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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조카사위가 혀를 내두른 두 ‘꼬꼽쟁이’
  • 전순란
  • 등록 2016-08-03 09:54:09
  • 수정 2016-08-03 10: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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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2일 화요일, 맑음

 

간밤에 엽이가 못 들어왔다. 회사일이 많아 토요일과 주일 오전에도 회사엘 갔다며 더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더구나 몸을 쓰는 일을 하지 않다가 내가 얻어온 냉장고와 세탁기라는 그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옮겼으니 몸살도 났겠다. 새 상품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문제가 없으면 저녁에 일찍 들어와 집안 치우는 일을 돕겠다더니...

 

집안 구석구석에 총각 혼자서 생활에 쫓긴 흔적이 들어난다. 어제 오후에는 뒤꼍에 쌓인 쓰레기를 내 손으로 분리수거하면서 최소한 걔가 장가가기 전에 분리수거하는 방법은 꼭 가르치야겠다고 맘 먹었다. 보스코도 정리와 청소는 가능하지만 처음부터 익숙하지 않아선지 쓰레기 분리수거는 아무리 가르쳐도 못 배운다. 먼저 총각들은 쓰레기 분리에 탁월했으므로 지금도 아내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그 부분이 제법 큰 몫을 하리라.

 

성심원 '포르치웅쿨라 축제'가 철야를 하고서 새벽미사로 끝맺음 했다는 미루의 사진 


10시에 조카사위 곽서방이 창과 마루 견적을 내러 영업팀 동료와 함께 왔다. 휴가 중이라는데 큰절할 처갓집 말 말뚝은 없고 고모가 대신 이 사위를 괴롭힌다. 40년을 산 집이어서 구석구석 우리 손이 고루 닿아있다. 가난한 시절에 우리만큼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존중해서 손질을 해 주던 차사장은 인테리어라고 거창하게 부를 것도 없이 가난한 집에 딱 어울리게 고쳐 주었다.

 

아래층 문틀 뜯어다 2층에 쓰고, 1층 계단 뜯어다 3층 다락방 계단으로 재활용하고, 뜯어낸 싱크대 한 칸도 안 버리고 3층 계단 벽에 수납장을 만들었다. 보는 사람마다 이집 확 뜯어내고 새로 지으라.” 하면 40년 보살핀 그 정성이 행여 서운해 할까 나부터 손사래를 친다.

 

이번에도 지호 손에 욕실을 고치려면 어떻게 돈을 적게 들까 머리를 짜고 있으니까 오늘 온 조카사위가 촌평을 내놓는다. 우리 집안으로 장가와서 의문스럽고 적응 안 되는 게 둘 있었단다. 첫째가 우리 오빠 곧 자기 장인이었단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살만한데 그렇게나 꼬꼽하다는 점에 혀를 내 둘렀단다. 두 번째가 고모인 바로 나. 교수부인에다 대사부인까지 했다는 집에 변변한 가구 하나가 제바로 없이 모조리 주워다 놓은 것이어서, 창호와 마루를 업으로 하는 자기 눈에는 참 이해가 안 갔단다.

 

그러고서야 화장지 한 장도 반으로 나눠 쓰는 자기 색시 꼬꼽쟁이가 어디서 온 유전자의 영향을 받았는가 새삼 알게 되더란다. 그런 고모가 창틀을 바꾸겠다니 기특해서 단걸음에 달려왔을 게다. 그러다가도 견적이 너무 나오면 걍 이대로 살다 죽을래.”할까 내심 걱정할지 모르겠다.

 

서울을 떠나는 기분은 혹성탈출이다. 대진고속도로에 들어서고 보스코가 전화를 해서 지리산엔 어제도 비가 한 차례 왔고 좀 전에도 비가 와서 시원하다고 어서 오란다. 차가 덕유산으로 들어서자 1미터 앞이 안 보이게 소나기가 쏟아지고 기온은 영상 21. 더위에 뭔가 복수를 한 기분이다. 호우에 차창이 안 내다보여 차들이 모두 깜박이를 켜고 달렸다. 그리고 소나기가 멈춘 먼 산은 신선경! 덕유산도 지리산도 운무로 선경을 이룬다.

 

몇 해 전 북이탈리아  오틀레스 산맥을 넘던 날, 8월 16일에 영상 9도!  


7시에 휴천재에 도착. 이번 여행에서 문교수님께 받아 트렁크 가득 채운 노획물을 꺼내 옮기고 정리하며 나는 찬탄을 계속했다. 무슨 남자가 20년 살림에 여자보다 더 찬찬하게 살림살이와 음식자재를 갖추고 있었담! 집에서 썰어 말린 인삼, 계피, 오가피, 차와 온갖 시럽들! 갖가지 양념들! 욕실에서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세제들! 40년 살림 베테랑을 자부하는 나까지도 무슨 남자가!”라는 찬탄을 거듭했다.

 

점심에 컵라면을 먹었다는 보스코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과일을 꺼내니 글쎄, 우리 남편도 그새 문교수님이 접신(接神)을 했는지, 살레시안들한테서 선물로 들어온 커다란 수박을 반으로 잘라 한 쪽은 비닐로 싸서 냉장실에 넣고, 나머지도 두 조각 내어 반은 비닐로 싸서 냉장고에 넣고, 나머지 반은 큐빅으로 썰어서 얌전하게 통에다 담아 놓았다! 세상에, 결혼 후 처음 보는 이 놀라운 광경에 와우! 당신 이름이 성영석이네!” 하며 감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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