 모든 게 꽁꽁 얼어 버리고 여당의 사내들은 눈사람으로 꽁꽁 얼어 차렷 자세로 사열하고 있다니.... 그런데 얼음을 깨본 사람은 안다. 얼음이 작은 바늘 끝 하나로 쨍!하고 깨지는 것을! 그 바늘은 도처에 있어 찾을 필요도 없다.


미자씨와 용식씨가 밤마실을 왔다. 지난 가을내내 곶감으로 마음 졸이다 물러진 감 절반은 ‘감식초 항아리’로 직행하고, 나머지는 ‘감말괭이’를 했다며 몇 봉지를 들고 왔다. 용식씨는 자기 별명대로 매사에 태평해서, 아내가 “쉼터도 겸하려면 집도 좀 고치고 멋지게 조경도 하자”니까, “잘 해 놓고 살만하다 싶으면 하느님이 꼭 데려가시더라.”면서 “할 일이 남아 있어야 하느님도 봐 주신다.”는 독특한 논리를 편다. 


시골에 살다보면 이웃이 “사촌이기도 하고 원수이기도 해서” 사람 때문에 병을 얻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말하자면 “타인이 구원일 수도 있고 타인이 지옥일 수도 있다.”는 이치는 시골도 도시와 똑같다는 깨달음.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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