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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큼 산” 나이는 몇 살이나 될까?
  • 전순란
  • 등록 2016-03-21 09:57:01
  • 수정 2016-03-21 09:5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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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0일 일요일 맑음


주일 아침이면 “오늘은 어느 성당으로 가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데 사람도 고양이처럼 온기가 있는 곳으로 마음이 흐르나 보다. ‘귀요미’가 내려와 있고, 오신부님이 계시고, 열심한 모습으로 살아오신 분들 사이에서 주님을 찾기로 하고나니 산청 성심원으로 발걸음이 바빠진다. 미루의 밝은 모습이 사랑스럽고 이사야의 은근한 미소가 듬직한 곁에 틈을 비집고 앉는다.



오늘은 성지 주일, 성문 앞에서 “호산나”(만만세)를 외치던 저 군중의 손이 며칠 지나면 관제언론에 중독되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하는 고함으로 변할 게다. 여론의 변화를 미리 아신 분은 나귀 등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성당이 있는 건물 현관에서 성지축성 예절을 하고 측백나무 잔가지 하나씩을 손에 들고 행렬지어 들어갔다. 손가락 없는 조막손으로 가지를 든 환우가 살아온 고난의 평생이 층계송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와 겹친다.


오늘은 예수를 빌라도 재판정에 올리는 긴 복음(‘수난기’)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낭독된다. 오신부님은 강론에서 그 복음 안에 모든 인간상이 민낯으로 나온다며 “나는 과연 그 드라마에서 어떤 배역을 하고 있나?” 돌아보라고 권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소리를 지를 뿐 아니라 망치를 들고 직접 못질을 하고서는 빌라도처럼 손을 쓱쓱 씻기도 하는 우리... 고해성사에서도 마지못해 10%의 죄만을 입으로 고백하고 나머지 90%는 “이밖에 알 아 내지 못한 죄”로 얼버무리는 우리... 그래서 수없이 죄를 짓고 또 지으면서도 죄인지도 모르는 우리... 그러니 하느님의 어린양은 날마다 블랙홀처럼 인류의 죄를 빨아들여 지고가시는 수밖에 인류가 살아남을 길이 없다.


미사 후에 그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미루네 매장에 가서 차 한 잔을 하고, 그것도 미진해서 이웃 식당에 가서 산채비빔밥 한 그릇씩을 하고나서야 헤어졌다. 그러고도 서운해서 낼모레 밀양에 같이 가자는 전활 하고...



요즘 집 전화는 여간해서 울리지 않는다. 그래선지 벨이 울리면 공연히 짜증이 난다. 여론조사 기관입니다.라는 말만 나오면 여보세요. 라는 말도 않고 끊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여론조사 응답률이 3%라는데, 그것도 여론을 조사했다고 발표를 하고 언론기관들은 그 결과를 놓고 언론 조작을 하여 사람들을 호도한다. 


나는 아예 TV나 라디오를 켜는 일이 좀처럼 없다. 인터넷 상으로 '경향'과 '한겨레', '다음'의 모듬 기사를 찾아읽는 게 전부다 보니 어지간히 편향된 시각이리라. 내 친구 임순혜처럼 언론을 지키려면 눈을 부릅뜨고 모든 뉴스와 채널을 지켜봐야 바른 언론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데....



보스코가 망원경을 갖고 창밖을 보여주면서 “여보! 직박구리가 매화 꽃잎을 따먹어.”라며 신기해 한다. 개체 수는 많고 먹을 것은 없어 새들마저 초식으로 식성이 바뀌나? 텃밭의 유채는 물까치떼가 이파리를 다 쪼아 먹었고 동네에 내려가니 하산댁 아줌마가 감자를 내고 있다 봄동 잎마저 새가 다 뜯어먹었다고 탄식한다.


가밀라 아줌마가 머위 싹을 나물해 먹으라고 한 줌 주신다. 드물댁은 쑥국을 좋아하는 보스코에게 끓여주라며 쑥 한 봉지를 내주고, 덕촌댁은 우리 밭 멀칭해 놓고 그냥 둔 둔덕에 감자를 심으라며 싹이 난 감자를 묵직하게 한 자루 건네준다. 오후 늦게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마치 일수꾼 일수도장 찍듯 집집이 선물을 받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임실댁은 혼자서 거름을 뿌리다 나를 보자 반가이 밭가로 나와 임실양반 병세를 들려준다. 남편이 병상에 누워 있는데도 고추농사를 짓겠다고 밭을 간다며 “사람이 죽고 사는 마당에 이깟 농사를 지어 뭘 할까?” 한숨이 꺼진다. 임실양반 76세. 예전에 그 양반 뇌출혈 수술할 때는 “막내딸 시집갈 때 자리라도 지키게 해 줍소서.” 기도했는데 그 딸이 낳은 손녀가 초딩 5학년이어서 이젠 마음을 비웠단다. 


“그만큼이면 살만큼 살았다.”고 체념하지만 내심 살만큼 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자연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비교적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인다. 살고 죽는 것도 한 폭 그림 같은 이웃들을 보는 게 마음이 싸 하면서도 정겹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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