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5일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소 정문 앞에서 정보공개 없이 진행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운반·보관을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한 폐연료봉이 방사능을 방출하는 위험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라는 명목으로 주민들 몰래 도심 한복판에서 이를 보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날 시위에는 정평위 소속 사제들과 수도자 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오후 5시 30분부터 7시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 앞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반입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해 시민들에게 관련 사실을 알렸다.
정평위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구성한 ‘유성핵안전시민대책본부’의 요청에 따라 매주 월요일 이곳에서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정평위 박상병 신부는 “대전에는 핵발전소만 없지 전국 핵발전소에 들어가는 핵연료봉 공장이나 핵 연구소 등 핵과 관련한 시설이 많다. 그래서 이러한 핵 관련 기관들이 안전하게 일을 하고 있는지 주민들이 감시하고 알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원자력안전법은 핵발전소에 대한 조항만 마련돼 있어 아무런 정보공개 없이 핵물질이 도심 한복판에서 다뤄지고 있다”고 문제를 설명했다.
박 신부는 “최근 언론을 통해 대전 유성구에 폐연료봉 1,699개가 이송됐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전국 핵발전소에서 사용한 폐연료봉은 방사능을 배출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것이지만, 아무런 정보공개 없이 대도시로 들어왔다. 이러한 일이 1987년부터 있었다”고 지적했다.
대전 원자력연구소 폐연료봉 문제는 단순히 원자력발전의 위험 문제뿐 아니라 소비주의가 만연한 사회 전반에 걸친 종합적인 문제로 봐야
지난 6월 29일 최명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87년부터 2013년까지 총 21차례에 걸쳐 국내 원자력발전소로부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폐연료봉)’를 운반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박 신부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자신들이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미국과 일본, 러시아는 우리나라보다 기술력이 떨어져서 사고가 난 것인가”라며 “이미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나고 있는데, 만에 하나 사고가 나게 되면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전 원자력연구소 폐연료봉 문제가 단순히 원자력발전의 위험 문제뿐 아니라 소비주의가 만연한 사회 전반에 걸친 종합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발전과 소비문화, 교회의 복음적 식별 필요
박 신부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말하는 창조물 보호와 세대 간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교황님은 「찬미받으소서」 회칙에서 세대 간 연대를 말한다. 핵연료봉의 반감기간이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라고도 하는데, 지금 우리가 싸게 이용하는 핵 발전이 우리 후손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될 수 있다”며 “교황님이 교회의 생태 회칙을 말한 측면에서 핵 발전은 최대한 빨리 중단돼야 한다. 그것이 지금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정의로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자본주의의 폐해 속에서 소비문화가 발전했다. 소비주의 속에서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문화가 퍼졌다”며 “과연 교회가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복음적 식별을 해야 하는지도 핵 문제와 더불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대전 정평위는 핵사용 연료봉 1,699개에 대한 정부의 정보공개 요구 행동 이후에도 ‘원자력안전법 개정’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핵 문제가 우리나라 국민 전체의 안전과 연관돼있는 만큼, 탈핵과 관련한 시민단체와도 연대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