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존경을 받은 공인(公人)의 인터뷰 기사는 저작권법상 독점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26일, 서울남부지법 민사 13부(재판장 김도현)는 평화방송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인터뷰 기사와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사진작가 전대식 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며 청구 대부분을 기각했다.
전 씨는 2011년까지 재단법인 평화방송·평화신문 사진기자로 20년간 일하며 김 추기경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전 씨는 평화방송을 퇴사한 뒤 김 추기경 선종 3주기이던 2012년 자신이 촬영한 사진과 미발표 자료를 모아 사진 전시회를 열었고 이에 대한 호응이 크자, 같은 해 12월 사진 수필집 ‘그래도 사랑하라’를 펴냈다.
이 책은 주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판매수익을 올렸고, 평화방송은 2014년 해당 책의 출판 금지·완제품 전량 폐기와 함께 판매 수익금 5억3천400만 원과 위자료 1억 원을 배상하라는 등의 소송을 냈다.
평화방송은 김 추기경의 말씀과 사진에 대한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다. 해당 책에 나온 사진 110장은 전 씨가 평화방송 재직 기간 중 찍은 것이므로 저작권이 회사 측에 있고, 책에 나온 김 추기경의 발언 중 일부도 평화방송이 2004년에 펴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라는 책 내용과 비슷해 저작권 침해라는 것이다.
이에 서울남부지법은 평화방송의 청구를 대부분 기각하고 평화방송 명의로 공표된 사진 12장만 저작권 침해를 인정해 장당 10만 원씩 12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존경받는 공적 종교인인 김 추기경의 말씀은 널리 전파돼 사랑과 나눔의 고귀한 정신을 강조한 그의 삶을 많은 사람과 나눌 필요가 있다”며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된 인물로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공인이라는 점에서 김 추기경의 말씀을 독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평화방송의 설립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소송의 핵심인 저작권 침해에 관해서는 “평화방송의 저작물은 김 추기경의 구술을 그대로 받아 적어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아 저작권 보호 대상으로 볼 수도 없다”며 “전 씨가 발췌한 분량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출처도 참고 문헌 형식으로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평화방송의 명의로 공표됐다고 볼 수 있는 12장의 사진에 대해서만 저작권 침해를 인정, 사진 1장에 10만 원으로 계산한 120만 원만 평화방송에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또한, 평화방송 측이 청구한 전 씨의 책 전체 폐기·출판 금지에 대해서는 “저작권 침해 부분만 폐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결했으며, 소송비용의 90%를 평화방송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