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가를 농성장 천막에서 보낸 신부, “아직 배울 것이 많다”
  • 최진
  • 등록 2016-08-04 15:38:40
  • 수정 2016-08-04 15:53:15

기사수정


▲ 폭염 속에서도 백남기 농민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미사가 봉헌됐다. ⓒ 최진


매일 오후 4시에 봉헌되는 ‘백남기 농민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미사’가 3일 수요일에도 어김없이 농성장 천막 성당에서 열렸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톨릭농민회원과 신자들은 백남기 선생을 기억하며 천막 성당을 찾았다. 이날 미사는 농성장 천막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우리농살리기 담당 김인한 신부의 주례로 봉헌됐다. 


김인한 신부는 강론에서 경상도 지역 사람들이 자신의 아픔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살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핵발전소 건설, 미군 생화학 무기 실험장 건립, 사드 배치 등을 통해 경상도 지역민들이 강정마을 주민들과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 그리고 세월호 가족의 고통을 알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백남기 형제가 쓰러진 것은 한 농민이 쓰러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쓰러진 것이다


김 신부는 “지역민들은 주변으로부터 ‘1번 찍더니 꼴좋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혹시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예수와 제자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마귀 들린 딸을 치유하기 위해 간곡히 매달렸던 어머니의 일화(마태오 15,21-28)를 설명하며,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타인의 아픔에 먼저 눈길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예수님의 마음과 이 어머니의 눈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구원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을 무시했지만, 이 여인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강아지 비유에도 굴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무심함과 폭력 속에서도 끝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여기 있는 것도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하는 것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도 힘들어하지 않는다. 결국, 구원에 이르는 사람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아픔에 먼저 눈길을 주는 이들이다”고 말했다. 


▲ 김 신부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우리 것을 지키위 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최진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얼마나 사랑했느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끝까지 사랑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는 사랑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아픔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깨어있는 신앙을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남기 농민을 기억하며 농민들의 수고로움과 밥 한 숟가락의 숭고함을 떠올리게 되고, 세월호로 아이들을 잃은 이 땅을 보면서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수님이 복음에서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얼마나 사랑했느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끝까지 사랑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라며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끝까지 그분의 시선으로 머물기를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휴가기간을 농성장 천막에서 지낸 이유를 묻자, 김신부는 “농민이 제자리를 찾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단 한 번도 땅을 포기한 적이 없다”며 “농성장을 찾은 이유는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의 국가폭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를 통해 드러난 농민들의 현실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백남기 선생을 통해 현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대학병원 앞 농성장에서 봉헌하는 미사의 이름이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미사’였다고 설명했다. 


▲ 매일 오후 4시 서울대학병원 앞 농성장에서 봉헌되는 미사. ⓒ 최진


사랑하는 것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것처럼, 김 신부도 자신의 휴가를 내어놓고 천막에서 폭염을 견뎠느냐고 묻자, 김 신부는 “정말 사랑하는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백남기 형제의 문제뿐 아니라 세상과 국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의미로 이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백남기 형제가 쓰러진 것은 한 농민이 쓰러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쓰러진 것이다”라며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고통 받는 이웃 한사람을 돌아보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생각하게 했다. 세상을 사랑했던 예수님의 시선을 닮기 위해 노력하자는 강론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면서 “농민회를 담당한 지 2년 밖에 안됐다”며 배울 것이 많다고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