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양쪽의 군대가 30,000명 이상 죽게 된 해전의 승리가 묵주기도 때문이었고, 그 암울한 살인의 날을 마리아의 기념일로 정해 축하한다는 것은 대체 어떠한 교회의 신심인가? 시골의 순박한 처녀가 그 무서운 살인의 배후가 되고, 진을 친 군대처럼 무서운 여인이 되어 버린다면 오늘 우리는 참된 마리아의 이미지를 잃어버리게 된 것 아닌가!' - 본문중
한국 교회 영성의 현 주소를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레지오 마리애, 꾸르실료, M.E. ,포콜라레, 빈첸시오회 등 다양한 조직이 있으나 무언가 허전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별 신심운동들이 일치와 통합보다는 ‘우리들만의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신앙의 근본을 강화 하자는 영성적 흐름은 대략 두 가지의 경향으로 분류된다. ‘쇄신을 위해서 근본을 다시 세우자!’ 라는 방향과 ‘보지 않고 믿는 자 복되다!’ 라는 부류의 맹목적인 근본 강화의 방향이다. 후자는 매우 폐쇄적인 논리구조를 갖기 때문에 어떠한 설명이나 대화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러한 현실 가운데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신앙생활에 입문하고 초월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한다.
성모신심의 신앙운동인 ‘레지오 마리애’는 전투적인 여성관을 넘어 개신교회가 가톨릭을 ‘우상숭배’라고 규정할 만큼 정교하고 조직화된 신심단체를 형성했다.
1921년 9월 7일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있는 '프란시스 거리'에서 프랭크 더프(Frank duff, 1889년 6월 7일~1980년 11월 7일)에 의해 시작된 '자비의 모후'라는 이름의 모임이 레지오 마리애 모임의 시초이다.
레지오는 가장 기초적인 모임의 쁘레시디움(Praesidium), 쁘레시디움의 관리 역할을 수행하는 상급 평의회 꾸리아(Curia), 꾸리아를 관리하는 꼬미씨움(Comitium), 꼬미씨움의 관리 레지아(Regia), 국가 또는 광역 평의회로서의 세나뚜스(Senatus)의 체계로 조직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3개의 평의회가 있고 전 세계적으로는 2000여 교구 내에 약 70개의 평의회가 있다. 그리고 아일랜드에 있는 꼰칠리움 레지오니스(Concilium Legionis)가 레지오 마리애의 최고 통솔 관리 기관이다.
레지오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냄에 있다. 또한 그 정신은 바로 신앙의 본보기였던 성모 마리아의 영성에 있다. 한국에서 레지오 마리애가 시작된 것은 1953년 5월 31일 현 하롤드 대주교(광주대교구장)의 지도로 목포시 산정동 본당에 ‘치명자의 모후’ 쁘레시디움과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 그리고 경동 본당에 ‘죄인의 의탁’ 쁘레시디움이 설립되면서 이후 전국 각지로 번성하게 된다.
현재 한국교회 영성의 축은 레지오 마리애 영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의 구역 반 조직보다 더 강력한 결집력과 조직 동원력을 가진 것이 레지오 마리애 단체이다. 까떼나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의 회합에서 암송되는 기도문 가운데 하나로, 모든 레지오 마리애의 단원은 까떼나 기도를 하루에 한번 이상 바치는 것이 의무이다.
그런데 이 기도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후렴구에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 를 기도하며 성모찬송(Magnificat)을 노래한다. 이러한 전투적인 마리아에 대한 이데아는 과연 현대인들의 신심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또 한국교회에서 레지오 마리애 운동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한국인들의 고유한 심성이 함께 작용했다.
먼저 한국인들은 서양의 형이상학적 사고에 근거한 신학적 사변이 불편하다. 천주(天主)를 믿지만 구체적으로 기도의 대상이나 응답의 대상이 선명하게 드러나지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레지오 마리애는 먼저 쁘레시디움에 있는 회원들에게 ‘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제안하며 ‘엄마를 계속해서 부르면 우는 아이를 바라다보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라며 ‘기도의 항구성’과 ‘응답의 확실성’, ‘대상의 명확성’을 부여한다. 이렇게 단순한 신앙의 고백이, 어려운 교회의 신학과 복잡한 교리, 성경을 일축할 수 있으니 상당히 편리한 신앙이 가능해 졌으리라 여겨진다.
둘째로 한국인의 ‘군대문화’도 한 역할을 한다. 레지오가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1953년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이었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군대문화만큼 확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군대처럼 확실한 조직이 형성되고 그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은 인간 존재에 대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셋째로 레지오의 활동보고는 자신의 한 주간 동안 바친 기도와 애덕 실천을 다른 회원들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주간 기도 총량을 계량화하여 300단, 400단, 500단, 이런 식으로 기도의 총량이 그의 믿음의 지표가 되어 보이니 그들은 자신들의 열심을 공인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레지오 마리애 조직을 통해 공식적으로 ‘나의 열심이 보증(Certificate)되었다’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보상심리가 강한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애덕을 발표하게 함으로써 일정한 평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사제들은 평생 마리아의 자녀 혹은 연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녀가 되는 순간 그는 심리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하는 ‘마마보이’가 되어 버린다. 마리아의 자녀가 되어 유아기적 신심에 발육부진을 경험한 사제들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느 교구의 50주년 기념과정에서 노정된 ‘바다의 별’ 성모상 제작과 본당순회는 기존의 성모신심을 혼란하게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최근에 나주 성모 문제로 교구에서 주의를 요망하는 시점에 이러한 마리아 신심운동은 자칫 신앙에 대한 혼선을 빚을 수 있는 어려움을 만든다.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승천’ 교리를 확정하고 성모신심을 강화시킨다. 그러나 신학자 이브 콩가르(Y. Congard)는 “교회가 성령의 자리에 마리아를 올려놓았다.” 라고 말했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강력히 반대했는데 만약에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었다면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의 구세주’라는 교리(강생구속)에 어긋난다. 또한 죄가 없으니 그녀에게는 죽음도 없었을 것인데, 그렇다면 그녀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 이렇게 된다면 마리아도 예수와 같이 자연스레 ‘신성’을 획득하게 된다.
