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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나는 사랑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전순란
  • 등록 2016-09-12 10:10:07
  • 수정 2016-09-12 1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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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1일 일요일, 흐림 춘천


지난번 지리산으로 떠나며 ‘작은 차사장’ 지호에게 집 열쇠를 주며 집 손질의 전권을 주고 갔더니 100점은 아니어도 80점 정도는 된다. 변기에 온수를 연결해 냉수 파이프를 노출시킨 것, 새로 늘린 거실 바닥에 최소한 온돌 필름이라도 까는 일, 식탁 놓일 곳 천정에 전등 설치, 아래층 세탁기에 콘센트 설치, 세탁기 하수시설이 너무 멀리 있거나 화장지걸이가 세면대와 너무 가까이 있는 것 등은 사소한 일이고 모든 것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기로 했다.


고마운 것은 내가 지적하는 모든 말에 “네, 그렇게 할 게요”로 일관하고 모든 일을 바로잡아 간다는 점이다. 단독주택에 살면서 집고치기 40년에 도를 튼 내가 하는 말을 “아줌마는 몰라서 그래요”라고 묵살하려 든다면 ‘한 승질 하는’ 전순란의 진면모를 가감 없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 열린 태도가 앞으로 그의 앞길도 환하게 열어줄 꺼다.



가까이서 차사장 부자와 함께 일하는 일꾼들의 평이 가장 정확할 텐데 작은 차사장과 일하는 걸 모두 더 좋아한단다. 이 말을 들으면 큰 차사장까지 기뻐할 일이다. 형제간에도 시샘이 있지만 유일하게 상대가 잘하고 잘되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게 부자나 모녀관계다. 여성에게 미모를 비교하는 일은 큰 실수지만 “따님이 엄마보다 훨씬 예뻐요”라면 샘많은 여자인 엄마도 기꺼이 반기고 수긍할 게다.


이번 추석 연휴가 끝나야 일, 이층 마루를 깔아 준다니 얌전히 기다리는 중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층 서재에 늘어져 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침대 위로 옮겨서 이층마루 공사하는 사람들 일하기 편하게 치웠다.


11시 30분까지 춘천에서 있을 보스코의 강연 장소에 당도해야 하는데 일요일이면 경춘가도가 심하게 막힌다는 소식에 100Km 남짓한 거리를 세 시간 반전인 8시에 집을 나섰다. 의외로 길이 잘 뚫려 약속장소가 13Km 남았는데 시간이 많이 남아 ‘등선폭포’라는 곳에 차를 세우고 사람들 긴 행렬에 따라 우리도 올랐다.


불과 1~2킬로미터 되는 짧은 계곡에 아기자기하고 맑은 물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폭포가 서너 개 있있다. 외출복과 연사의 정장을 하고 도시형 구두를 신은 우리 둘을 보고 히말라야 등정의 정장을 한 아주머니 등산객들이 수군거리며 지나갔다. 한 시간을 자연과 함께하고 등산로 입구에서 119대원에게 붙들려 ‘심폐소생술 실습’도 했다.



춘천교구 사회사목센터에 도착하니 11시. 교구 사회사목 담당 여 신부님, 이번 강연에 초대하신 김병주 교수님, 노틀담 마리 선이 수녀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빵고 신부의 동기인 조남철 신부님도 와서 반가웠다. 이분들의 융숭한 대접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보스코는 춘천교구에서 복지분야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교우들 150여명을 상대로 “나는 사랑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지난 9월 3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전세계에서 자선사업에 자원봉사하는 분들의 ‘대희년 날’에 행하신 강연을 중심으로 그분들의 활동의 영성적 의미를 밝혀주었다. 사랑받는 만큼 우리 삶이 생기를 얻고, 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어린이, 장애인, 노인과 교도소 수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 그이들이 삶의 생기를 되찾는다면서 그들에게 사랑을 쏟는 분들에게 신앙적인 격려를 보내는 강연이었다.



1시 30분부터 4시까지 2시간 30분간의 강연이 끝나고 함께 주일 미사를 드리고나서 보스코의 신학교 동기인 김운회 주교님이 기다리시는 주교관으로 갔다. 같은 동기인 춘천교구 은퇴사제 김택신 신부님도 만나 즐거운 대화를 하다가 토속음식점 ‘곰배령’에서 주교님의 대접으로 식사를 하고, 우리 숙소로 김병주 교수님이 배려해 주신 ‘상상마당’으로 함께 가서 다 함께 네온사인이 길을 밝히는 의암호 주변을 거닐었다. 주교님과 김신부님 그리고 보스코는 할 이야기가 많아 같이 걷고 나와 베리타스 수녀님은 여자들끼리의 대화를 나눴다.


하루 종일 빡빡한 일정에 피곤했던지 보스코는 자리에 눕자마자 꿈나라로 직행, 내게도 피곤한 하루였지만 일기장을 손에 들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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