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저녁 또 한 번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화요일이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봉헌되는 ‘신유신독재 타파를 위한 천주교 시국기도회’에 참례하곤 하는 발걸음을 이번엔 하루 늦추어 화요일 저녁에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조성만(요셉) 열사 28주기 추모미사’에 참례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도 바삐 서울에 가면서 지방에서 사는 핸디캡을 실감하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사는 처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곤 했다. 연이틀이나 연삼일 서울에 머물며 월요일 저녁의 시국미사와 화요일 저녁의 조성만 열사 추모미사, 수요일 저녁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미사’에 참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아내를 직장에 내보내며 올해 연세 93세이신 노모를 모시고 사는 처지에서는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화요일 하루나마 오후에 출발하여 다시 광화문광장에 갈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하느님을 믿고 사는 신앙인이므로, 그것 역시 하느님의 배려와 은총으로 깊이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앞 가톨릭회관 7층 옥상에서 분신 후 투신하여, 조국의 민주통일제단에 목숨을 바친 서울대생 조성만 열사 28주기 추모미사에 참례하면서 큰 회한에 사로잡혔다. 조성만 열사 사후 28년이 지나도록 추모미사에 참례하기는 처음이라는 사실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갖게 했다.
추모미사를 집전하는 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의 강론을 들으며 깊은 감명 속에서 28년 전 5월의 풍경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민주화와 평화통일 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조성만 열사의 분신 투신 당시의 상황을 부분적으로나마 잘 기억할 수 있었다. 25세의 조성만 열사가 몸을 던지며 절규했던 “조국 통일! 양심수 석방!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라는 외침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영성체 후에는 조성만 열사의 분신 투신 장면을 담은 영상을 비롯하여 서울 도심과 광주 시내를 인파로 가득 메웠던 장례 모습과 생전의 활동 모습들을 담고 있는 영상을 대형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런 귀중한 자료들을 잘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조성만 열사를 잘 기억하면서 그 기억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추모미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며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실행위원인 이원영(55)씨의 인사말을 통해 여러 가지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조성만 열사가 생전에 함께 했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산하 청년단체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명동성당과 가톨릭회관에서 추모미사를 지내다가 2000년대에는 홍익대 앞의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추모미사를 지냈고, 지난해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아픔을 나누며 조성만(요셉) 열사를 추모하는 미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지난해와 올해의 추모미사 주최 단체는 ‘가톨릭평화공동체’,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전국가톨릭대학생동우회’, ‘서울대학교민주동문회’이며, 후원단체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가톨릭뉴스지금여기’, ‘가톨릭프레스’라고 했다. 주최 단체의 주력 일꾼들은 조성만 열사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로서 50대들이라, 앞으로도 조성만 열사를 기억하는 작업이 계속 이어질지 걱정이 없지 않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가톨릭평화공동체’는 과거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가톨릭민주청년공동체’, ‘명동성당청년단체연합회’, ‘전국가톨릭대학생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2013년에 결성됐으며,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은 제18대 대선 불법부정선거 문제가 부각되면서 2013년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결성되었다.
주최 단체 주력 일꾼들의 연령 문제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듣는 순간 ‘민주회복’이 우리 시대 최대 과제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정권 교체로 민주정부를 수립한 다음 조국의 민주통일 제단에 목숨을 바친 모든 열사들에 대한 추모 행사를 정부 기구에서 전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런 간절함을 되새기자니 오늘 이때까지 조성만 열사를 잊지 않고 추모해온 사람들, 기억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과 고마움이 다시 뜨거워졌다. 조성만 열사와 젊은 시절 신앙과 의기를 함께 나누었던 ‘동지’들은 이제 모두 50대 초로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들의 ‘기억’이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널리 공유되기를, 그들의 모든 노고들이 보람으로 영필 수 있는 계기가 오기를 진심으로 희구하며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28년 전 25세 꽃다운 나이로 광주학살 세력 척결과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에 대한 희원을 올곧게 부르짖으며 스스로 몸을 던져 산화한 조성만(요셉) 열사를 진심으로 추모하면서, 올해의 광화문광장 추모미사에 참례한 100여 명 신자들의 심금을 울린 상지종 신부의 시 형태의 강론 전문을 여기에 소개한다.
조성만 요셉 형제에게
-2016. 05. 10 광화문 세월호 광장, 조성만 열사 28주기 추모미사에서
또다시 5월입니다
조국통일과 민주화를 염원하며
그대의 한 목숨 아낌없이 내던진 5월입니다
독재의 망령을 뒤집어 쓴 분단 세력이
여전히 활개 치는
참담한 분노와 절망의 시간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참 세상 이루려는
참 사람들의 갸륵한 마음과 몸짓 모두어지는
가슴 벅찬 기쁨과 희망의 시간
또 다시 5월입니다
그대 먼저 가신 28년의 시간을 부여잡고
그대를 기억하고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를 품으려는
그대의 고운 벗들이 모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1988년 5월 그대의 마지막 말을 되새깁니다
박해자가 되어 순간의 헛된 탐욕을 채우기보다
부활을 향한 십자가의 길을 당당히 걷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그대여
그러니 여전히 우리와 함께 걷는 그대여
그러니 여전히 우리를 곱게 다그치는 그대여
믿음직스러운 마음으로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대의 벗 우리를 바라보소서
그대 죽음으로써
자신만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던
무관심한 이들을 일깨웠듯이
우리 삶으로써
서로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아름다운 연대를 이루리니
그대 죽음으로써
갈라진 나라의 억압받는 민중의
찬란한 부활을 노래했듯이
우리 삶으로써
너와 나 갈림 없이 모든 이 존엄한
이 땅의 하느님나라 이루리니
그대 죽음으로써
자주, 평화통일, 민주주의 제단에서
거룩한 제물이 되었듯이
우리 삶으로써
우리 민족 모두가 하나 되는 대동의 잔치를
평등 평화 정의가 물결치는 민주의 잔치를
신명나게 벌이리니
사랑하는 벗 조성만 요셉 열사여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벗이여
십자가를 넘어 찬란히 부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