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자의교서 ‘성실한 어머니(Sedula Mater)’를 통해 ‘평신도, 가정과 생명에 관한 교황청 부서(Dicastero per i Laici, la Famiglia e la Vita)’를 신설했다. 그 동안 교황청 평신도평의회와 가정평의회가 관장해온 임무와 직무를 통합해 새로운 기구를 만든 것이다. 신설기구에 대한 공표는 17일 이어졌고, 초대 장관에는 미국 달라스의 파렐(mons. Kevin Joseph Farrell)주교가 임명됐다.
신임 장관 파렐 주교는 1947년 더블린에서 출생했다. 스페인의 살라망카 대학을 졸업하고 로마의 성 토마스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이어 미국의 노틀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78년 사제로 서품됐다. 그는 본당신부에서부터 교구청의 경영, 회계 등 전반을 두루 관장하며 다양한 행정경험을 쌓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2001년 워싱턴의 보좌주교로 지명되었고 교구청 총대리로 일 해 오다 2007년 3월에 달라스의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황청은 지난 2000년 대희년을 기점으로 ‘가정과 생명 그리고 혼인’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다각적인 토론과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특별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로마의 라떼란 대학에 ‘혼인과 가정 대학원’을 설립하고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혼인문제와 가정의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교회는 현대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성(性)’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범죄가 생명과 혼인 그리고 가정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구조의 근본적인 시작은 ‘가정’이기 때문이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교황은 ‘평신도’, ‘가정’, ‘생명’ 이라는 주제의 연관성을 숙고했다. 성직자 중심의 관료화된 교회 조직으로는 ‘복음의 기쁨’을 살 수 없다는 인식이 매번 교황의 강론에서 중점적으로 지적되고 있었다. 교회는 교계제도의 정형화된 틀 보다는 생명력과 역동성을 지닌 수많은 평신도들의 자발성과 창의적인 활동이 있을 때 보다 생명력 있는 교회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존의 요한 바오로 2세의 ‘혼인과 가정’이라는 화두에서 혼인을 제외하고 가정이라는 문제에 집중한 것은 이전 교황과의 인식 차이를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혼인과 관련된 문제를 엄격하게 유지해왔던 기존의 교회법적 인식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뛰어 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교황은 선출된 직후 혼인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었던 젊은이들을 교황청 베드로 성당으로 불러 혼인미사를 주례한 일도 있었다.
교계제도의 정형화된 틀 보다는 생명력과 역동성을 지닌 평신도들의 자발성과 창의적인 활동이 있을 때 보다 생명력 있는 교회로 거듭날 것
교회는 ‘혼전순결’과 ‘이혼자의 성사 배제(조당)’등으로 혼인 문제에 있어 엄격한 시각을 유지해 왔으나 교황 프란치스코는 ‘법 이전에 사람이 있었다’는 관점으로 교회법적 문제를 뛰어넘는 ‘사랑의 기쁨’을 모두에게 선물했다. 그래서 복음의 뜻에 따라 성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임을 일깨워 주었다.
‘생명’의 문제는 21세기 교회의 화두일 수 있다. 생명과 죽음을 경시하는 풍조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임에 틀림없다. 교황은 이번 새로운 조직 개편을 통해 전쟁, 질병, 기아, 난민이 일상이 된 세계, 그리고 가난과 전염병, 인종차별과 갈등으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가는 시대에 생명을 수호하는 교회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거침없이 제기했다.
교황은 자의교서 ‘성실한 어머니’에서 “교황청 부서들이 우리 시대의 상황에 적합하고 보편 교회의 필요에 맞도록 하기 위한 신속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기존의 평신도평의회와 가정평의회를 폐지했다. 또한 “(본) 자의교서로 제정한 것이 충실히 지켜지기를 바라며 이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 무효”라는 명시는 기존의 라떼란 대학의 ‘혼인과 가정 대학원’의 수뇌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강경파에 대한 암묵적 경고일 수 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교황의 새로운 교황청 조직개편은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는 탁월한 ‘예언자적’ 풍모를 드러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교회의 ‘틀’을 변화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다. 오래 전부터 있어온 ‘틀’이 스스로에게 자유가 아니라 구속이 된다면 이것은 예수가 이천년 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냐,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냐’라고 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교황의 교서는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또 다른 선물이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