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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보도연맹 학살사건’, 66년 만에 국가배상 판결
  • 최진
  • 등록 2016-05-11 16:02:29
  • 수정 2016-05-11 16: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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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9월 11일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 피학살자 제7회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사진출처=한국전쟁유족회)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 민간인을 학살한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중 하나인 ‘진주보도연맹 학살사건’에 대한 국가배상판결이 66년 만에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는 국가가 과거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경우 소멸시효가 지나도 그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0일, 진주보도연맹 학살사건 희생자 46명의 유족 18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희생자 44명의 유족 156명에 대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의 주요 쟁점이었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완성 여부에 대해 정부는 집단학살 행위(1950년 전후)가 일어난 지 3년의 소멸시효가 지났으므로 유족들이 그 권리를 상실했다고 주장했지만, 유족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의 조사결과 발표(2009년 10월)가 있었던 뒤부터 소멸시효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법원은 “국가가 적절한 입법조치 등을 취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무런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자 비로소 국가를 상대로 개별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진실규명 결정일로부터 3년이 지나기 전에 소송을 낸 점 등을 고려하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 행사를 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과거사 손해배상 사건에서 대법원이 유족들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임에 따라, 향후 소멸시효가 지난 과거사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국가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과거사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손해를 알게 된 날부터 3년, 손해가 있은 지 10년까지다. 


재판부는 승소한 156명 이외의 유족 4명에는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패소를 확정하고 나머지 24명의 유족에는 상속관계와 국가배상금 상속분 등을 다시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진주유족회 강병현 회장은 국가에 의해 희생을 당하고도 ‘빨갱이’라는 오명을 써야 했던 지난날의 삶이 한스럽다면서도 이번 재판의 승소로 국가의 잘못이 인정돼 기쁘다고 밝혔다. 현재 진주유족회는 진주 명석면 일대 등 집단학살지에 대한 추가 발굴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오는 7월 초 진주청소년수련관 에서 합동 위령제를 지낼 예정이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6월부터 9월까지 국민보도연맹 회원 수만 명을 정부가 국군과 경찰을 동원해 학살한 사건이다. 보도연맹은 정부가 좌익 전향자를 관리·통제하기 위해 1949년 설립한 단체지만, 당시 수만 명의 민간인이 별다른 이유 없이 강제로 단체에 가입됐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국군과 경찰을 동원해 이들을 재판절차 없이 강제로 연행해 집단 총살하고 이를 은폐했는데, 이 과정에서 보도연맹과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이 함께 살해당했다. 당시 진주에서도 7월 중순부터 진주경찰서 소속 경찰과 진주지구 헌병대 등이 인근 지역의 보도연맹원들을 소집해 진주형무소에 가두고 보름에 걸쳐 집단 살해했다. 


과거사위는 생존자들의 증언 등을 기반으로 2년간의 조사 끝에 2009년 10월 진주국민보도연맹 학살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전시 상황이라 할지라도 경찰이 정당한 재판과정 없이 민간인과 보도연맹원을 집단 살해한 것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 국가의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당시 진주보도연맹 학살 희생자는 수천 명으로 예상됐지만, 신원 확인 등의 어려움으로 확정 발표된 인원은 77명이었다. 유족들은 이를 토대로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가 있은 지 2년 8개월만인 2012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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