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25일 한센병 감염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척을 지양하고 교회가 한센병과 그에 따른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의 권고를 전했다.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는 ‘한센병에 걸린 이들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전인적 돌봄’을 주제로 올해 6월 9일부터 이틀간 바티칸 시에서 열린 국제 학술 대회의 내용을 정리하며, 한센병에 걸린 이들의 공동체를 사회로 다시 통합하기 위한 노력에 교회가 동참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사자를 배제하지 않는 일'
보건사목평의회는 한센병 발병이 단 하나의 사례라도 매우 심각한 것이며, 이에 대한 낙인과 사회적 배척은 매우 지나친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록 한센병 발병의 사례가 감소 추세에 있지만, 이것이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저하된 결과일 수 있다며, ‘당사자를 배제하지 않는 일 처리’ 원칙이 한센병 낙인에 대처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이들은 “이 발표에서 나온 많은 소중한 권고들은 조기 발견의 증진과 나병에 걸린 이들의 사회 통합을 촉진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라며 “낙인은 흔히 삶에 대한 종교적 관점과 연관된 것으로 이러한 생각을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예수의 가르침은 질병과 죄의 연관관계를 끊고, 치유해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또한, 구약성경 내용에는 한센병 감염자에 대한 낙인이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등 고대 문명 속에서 발견되지만, 신약 성경에 따른 예수의 가르침은 질병과 죄의 연관관계를 끊고, 한센병 감염자들을 어루만지고 그들을 치유해,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게 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보건사목평의회는 “예수님께서는 마치 당신이 나병에 걸린 이처럼 취급받는 것을 몸소 받아드리시지만,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모범을 흔히 잘 따르지 않는다”라며 “이러한 태만이, 나병에 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것보다, 오히려 인간을 모든 의료 활동의 초점으로 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해 준다“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 2세기에 걸쳐 한센병에 걸린 이들을 위한 돌봄과 치료가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도록 이끈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라며 “이 돌봄에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구하며 그들의 버려진 상태를 종식하는 것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가톨릭 교회는 다른 종교 공동체와 선한 의지를 지닌 모든 이들과 협력하는 길이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센병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한센병에 붙어있는 낙인을 없애기 위해서 교육 활동의 중요성을 공통으로 강조하는 만큼,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고자 노력하는 종교단체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코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사목평의회는 “한센병에 감염된 이들이 이 질병과 그에 따른 차별에 맞서 싸우는 데에 주역으로 여겨져야 하며, 이는 사회 통합에 관련된 그들의 동등한 존엄과 권리를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낙인을 타파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고 밝혔다. 또한 낙인을 강화하는 ‘문둥이’ 등과 같은 차별적 언어의 사용도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사목평의회는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 신앙 공동체에서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으므로, 가르침과 글, 연설 등을 통해 한센병은 치유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한센병 감염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배척의 문화를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모든 교회와 종교 공동체, 국제기구, 정부, 주요 재단, 한센병 협회들은 한센병과 그에 따른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동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낳은 정책,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오후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열네 개 유리병의 증언, 나는 왜 태어날 수 없었나’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돼 90년대 초반까지 소록도에서 진행됐던 한센인에 대한 강제 낙태와 단종 등 소록도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연을 다뤘다.
과거 소록도에서 호기심으로 해부실을 사진에 담았던 한 제보자를 통해 알려진 소록도의 상황은 인체표본과 장기, 아직 탯줄이 남아있는 태아 등이 포르말린 용액에 담겨 유리병에 보관돼 당시 자행됐던 끔찍한 현실을 전했다.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낳은 정책으로 국내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한센인 단종·낙태가 시작됐다. 소록도에서는 부부 동거할 수 있으려면 단종수술을 해야 했으며, 그 외의 지역에서도 한센인들은 강제 낙태 등을 당해야 했다.
한센인 피해자 500여 명은 2011년 국가가 단종·낙태 수술을 강제했다며 1인당 5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5건의 국가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피해자들은 낙태 수술이 1980년대 후반까지, 정관 수술은 1992년까지 행해졌다고 증언했지만, 정부는 일제강점기 이후엔 강제수술이 없었다며 한센인 피해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에서 불의한 항소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