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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모든 걸 다 잃더라도 가고 싶은 길을 가라!”
  • 전순란
  • 등록 2016-09-05 11: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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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4일 일요일, 구름


아침 7시 30분에 일꾼들이 도착한다. 오늘은 마루 늘리는 부분에 벽돌을 쌓아 기초를 하고 그 안을 ‘왈가닥’(깨진 벽돌이나 허접쓰레기를 이렇게 부른다)으로 채운다. 그런데 마당 왼쪽 기초 쌓일 부분에 인동초가 뿌리를 내리고 있어 그 뿌리를 잘라버리든지 넓힐 폭을 줄이든지 해야 한다. 고민을 하다 30년을 창밖에서 함께 살아온 ‘가족’의 생사여탈을 결정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불편해도 초목을 살린다!’ 일하는 아저씨들이야 싹둑 베어버리면 편리할 게다.



주일이어서 9시 어린이 미사에 갔다. 그동안 방학을 했고 오늘 주일학교 개학이어서 아이들이 다들 잠이 덜 깬 얼굴이다. 신부님은 미사 드리랴 애들 참견하랴 교우들이 보기에도 수선스럽다. 애들이 신부님 닮아 가는지 신부님이 애들 닮아 가는지 수준이 같다. 좋은 일이다. 천국이 쟤들 것이니까...


‘수능’이 가까워지며 ‘원로 고딩’을 집에 둔 식구마다 까치발로 걸어 다니며 눈치를 봐야 하듯, 성당마저도 ‘수능 분위기’다. 신부님은 그런 고딩들의 애처로움을 살펴, “미래에 대한 선택의 주인공은 바로 너희고 그 책임도 고스란히 너희가 지고 간다”고 북돋우신다. 그리고 “결정은 본인들에게 맡기세요”라고 부모님들께 당부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이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다며 그 분부를 따라 당신이 신학교 가서 신부가 된 얘기를 해 주셨다.


신부님의 ‘자아성찰’은 초딩 6학년에 시작했단다. 정월 초하루 세배를 드리자 아버지는 덕담으로 “너는 장래의 목표가 뭐냐?”라 물으셨는데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대답할 수가 없었단다. 중딩 때도 정월 초하루면 어김없이 같은 질문으로 “장래에 뭐 될 꺼니?” 물어 오시는데 할 대답이 없어 그날이 정말 싫었단다. 그러다 고등학교엘 갔는데 당신은 문과를 가고 싶은데 아버지는 기어이 이과를 가라 하셔서 억지로 이과공부를 시작했단다. 그러던 고2때 1월 1일 그 ‘고문의 날!’ 그 날은 질문이 바뀌어 “너, 뭐 먹고살래?”라고 물으시더란다. 평소에 집에서 엄마 아빠, 삼촌 고모, 할머니의 그 잦은 심부름에 “네, 갔다 올 께요!” 라고만 했지, ‘다음에 뭘 먹고 살지?’는 관심사항이 아니었단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고3을 졸업하고 이과대학에 합격했고 군대 갔다 와서도 ‘이건 내 길이 아닌데’하면서도 시간은 흘러 졸업은 했는데, 취직도 못하고 아버지 회사에 6개월 알바 한 게 사회생활 전부였단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형’이 “우리 신학교 갈래?” 라고 묻기에 “뭐하게? 먹고 살 수는 있는 거야?” 물어 보고는 “그럼 그럴까?” 했다나?



그날 저녁 아버지께 “저 신부 될랍니다”했더니 제일 먼저 온 대답이 ‘귀싸대기’더란다. “그거해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겠냐?” 예전 같으면 그저 맞고만 있었을 텐데 이번엔 다르더란다. “내 인생 내가 결정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그 다음 해에 대신학교 시험을 봤단다. 같이 간 형은 낙방했지만 그 형도 뜻을 굽히지 않고 무려 ‘5수’ 끝에 드디어 수도회신부가 되어 지금 울산에 산단다. 예수님의 요구처럼 “모든 걸 다 잃더라도 가고 싶은 길을 가라!”는 게 초중고딩들에게 들려준, 신부님 강론의 결론이었다. 맞는 말이다, 어차피 인생은 결말에 가서야 평가가 나니까! 내가 살아본 인생도 그랬고. 


성당으로 나가며 마당에서 일하던 ‘작은 차사장’ 지호에게 “너, 요즘도 성당 다니냐?”니까 자기 아들이 4시 ‘학생 미사’에 복사를 서서 가족들은 그 시간에 나가고 자기는 일 끝나고 씻고나서 밤 9시 방학동 미사엘 간단다.


오후 2시 서초동 ‘더바인 웨딩홀’에서 있는, 순애씨 큰딸 결혼식에 갔다. 둘째 딸은 순애씨와 똑같이 생겨 예쁘고 큰딸도 날씬하고 귀엽게 생겼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다 보니 좀 어수선했지만 복음성가 가수 신상옥 씨와 부인의 노래가 참 좋았다. 그리고 신랑 신부가 만난 ‘살사동우회’ 모임에서 살사 아세아 참피언이 공연도 해주어 하객들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다.


4시 40분으로 예매한 버스를 타고 생초에 오니 7시 40분!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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