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난 3월 29일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발표된 교황 프란치스코의 성소주일 담화이지만 교황은 2015년 제52차 성소주일을 통해 성소의 문제를 단순히 사제와 수도자에게 유보된 단어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한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영적인 “탈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저는 제52차 성소 주일에 성소, 더 정확하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소에 대한 응답의 핵심인 바로 그러한 탈출에 대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노예 생활을 하던 옛 인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어난 구원 사업이며(에페 4,22-24), 교황은 이 과정을 참된 탈출로 인식한다. 믿음은 안락함과 완고함을 뒤로하고 우리 자신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매료시켜 우리 자신과 중심에서 벗어나도록 이끌며, “자기만을 찾는 닫힌 자아에서 끊임없이 벗어나 자기를 줌으로써 자아를 해방시키고, 그리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참으로 하느님을 발견”(「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6항)하도록 이끈다.
사제들의 성소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지만 한국 평신도들의 성소(거룩한 부르심)는 과연 지금 어떠한 수준으로 이해되고 있는가? 성소는 단순한 직분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룩한 부르심은 직분 외에도 삶의 모든 부분에서 다가오는 도전이고, 의문이고, 깨달음이다.
서울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유경촌 주교는 『21세기 신앙인에게』(가톨릭출판사, 2014)라는 저서에서 가톨릭 사회교리 해설을 통해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도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고 있는 신자들에게 ‘신앙적 성숙’을 요구했다. “성숙한 신앙은 나이와 상관없으며,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묻는다. 성숙한 신앙은 모든 사람을 ‘확대된 자기 자신’으로 느끼기 때문에, 이웃의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과 고통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나눔마저도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넘어서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며, 보이지 않는 차원까지 끌어안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유경촌 주교는 “하느님이 아닌 어떤 것,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어떤 것을 하느님으로 잘못 섬기는 모든 행위는 결국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이라며,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정당한 자리가 어디인지’ 묻는다. 이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오히려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느님의 이름을 남용한 사례로 종교재판과 십자군 전쟁, 신대륙 발견 때의 인종 학살과 노예제도 용인, 유대인 박해 등을 들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천년을 맞아 교황청 신앙교리성 국제신학위원회를 통해 발표한 <기억과 화해―교회와 과거의 잘못>이 귀감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유 주교는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솔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며, 그러한 행동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당면한 어려움들과 싸워 나갈 수 있는 더 강한 신앙을 얻는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에 뿌리를 둔 그리스도인의 성소는 우리들이 형제자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위하여 연대할 것을 촉구한다. 예수의 제자는 주님의 무한한 지평에 열린 마음을 지니게 된다. 온전히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삶이나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친교와 선교는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복음의 기쁨」, 23항). 그러나 한국천주교회는 역사 안에서 너무나 많은 오점을 남겨왔다.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고해성사와 미사 요청을 거부했다. 그리고 뤼순 감옥에 찾아가 안중근 의사에게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준 빌렘 신부를 징계했다. 안중근 의사는 죽음의 순간에서도 아들자식이 사제가 되기를 청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교회는 고백도 미사도 성소도 외면하고 받아주질 않았다.
104년이 지난 2014년 3월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처형당하기 직전에 남긴 유묵 ‘경천: 敬天’이 서울 옥션 경매장에 7억 원에 나왔으나 유찰되었고 바로 서울 잠원동성당에서 5억9000만 원에 경천을 사들여 서울대교구에 기증했다고 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의 청은 받아주지 않으면서 돈 되는 것은 재빠르게 받아 챙기는 주교들의 순발력은 무엇인가?
그 후 한국교회도 역사적 과오에 대한 성찰과 함께 ’쇄신과 화해’ 라는 반성문건을 발표했다. 그 내용의 요지는 2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외부세력에 편승 야합하여 민족의 안녕과 평화에 이바지 하지 못했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인권신장과 보호를 등한시했으며, 성직자들이 그릇된 권위의식과 물질 팽창주의에 빠졌고,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관점을 가져왔음을 반성했다.
그리고 교회는 이후로 공동선과 정의와 평화, 인권신장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2000년 12월 3일 주교회의, 『쇄신과 화해』 중). 그러나 여전히 결정권을 가진 고위 사목자들은 제도교회의 확장과 보호, 외형적 성장에만 관심이 있지, 실질적인 교회의 친교나 사회에서의 역할, 영성의 심화와는 거리가 먼 개인구원의 문제와 영원의 문제에 천착하게 만들어, 민주화-복음화에는 관심도 없고 회피하려는 경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염수정 추기경은 정치나 사회 현안에 관한 직접적인 발언은 자제해 왔다. 그러나 2013년 11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시국 미사를 열어 ‘대통령 사퇴’를 촉구한 것에 대해서 ‘가톨릭 교리서’ 등을 근거로 “사제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며 “정치 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적 트라우마였던 세월호 참사를 두고 방문한 교황은 “고통에는 중립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의 추기경은 “세월호 문제와 관련해 자꾸만 우리의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족들도 어느 선에서는 양보해야 한다.”고 말해 사회적 논란과 분열이 가중되었다.
