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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시선] 언론이 ‘재난’으로 전락한 한국사회
  • 최진
  • 등록 2016-07-22 19:34:33
  • 수정 2016-07-22 19: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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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세월호 피해자 지원 실태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지난 2년간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이 짊어져야 했던 아픔을 공개하며 국가재난대책 개선에 발판을 마련했다. 


국가기관이 재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은 한국 역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국가의 대처와 대책방안은 과연 개선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이날 발표회는 그래서 더 많은 문제점이 지적됐다. 사실 거의 모든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것은 이러한 재난대책 평가에서 ‘언론의 무례함’이 공통적으로 언급됐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언론은 스스로 제 2의 재난이 됐다”고까지 평가받았다. 


이유인즉, 특종에 혈안이 돼 피해자들의 인권과 기본적인 예절을 저버린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몇몇 사례를 듣자 곧 이해됐다. 치열한 취재경쟁의 결과는 피해자와 국민에게 ‘오보’와 ‘왜곡’의 기억만 심어주었고, ‘기레기’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기자들은 무례하고 상식도 없는 집단이 됐고, 피해자 재난지원 평가에서는 ‘재난’으로 평가됐다. 세월호참사 당시의 언론인들 모습은 앞으로 계속해서 회자될 것이며 이를 보고 뼈아픈 반성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일개 임명직 공무원이...” 청와대의 명백한 언론통제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언론시민단체들이 지난달 30일 한 개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녹취록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이 KBS 보도국장과 통화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정현 의원은 2014년 4월 21일과 30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보도 내용에 항의하고, 보도방향을 지시했다. 이 의원은 ‘뉴스 편집에서 빼라’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라’며 편집까지 직접 지시했고, 국가 사정을 운운하며 구두로 보도방침을 내렸다. 


또한 ‘뛰어내리라고 했는데 안 뛰어내렸다. 그걸 가지고 조져대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 ‘뛰어내리지 못하게 한 그놈들이 잘못’이라고도 말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여 만에 이 의원은 참사에 대한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이 판단하고 지시했다. 


▲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당시 KBS보도국장의 통화내용 (사진출처=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이에 김 전 보도국장은 ‘무슨 말씀인지 알겠다.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느냐’며 이 의원의 지시를 수용했다. 앞서 지적한 ‘현장 상황과 언론보도 내용이 달랐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었다. 


2014년 4월 30일 KBS 뉴스9는 ‘사고 초기 해경, 언딘 때문에 군 투입 못 해’, ‘왜 하필 언딘’, ‘당황 말고 침착? 허술한 해경 구조 매뉴얼’, ‘탈출 방송. 전화벨 소리보다 작았다’ 등이 보도됐다. 공영방송이 제기해야 할 정당한 질문들이었다. 


현장은 극심한 취재경쟁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윗선에서는 뒷거래가 이뤄졌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보도되지 않았다. 2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았다. 녹취록은 그동안 품어왔던 의혹, 그 이상으로 정언유착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녹취록은 큰 파문을 불러왔다. 학계와 언론단체,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지역민들도 나서서 공영방송 내부에서 벌어진 청와대의 언론통제 상황을 규탄했다. ‘청와대와 언론 간의 유착관계를 끊어야 한다’로 요약되는 성명서들이 줄을 이었다. 보수성향인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보도개입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이 상황에도 다른 공영방송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 부끄러운지 침묵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녹취록 파문이 시작 된 지 4일이 넘는 동안 관련보도로는 MBC 1건, SBS 3건에 그쳤다. 그러나 정작 녹취록 파문의 당사자 격인 KBS는 이 상황을 국민에게 전하지 않았다. 닷새째 관련 뉴스를 보도하지 않자, KBS 27기 기자들은 5일 ‘청와대 보도 개입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라는 성명서를 통해 보도국 간부들을 비판했다. 


