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8일 일요일 맑음
임보 시인께서 그 유명해진 “아내의 전성시대”라는 시에 이어서 페북에 아내를 두고 “학장님, 우리 학장님”이라는 시문을 올리셨다.
“우리 내외가 자동차로 외출을 할 때면 으레 내가 운전석에 앉는다. 아내는... 주로 내 우측에 앉아서 운전교습소의 교관처럼 구두로 운전지시를 한다... 어떤 차가 버릇없이 끼어들거나 위태롭게 무단 횡단하는 행인을 보게 되면 야단이다. 야단 정도가 아니라 우리끼리 얘기지만 교회의 권사님답지 않게 분기탱천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민망해서 ‘권사님! 권사님!’하며 당신의 직분을 환기시켜 가라앉혀 보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이 약발로도 안 통한다. 그러면 ‘학장님! 우리 학장님!’한다.... 교회에 있는 노인대학의 학장이다....”
그런데 내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은 우리 보스코는 내가 심한 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너는 벤츠 몰 자격 없다”, “너 면허증 누가 줬냐?”,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들기를 해! (깜빡이등은) 국 끓여 먹을 꺼냐?” 정도의 혼잣말을 할라치면 “당신 차나 운전하세요. 남의 차들까지 모조리 챙기지 말고”라고 간섭한다. ‘남편’이 아무리 ‘남의 편’이라지만 운전을 안 하니까 그러지, 그런 잔소릴 하다보면 운전기사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린다는 걸 모른다. 물론 느닷없이 끼어든 사람에게 “그대 가는 길에 평화를...” 하면 나 역시 맘이 편하기는 하지만....
‘주님 승천 대축일’이고 미사 후 서울을 가야 하므로 일찍 집을 나섰다. 함양성당에 들어서니 예쁜 할매들이 예쁜 한복을 차려입고서 ‘어버이 날’ 꽃을 달아 주는데 보스코에게만 달아주고 내 달덩이 얼굴이 ‘어버이’는 아니라며 안 달아주니 좋아해야 할지 아닌지 헷갈린다.
신부님의 정성스런 전례와 부드럽고 겸손한 자세가 그동안 상처를 받고 있던, 내 곁에 앉은 베드로씨와 루치아씨 얼굴에서 환하게 기쁨으로 피어난다. 신부님은 어제부터 여섯 대의 미사를 봉헌하노라고, “그렇게나 은총을 많이 받고서도 하느님께 보답을 못하니 당신은 불효자”라는 말씀으로 강론을 시작하신다.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성모성월이니 성당에 올 때 자녀들을 꼭 데리고 와 그리스도교 신앙과 성모신심을 익히게 만들라고, 부모가 신앙대로 살고 행동하는 건 ‘가르치는 것’이고 “성당가라! 착하게 살아라!”고 야단치는 건 ‘가리키는 것’이라고, 자식을 가르키지만 말고 가르치라고, 하느님도 온갖 율법과 예언자로 가르키시다 가르키시다 못해 몸소 가르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하셨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어르신들께 '백세인생'을 노래해 드렸다!
미사 후에는 성모회에서 어르신들과 온 교우에게 마련한 점심잔치가 있었는데 그 얌전해 보이는 본당신부님이 어르신들 사이의 최신 유행곡을 부르며 춤까지 추셨는데 그 열창에 교우들이 빵! 터졌다. 더구나 손님으로 오신 최신부님, 안식년을 받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기 직전 터무니없는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고 이달 19일에 수술날짜를 잡아 놓으시고서도, 무대에 올라가 ‘모나리자’를 얼마나 신나게 부르고 멋지게 춤을 추시는지! 당신 속내를 꾹 감추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잔치에 어울리시는 그분의 모습에서 공인(公人)으로서의 처신이 어떠해야 할지 ‘가르쳐 주셔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 부부에게 어버이날을 챙겨주러 온 미루와 함께 점심 후 상림에 가서 들양귀비와 수레국화가 막 피어나는 꽃밭을 거닐며 사진도 찍고 많이도 깔깔거렸다. ‘귀요미’와 함께하면 행복 바이러스가 마구마구 뿌려져 모두가 오염된다. 그니의 남편 이사야는 이 현상을 ‘미루중독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콩꼬물’에서 그니가 사주는 눈꽃빙수를 먹다 차 시간에 늦어 싸달래 들고서 2시 29분 고속버스를 겨우 탔다. 긴 연휴 끝이라 (임시 배차한 ‘지리산고속’ 버스 네 대가 줄지어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길이 많이 막히자 기사가 중부고속도로 대신 경부선 버스전용차로를 달려 평소보다 30분만 늦게 서울에 도착했다. 내가 운전 안하는 차를 타는 게 얼마나 편한지!
차 안에서 빵고 신부가 축하 전화를 해왔고, 집에 들어오자 빵기네 식구들이 스카이프를 해 오고, ‘손총각’(다온이 아빠)이 축하인사를 하며 다온이가 10월이면 동생을 본다는 기쁜 소식을 알리고, 부귀의 최신부님과 고달픈 김신부님도 축하문자를 보내오시고.... 끝으로 가장 가까이 사는 엽이가 밤에 들어오면서 꽃과 케이크로 하루를 마무리 해줬다. 우리 아이들이 멀리 있기에 고맙게도 가까운 모든 이가 우리와 함께 해주는 어버이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