교황으로 인해 회복된 가톨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순식간에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하는 날 명동에서는 이전과 다른 강론을 한다. 그 동안 너무나 조용히 계시던 추기경이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주교들이 일제히 세월호 미사와 강론을 진행한다.
지난 3월 교황청을 다녀와서 회개를 한 것인지 급작스런 말의 변화는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더 이상 중립에 있다가는 코너에 몰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일관성 없는 변화는 일회적으로 끝나고 ‘보여주기식 세레머니’에 지나지 않는다.
인천의 정신철 보좌주교는 “배가 침몰하고 뒤집힌 뒤에야 구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집힌 배에서 구출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지만 많은 학생들과 사람들은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국민 모두는 울었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매일 듣는 소식을 통해 한 명의 학생이라도, 한 명의 선생님, 승객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두 손 모아 기도했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세월호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발언이며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구조는 처음부터 이루어지지 않았고 배가 침몰하고 뒤집힌 뒤에도 구조는 진행되지 않았고, 해경이 구조를 가로막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더구나 편집실 취재결과 당시 세월호 사건 이후 온 국민이 애도의 물결에 놓여있을 때에 천주교 인천교구에서는 두 손 모아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교구장의 영명축일 행사를 열기도 했다.
정신철 주교는 세월호 1주기 미사 강론에서 “존경하는 대통령님” 이라고 말한다. 누구를 존경한다는 말인가. 내 나라 국민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7시간 동안이나 자신의 자리를 비우고 허우적거리던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말인가, 요리조리 말을 바꾸어가며 국민들을 우롱하는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말인가,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들의 외침을 차벽과 물대포 최루탄으로 유린하는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강자에게 조금 더 강하고 약자에게는 조금 더 겸손한 주교를 바란다.
지난 2014년 2월 20일 교황청 공식 일간지
그렇다면 신자와 주교가 공감대를 잃어버리면 5년 후에 우리도 추기경이나 주교를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사제들의 활동에 직접 참여한 적은 없지만 “1987년 이전에는 그들과 연대했다.”고 밝히면서, “하지만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은 확실히 변했다. 더 이상 싸워야 할 권위주의적인 정부는 없다.”고 말했다.
추기경은 사제단이 과거에 한국 사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정부에 반대하기보다 그들의 역량을 사람들의 실질적인 요구를 위해 쏟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보다 더 복음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그들을 소외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분열된 이미지가 교회를 손상시키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기서 더 복음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추기경에게 묻고 싶다. 분열은 오히려 이러한 발언의 파장으로 생겨난 신자들 간의 다툼일 것이다.
이렇게 교회의 사회운동에 대한 교회권력자의 치우친 발언은 교회의 분열과 혼돈을 초래한다. 이후에 추기경은 외국어 소통의 문제를 들어 내용의 수정과 왜곡을 언급했지만 근본적으로 한국교회의 최고 사목자들은 이런 시대의 징표와 흐름을 인식하고 현장에서 투신하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해야 할 것이었다. 지난날 발표했던 화해와 쇄신의 주교단 메시지가 지난한 한국현대사의 현장에서 사회 민주화와 민중 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성소는 거룩한 부르심이다. 그 옛날 성조 아브라함이, 모세가, 엘리야가, 광야에서 들었던 거룩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우리를 생생한 현장, 고통 받는 민중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였다. 편안한 자리를 떠나, 백성들의 울부짖는 삶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거룩한 부르심이었다.
이 땅 대한민국 2015년의 성소는 세월호를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다. 절망의 자리에서 울부짖는 부모들과 형제자매들의 울부짖음은 거룩한 부르심이다. 유가족들 모두는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거룩한 부르심을 듣고 길 위에 서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 그 아스팔트 위가 철저한 광야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 길바닥 위에서 세상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되고, 각성되었다. 그 길바닥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막막한 자리인지 그들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광야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음성을 그들은 알아들었다. 그들은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시간과 공간에서 만난 무력한 예수를 체험했고, 부패와 부조리의 한 복판에서 절망 보다는 인생의 허무함과 세상의 쓸쓸함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창조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더 이상 권력과 자본에 기대어 우리들의 안전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들은 부패한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기억은 그리스도인 실존의 본질이다. 이 천 년전 예수를 기억하고, 마리아를 기억하며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기도이다. 거룩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온전한 기도로 이어져야 한다. 이 땅의 주교, 사제, 평신도들이여, 거룩한 하느님의 소리를 이래도 외면할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