이들은 “일개 임명직 공무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마음대로 전화한 뒤 답변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욕설까지 섞어가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그러면서 ‘대통령도 봤다’며 간교한 협박을 서슴지 않는 상황이 KBS 위상을 보여준다”며 “정작 KBS는 아무 말도 없다. 우리 얼굴에 튄 더러운 침을 닦아내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 법적 대응은 고사하고 작성된 단신 기사도 무시됐다”고 밝혔다. 


또한, 13일 기자협회보를 통해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 사태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간부들을 비판했던 KBS 정연욱 기자는 이틀 만인 15일 느닷없이 제주도로 발령을 받았다. 또한 KBS 고대영 사장의 ‘사드해설 보도지침’ 논란, ‘사드배치 반대시위 외부세력 개입’ 리포트 제작 지시 등이 연달아 나오면서 KBS 기자와 구성원들의 반발이 커졌다. 


언론은 타협할 수 없고 양보해선 안 되는 ‘국민의 도구’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성주군민 상경집회 현장에서 한 시민은 KBS 방송 카메라를 막으며, “이놈들도 조선일보 같은 놈들이야. 치워버려야 돼”라며 물리력을 동원해 취재를 막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KBS 기자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 성주군 상경집회는 방송에 보도됐다. 외부세력 차단과 평화집회를 강조한 보도였지만 그래도 절박한 군민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국민에게 전해졌다. 


공영방송은 우수한 장비와 전문 인력으로 현장을 누빈다. 촬영 담당은 자리싸움으로 치열하고 카메라 기자들도 중요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노트북을 든 기자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저앉아 빠르게 타이핑을 한다. 현장은 매번 치열하고 사납다. 각자가 보이지 않는 독자들을 생각하며 사명감으로 움직일 것이다. 


▲ 21일 서울역에서 있었던 사드 배치 반대 집회. 집회 현장은 참석자들과 발빠른 취재를 나온 취재진들로 붐볐다. ⓒ 최진


그러나 확인되는 보도내용은 종종 실망스럽다. 중요한 내용에서 벗어나 자극적인 것만이 두드러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보도자료 내용에서 몇 단어를 바꿔 보도되기도 한다. 부푼 기대를 안고 완성된 작품을 보고자 했다가 실망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이번 녹취록 파문으로 정확히 드러났다. 


언론이 ‘재난’으로 전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권력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사회 정화의 사명을 띠는 언론이 스스로 피해야 할 재난으로 평가됐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은 무분별하고 예의 없는 언론인에 대한 실망도 컸겠지만, 그렇게 자신들을 들쑤시고 괴롭힌 후 정작 내놓은 왜곡보도에 더욱 분노했을 것이다. 적어도 세월호참사에서 언론의 성적표는 최악이다. 


이번 청와대의 언론통제 녹취록 파문이 청와대의 수많은 잘못 중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언론을 통제한다는 것은 국민의 눈과 귀를 장악한다는 의미에서 사실상 모든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정작 세월호 가족들은 ‘배·보상’과 ‘대학진학 특혜’ 등에 무관심했다. 자신의 몸과 정신마저도 ‘진상규명’을 위해 내어놓은 그들에게 정부의 지원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가족들이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오해는 ‘돈에 눈먼’과 ‘폭력집단’이었다. 언론이 사드문제와 관련해 외부세력 개입 보도에 집중하자, 성주군민은 절박한 심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고립시키며 외부세력 개입이 없음을 증명해야 했다. 


언론이 왜곡되니 세상이 왜곡됐다. 언론이 재난으로 평가받는다면 사실상 한국 사회 전체가 재난이 돼버린 셈이다. 세월호참사와 같은 국가재난, 백남기 선생 물대포 사건과 같은 국가폭력, 사드배치와 관련한 국가 실책 등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해진다. 그 국민이 투표를 해 정부를 세우고 그 정부가 정책을 시행한다.


언론은 타협할 수 없고 양보해서는 안 되는 ‘국민의 도구’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이번 녹취록 사태를 그냥 넘길 수 없다. 그 동안 청와대의 보도개입과 관련한 법정 공방은 있었지만, 모두 무혐의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번 녹취록은 명확한 증거가 있는, 놓쳐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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