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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권종상] 혐오와 광기가 만났을 때
  • 권종상
  • 등록 2016-06-14 11:45:52
  • 수정 2016-06-14 11: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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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주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들 (사진출처=@orlandomayor)


늘 그렇듯, 일요일엔 미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와 성당 재정위원으로서 사무를 봅니다. 일주일 잘 지내셨냐고, 들어오는 분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일요일 성당 사무실은 원래 분주한 곳입니다. 헌금낼 잔돈을 바꾸러 오는분도 계시고, 교무금 내러 오는 분도 계시고, 생미사 연미사 신청을 하러 오는 분들도 계시고. 자연스럽게 성당에 오는 분들을 거의 만나게 됩니다. 가끔씩 성당 사무실에 비치해 놓는 사탕과 과자를 찾아 달려들어오는 어린이들까지도.


좀 우울한 마음으로 아침을 열었더랬습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플로리다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또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저지른 사건이란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이슬람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극단주의자’ 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살된 범인에겐 그가 신의 뜻이라고 믿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지만, 이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반 이슬람의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이고, 인종적, 종교적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는 그의 인기를 더욱 높여 줄 계기가 될 것이 두렵습니다.


당연히 이슬람, 무슬림에 대한 의혹의 눈빛, 그들이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폭력도 늘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폭력은 다시 폭력으로 악순환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극우화를 부추길 겁니다. 그래서 지금 참 현명한 대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극단주의는 그것이 어떤 종교의 탈을 쓰던 무섭습니다. 지금 유럽이나 미국이 이 극단주의에 대해 비난하지만, 이들의 역사엔 무엇이 있었습니까? 과부들의 재산을 노리고 이를 강탈하기 위해 일어났던 마녀사냥. 극단적으로 화형을 하나의 쇼로 만들어 기독교의 이름으로 이들을 고문하고 결국 마녀라는 자백을 받아낸 후 태워 죽인 것은 결국 기독교와 당시 권력자들의 결탁으로 이뤄진 거였지요. 여성을 고문하고 옷을 벗겨 태워죽인 것은 그들의 속에 있는 관음증을 그들의 죄가 아닌, ‘마녀의 죄를 단죄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치환시켜 욕구를 해소시킴과 동시에 권력의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었지요. 


현재의 관용의 정신이 확립될 때까지, 인간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1572년 8월 24일 일어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사건에서, 당시 천주교인들은 무려 7만명으로까지 추정되는 개신교도들을 학살했습니다. 신의 정신이 아닌 인간의 욕심과 권력이 들어가 있는 권력 체계로서의 종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짓들을 인간에게 가능케 했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 역시 실상은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업 전반의 자산들과 그들이 축적해 놓은 부를 강탈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되, 예수를 살해한 민족인 유태인들을 세상에서 멸절시켜야 한다는 명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광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광신도들의 난동이었습니다.


이슬람에서도 지금 저 극단적 난동을 피우고 있는 이들은 한 줌일 뿐입니다. 사실 아랍에 살고 있는 모든 무슬림의 숫자를 합쳐도 중국 내 무슬림의 숫자나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숫자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슬림이란 사람들을 생각하면, IS와 같은 극단주의자만을 생각하게 됩니다만 그들의 대부분은 평화를 사랑하고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일어난 총기난사 학살 사건은 다시 일반적인 무슬림들에게도 광신도, 피해야 할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여 버릴 겁니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세계대전 직전의 광기로 돌아가겠지요. 


이런 때, 하필이면 이런 때 세계는 극우의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페르디난트 공 부부를 저격한 것 자체가 이유는 아니었더라도, 그것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불러오기 충분했습니다. 이런 사건들 하나하나가 지금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때입니다. 세상이 이런 광기에 휩싸이지 않도록 기도가 절실한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의 뜻이고, 알라의 뜻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과 알라는 결국 같은 단어입니다. 알라라는 말 뜻 자체가 ‘신’임을 모르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알라와 하느님은 다른 존재가 아니란 말입니다.



[필진정보]
권종상 : 미국 시애틀에서 우체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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