전투적인 마리아 이미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사건은 레판토 해전이다. 레판토 해전은 1571년 10월 7일 베네치아 공화국, (교황 비오 5세 치하의) 교황령, (나폴리와 시칠리아, 사르데냐를 포함한) 스페인 왕국과 제노바 공화국, 사보이 공국, 몰타 기사단 등이 연합한 신성 동맹의 갤리선 함대가 오스만 제국과 벌인 해상 전투로 오스만의 전투용 갤리선 함대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킨 기념비적인 해전이다.
신성 동맹은 약 7,500명에 달하는 병사와 선원, 노잡이가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많은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노예들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오스만군의 사상자는 약 25,000명에 달하고, 적어도 3,500명이 사로잡혔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성 동맹은 로사리오 기도를 통해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며 하느님께 승리를 기도했다.
안드레아 도리아는 그의 선실에 스페인의 펠리페 2세에게 받은 과달루페의 성모화 복제품을 안치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교황 비오 5세는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려고 10월 7일을 교회에서 묵주 기도의 성모를 칭송하는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라는 축일로 제정하였다.
적어도 양쪽의 군대가 30,000명 이상 죽게 된 해전의 승리가 묵주기도 때문이었고, 그 암울한 살인의 날을 마리아의 기념일로 정해 축하한다는 것은 대체 어떠한 교회의 신심인가? 시골의 순박한 처녀가 그 무서운 살인의 배후가 되고, 진을 친 군대처럼 무서운 여인이 되어 버린다면 오늘 우리는 참된 마리아의 이미지를 잃어버리게 된 것 아닌가!
예수가 호수건너편 게라사의 지방으로 갔을 때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 뜻밖의 대답은 “군대(Legio, 레지오)” 라는 것이다. 아마도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의 군대에 대한 적개심이 마귀로 형상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치유된 마귀 들렸던 자에게 예수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신다. 시골처녀 마리아,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어찌 군대의 사령관이 되었는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레지오 마리애는 깊이 숙고되고 평가되어져야 할 신심행위이다. 우리는 마리아를 묵상하면서,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셨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신”(루카 1,52-53) 하느님의 정의를 추구하는 마리아를 바라보게 된다. 그녀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긴”(루카 2,19) 관상의 사람이기도 했다.
마리아는 크고 작은 사건에서 하느님 성령의 자취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세상에 있는, 인간의 역사에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는 하느님의 신비를 끊임없이 묵상했다. 그녀는 나자렛에서 기도하고 노동한 여인이었다.
루돌프 오토(R. Otto)는 신비에 대한 보편적 갈증은 인간의 내재적, 원초적 욕구라고 말한다. 인간은 내면의 신비롭고 성스러운 체험을 통해 자신이 처한 한계와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생각한다. Otto는 이러한 체험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비에 대한 보편적 갈증을 느끼고, 교회 안에서 영성신학, 신비신학, 초월신학, 관상기도, 그리스도 명상 등이 성행하고 있는 상황은 기존 신학 프레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현재 교회가 운영하는 영성 프로그램은 묻고 따지는 것을 통해 교육된 현대의 신앙인들에게 회의와 의심 지루함과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그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영성 프로그램의 개발’은 중요하다.
마리아 신심은 교회의 중요한 교의와 교리를 구성하고 있지만 신비로 포장된 마리아는 더 이상 많은 신앙인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하며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훼손할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왜 이렇게 마리아 신심을 통한 이단이 성행하는지 그 까닭은 마리아의 메시지를 인간이 계속해서 양산해 내기 때문이고 성지화 된 성모발현지는 믿음에 대한 고양이 아니라 관광상품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 전이다. 그런데 아직도 성모발현지 관광 상품을 개발하려는 교구들이 있다. 참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가톨릭 신앙은 새로운 종교 운동의 팽창으로 많은 이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 어떤 종교 운동은 근본주의의 경향을 띠고, 어떤 것들은 하느님 없는 영성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한 편으로 이러한 현상은 물질주의적이고, 소비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사회에 대한 인간적 반응이면서도, 빈곤 속에서 그리고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즉 위대하다고 하는 인간이 고통 받는 동안, 겨우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수입으로 필요에 대한 즉각적 해결책밖에 갖지 못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종교적 운동은, 일정부분 독특함이 없지는 않으나, 매우 지배적인 개인주의적 문화 안에서는 세속적 합리주의가 남겨놓은 빈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복음의 기쁨 제 63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