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북구의 구만덕으로 알려지고 있는 만덕5지구는 1970년대에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중구 수정동과 영도구 청학동 등지에서 만덕으로 집단 이주한 곳이다. 처음 이주하였을 때는 집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보일러는 고사하고 대문도 없는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가지고 왔던 판자 등으로 땔감을 하며 삭풍의 겨울밤을 보내기도 했다.
이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건설노동 등으로 생업을 유지했지만, 볕이 잘 들고 골목길이 바둑판처럼 잘 조성된 곳으로써 넓은 골목마다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막걸리를 나누며 오순도순 정이 익은 마을이었다. 집집마다 대추나무가 있어서 ‘대추나무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마을 주민들의 아픔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헌 집 주면 새 집 줄게’라는 말로 주민들을 유혹했다. 2000년에 합의했던 보상금 지급은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의 합병 관계로 늦어졌다. 그 사이 부동산 값은 폭등했다. 2000년에 이주가 시작되었더라면 지금의 갈등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마을의 철거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2000년에 합의한 보상금으로는 자기의 집을 두고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건설업자들의 폭리를 막고 양질의 값싼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세운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원주민들의 눈물과 절규를 외면하고 개발 이익을 위해 원주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대추나무골 주민들은 이곳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일관되게 공공주택건설방식이 아니라 현지개량방식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현지개량방식이란 우리가 익히 아는 고층 아파트 건설 방식이 아니라 주민이 개별적으로 주택개량이 가능한 지구에서 주민 스스로 개량 자금을 융자받아 낡은 주택을 증축, 개축 또는 신축하고 지자체에서 도로, 주차장, 공원 등 정비기간 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윤을 앞세운 LH공사는 주민들의 요구를 묵살했고, 공공주택건설방식만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철거가 시작됐고, 마을 주민들도 떠나가기 시작했다. 마을이 폐허가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만덕주민공동체는 현지개량방식과 공공주택건설방식의 절충인 ‘혼합방식’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제안했다. 만덕5지구 내 어디라도 좋으니 조그마한 땅을 제공하면 마을을 만들어 살고 싶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LH는 이 소박한 요구마저도 형평성의 원칙 등을 들먹이며 주민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행정대집행을 예고하는 최후의 공문을 보냈다.
벼랑 끝으로 몰린 만덕주민공동체 최수영 대표는 자신의 집 위로 철탑을 세워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일관되게 “내 집에 살겠다”는 것이고, “주거권은 생존권이며 인권”임을 주장하고 있다.
철탑 농성 9일차가 되는 날, 만덕 대추나무골에서 6년간의 투쟁 중 처음으로 미사가 봉헌됐다. 작은형제회 김종화(알로이시오) 신부는 만덕5지구의 철탑 농성 소식을 듣고 현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자 결심했다. 그는 재속프란치스칸 회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혼자서라도 미사를 봉헌하겠다고 했다. 4월 22일 오후 7시, 철탑 농성 현장에는 재속프란치스칸 회원들이 모여들었고,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설치한 천막에서 만덕주민공동체 주민들과 함께 아름다운 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미사에서 만덕주민공동체 김문식 주민은 “이제 1600가구에서 모두 떠나고, 6가구만 남았습니다. 언론에서 우리가 돈을 바라고 싸운다고 하지만, 만덕주민공동체는 재개발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인 선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마을을 지킬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울먹였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그의 환경회칙 『찬미받으소서』 152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집을 마련하는 것은 인간 존엄과 가정의 발전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인간 생태론의 핵심 과제입니다”
한편,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 성직자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에 철탑 농성 현장에서 만덕주민공동체와 함께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다음은 만덕5지구 철탑농성 천막미사 강론 전문이다.
< 만덕5지구 철탑농성 >
2016년 4월 22일 금요일 19시 천막미사 강론
작은형제회 김종화(알로이시오) 신부
만덕5지구는 2001년 부산시가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했습니다. 당시 주택공사가 2008년 10월 보상계획을 공고 했으나 토지공사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사업이 늦춰졌고, 2011년 9월이 되어서 뒤늦게 보상에 착수 하게 됩니다. 이 때 보상액을 2007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잡으면서 현 시세에 턱 없이 부족한 보상가로 원주민 재정착이 불가능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만덕동은 상계봉 아래 볕 좋은 마을로 도심 속 전원마을로 공동체적으로 살아온 곳입니다. 부산시와 LH의 잘못된 개발정책으로 공동체는 파괴가 되었으며 주민들 간의 갈등,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주민들은 수 년 간 고통 받았습니다. 70년대 개발정책으로 도심변두리에 있던 주민들이 만덕으로 강제이주를 해 온 경험이 있어서 40여 년을 고향처럼 살아온 땅에서 사실상 두 번째 강제이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주민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전면철거 방식의 개발은 이제 폐기되는 추세이지만, 자본과 권력의 대규모 개발이익 추구에 아직도 많은 서민들은 제대로 보상 받지 못 한 채로 쫓겨나고 있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덕5지구 주민들은 이에 대책위를 구성하여 여러 차례 집회와 면담을 하였으나 현재까지 LH에서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강제집행을 신청하여 법원이 <부동산 인도 강제 집행 예고장> 발송(4월 4일 최초), LH가 <법원 강제집행 예고에 따른 자진이주 요청>을 최후통첩(4월 12일)하며 총선 이후 4월 18일~20일을 행정대집행기간으로 공식 예고하였습니다.
