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주기 하루 전인 15일 오후 7시 30분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대전 중구 대흥동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추모 미사에는 세월호 참사 후 2년을 기억하는 동영상 상영과 유가족 인사,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성명서 낭독, 침묵 행렬 등의 추모행사가 더해졌다.
이날 미사는 ‘돌을 치워라’(요한 11,39)는 성경 구절을 주제로 김종수 주교(대전교구 총대리)와 교구 사제 70여 명이 공동으로 집전했으며, 대전교구 신학생과 대전성모여자고등학교 학생들, 수도자와 평신도 등 1,500여 명이 참석했다.
미사를 주례한 김종수 주교는 교복을 입고 미사에 참석한 100여 명의 성모여고 학생들을 보며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 수백 명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목이 멘다”며 강론에 앞서 눈물을 흘렸다.
김 주교는 “우리 사회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는 우리 시대의 표징처럼 다가온 사건”이라며 “삶의 가장 중요한 이유이면서도 그동안 우리가 돌보지 못했던 생명존중의 문화를 수많은 희생자, 특히 수백 명의 학생들이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호소한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참사와 관련한 정부 대처와 위정자들의 태도, 그리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 청문회와 이를 통해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 그리고 이를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를 언급하며 신자들에게 지난 2년간 있었던 참사 소식을 전했다.
“예수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할 때, 그 이야기를 듣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당시 하느님의 말씀을 누구보다 잘 따른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도 하느님의 진리를 따르려는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생명의 가치를 말하는 진정한 진리를 외면했고, 이것이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아간 악의 선택이었다”
김 주교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생명존중의 표징을 신앙인들이 외면한다면 하느님을 섬긴다면서 하느님의 아들을 죽인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세상의 표징이 된 예수의 죽음과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이 닮았다며, 신앙인들이 세월호 참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영성체 예식 후 세월호 참사 추모행사가 이어졌다. 정평위가 제작한 ‘세월호 참사 후 2년의 기억 동영상’에서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공개돼, 많은 신자가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흘렸다.
단원고 희생자 장준영 군의 아버지 장훈 씨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희생자들 가족의 심정을 대변했다.
“내 새끼가 죽었기 때문에 너무도 절박했다. 여기 학생들이 와 있는데, 여러분의 부모님도 여러분이 없어진다면 우리와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유가족들의 변호를 맡았던 박주민 변호사를 국회에 밀어봤는데, 국민이 우리의 소리를 들어줬다”
이어 장 씨는 참사 당시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그는 “집에 불이 나서 119에 신고해 소방관들이 왔다. 그런데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한 것이 아니라 불이 다 꺼질 때까지 지켜봤다”며 “1시간이라는 시간이 있었고 주변에 어선도 있었지만 아무도 들어가서 탈출하라고 말한 사람이 없다. 나오라는 한마디만 있었다면 희생자들의 절반 이상은 살았을 것이다”라며 애통해했다.
장 씨는 “도보 행진과 삭발, 단식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나 번개탄을 피우는 일은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다”라며 “우리 유가족들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당당 하고자 노력하는 부모들이다”고 말했다.
그는 추모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나는 엄하게 컸기 때문에 자식에게도 엄했다. 참사로 자식이 떠난 후 지금은 그것을 너무 후회한다”며 “여기 온 학생들은 부모님이 계실 것이고, 어른들은 자식들이 있을 것이다. 오늘 집에 돌아가시면서부터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사랑한다고 의무적으로 말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대전성모여고 노래동아리 학생들은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등을 부르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친구들을 추모했다. 이날 추모행사는 대전교구 정평위 위원장 김용태 신부의 성명서 낭독으로 마무리됐다.
추모 미사 후 사제단과 신자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침묵 행진을 진행했다. 행진은 오후 9시 30분부터 시작됐으며, 대흥동 성당에서 출발해 목척교를 지나 대전역 광장까지 50분간 진행됐다. 행렬 선두에는 십자가가 위치했으며 세월호 모형과 사제단, 신자들 순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노란 풍선을 들고 행진하며 침묵 속에서도 시민들에게 세월호의 기억을 되새겼다. 행렬을 마주한 시민들은 그 자리에서 묵념하기도 했다. 대전역 광장에 모인 신자들은 아직 세월호에 남아있을 미수습자들의 이름을 외치며 하늘로 풍선을 날렸다.
다음은 이날 추모 미사에서 발표된 대전교구 정평위 성명서 전문이다.
“돌을 치워라!”(요한 11,39)
1. 거짓과 기만의 돌을 치워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여전히 2014년의 그 차가운 바다 한 가운데에 머물러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는지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간단한 교통사고조차도 그 원인파악과 진상규명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수백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그저 감추고 왜곡하고 속이기에 급급합니다. 과연 진실을 감추려는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요?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에게 요구합니다.
정부는 하루빨리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유해를 조속히 수습해야 합니다. 또한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나게 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참사 책임자들에게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2. 불의와 탐욕의 돌을 치워라!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자연재해나 우연한 사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불의와 탐욕이 빚어낸 초대형 참사입니다. 인간보다는 돈을 더 우선시하고 관계보다는 체제를 더 우선시하며 협력보다는 권력을 더 우선시 하는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이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인간을 도구화하고 돈과 권력을 우상화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인간 삶의 풍요는 더 많은 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랑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인간 삶의 존엄은 더 많은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높이는 섬김에서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믿음을 세상을 향해 선포하고 실천해 나감으로써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증거할 것입니다.
3. 망각과 무관심의 돌을 치워라!
세월호 참사는 2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슬픔이요 아픔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됩니다. 기억하지 않는 참사는 재현됩니다.
외면해 버린 슬픔은 가시지 않고 무시해버린 상처는 아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라보고 기억해야 합니다. 잠들지 않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치유와 회복은 망각과 무관심이 아니라 기억과 관심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무관심의 세계화가 만연한 세상입니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외롭게 죽어갑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강도 만난 사람에게 다가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그 모범을 본받아야 합니다.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이 세상은 조금씩 치유되고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4. 죽음과 절망의 돌을 치워라!
세월호는 이 시대의 십자가입니다. 무고한 생명이 불의와 탐욕에 희생된 이 시대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십자가는 절망의 상징이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죽음을 넘어선 새로운 삶, 절망을 넘어선 새로운 희망을 이루어 내라고 촉구합니다.
세월호는 이 시대의 강도만난 사람입니다. 고통 속에서 외롭게 죽어갔던 그들은 우리에게 서로를 살리는 연민과 사랑을 호소합니다. 이 땅의 고통 받는 이들, 죽어가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사랑해달라고 살려달라고 호소합니다.
이 호소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죄로 포기되지 않고 우리 죄로 인한 죽음으로써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나서 여전히 우리를 그 사랑으로 살리시는 것처럼 우리도 고통 받는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며 부활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세월호는 죽음과 절망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체념하고 지쳐있는 이들에게 참된 생명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부활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 지향과 결심과 호소가 자비로우신 주님의 은총과 섭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2016년 4월 15일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