이에 만덕주민공동체는 ‘이대로 끌려 나갈 수 없다’ ‘내 고향 내 집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를 외치며 만덕 마을 내 만덕사랑방을 농성장으로 유지하며 만덕5지구가 제2의 용산이 되더라도 행정대집행을 버텨내겠다는 기조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미 90% 주민이 이주한 상태에서 10명 미만의 만덕주민공동체 주민들 힘만으론 LH에 저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덕5지구가 제2의 용산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연대를 비롯한 각 언론사의 보도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알고 계시는 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LH공사는 부채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대부분 무주택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보금자리주택과 임대주택에서 비롯된 것처럼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LH공사가 현재 빚더미를 안게 된 배경은 민간건설사의 미분양아파트 매입임대사업, 건설사 소유 토지 매입 추진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결과로 부채가 더 늘어난 LH공사는 ‘수익을 내기 위해’ 무리하게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사업시행을 진행하며 주민들의 주거권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8년 공개된 고양 풍동 지구의 분양원가 공개로 LH공사가 1,946억 원의 분양원가를 2,594억 원으로 부풀려 648억 원, 33.3%의 분양수익률을 거둬간 것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좋은 생활환경”과 소위 “삶의 질 향상”을 빌미로 개발동맹들은 도시 재개발을 위해 아주 비싼 투자를 합니다. 이는 위험도 아주 높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성공하면 많은 이익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개발동맹이 그런 계획을 뒤에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지주들, 투기자들, 개발가들, 금융가들, 그들의 세금기반을 높이기 위해 필사적인 지방정부 등이 그들입니다. 따라서 도시 재개발은, 주민들의 소득에 기반 한 삶의 질 향상이 아니라 개발동맹의 이익을 위해 계획되고 추진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거주지에서 쫓겨나고 있어도 주민의 권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민공동체가 해체되어야 개발동맹은 이익을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가계부채 1,000조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대기업과 공기업들이 매년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으나 우리 서민들은 다들 빚쟁이가 되고 있습니다. 90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되지 않는 청년실업, 소득격차와 주거비 상승 등 우리 서민의 삶은 파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부산시와 북구청, LH는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변질시키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덕5지구 주민들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LH는 더 이상 저소득층의 주거복지를 위한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 자본과 경쟁하며 원주민을 착취하는 기업이 된 것입니다. 부산의 미분양 아파트는 작년 4월부터 4천 가구를 넘어서 2003년 이후 최대였습니다. 이는 지불능력이 없는 서민의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값비싼 아파트를 건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재개발,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주택은 갈수록 없어져 단독주택의 주거비가 상승하고,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중략)
이러한 이유로 부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부산시와 북구청, LH의 주거생존권 박탈 행위에 맞서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만덕5지구 주민들의 생존권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009년 1월 20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날입니다. 올 해로 벌써 7주기가 됩니다. 당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왜 일어났는가? 누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만덕에서도 공권력이 마음대로 주민을 쫓아내고 아파트를 지으려 합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면서 주거권을 전혀 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몇 명 남지 않은 마을 주민들은 “우리는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주거권, 내 집에 살고 싶다는 것 뿐”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하느님 나라의 거처 개념은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똑같이 차별 없이 거처할 곳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거처 개념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진리이신 예수님,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진리에 어긋난 부정과 부패, 생명을 파괴하는 천민자본주의, 개발자본주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입니다.
“교회에서 세상일에 대해서 왜 말하느냐?”라고 사람들은 자주 묻곤 합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바로 교리서의 제3편에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잘 나와 있습니다. 경제, 정치, 평화, 가정, 학교, 시장이든 여러 일상의 생활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사회교리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21)는 복음구절을 얘기하며, 교회는 사회참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또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복음구절은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이나 기본 인권이나 복음의 가르침 등에 어긋날 때, 시민들은 양심적으로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으며, 공권력의 요구가 올바른 양심의 요구에 어긋날 때, 공권력에 복종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에 대한 복종과 정치 공동체에 대한 복종이 다르다는 데서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옳습니다.
즉 위의 말씀은 종교가 사회에 참여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직접적인 참여를 말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807쪽, 2242항)
교회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바로 교회의 십계명에서 네 번째 계명은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내용입니다. 단순히 나의 친부모를 공경하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익을 위해 사회 안에서 하느님께 권위를 부여받은 모든 사람도 존경할 것을 명하는 것입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봉사하기 위해 이를 행사해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 공권력의 행사는 그 권력과 신적 기원과 합리적인 성격과 그 목적의 특성에 따라서 윤리적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법에 어긋나는 것을 명령하거나 입법화할 수 없습니다.(2235항)
공권력을 행사하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법원과 공기업은 주민들 위에 군림하거나 특권을 누리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서 주어진 자리입니다. 국민들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그들이 올바른 정의와 자비로운 태도로 만덕5지구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함께 저항하고 기도하며 기억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