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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아직도 저 물은 황토강으로 흐르는데
  • 전순란
  • 등록 2016-09-19 09:57:29
  • 수정 2016-09-19 09: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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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8일 일요일, 오늘도 하루 종일 비


어제 성심원 오신부님께, 산자락 사는 봉재 언니께 주일미사 후 만나 뵙자고 문자를 보낸 터라서 미사 시간 대느라 날듯이 달려갔다. 아직도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산천은 그 푸르름이 하늘을 찌른다. 사람들 만나는 일도 이리 즐거우니 원신부님 노래대로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내 마음 몹시 기뻤노라! 내 마음 몹시 기뻤노라!”라는 말이 가슴에 닿는다. 날 기다리고 반겨 주는 분들이 있는 곳이라면 이 빗속에 어디라도 달려가리라!



성심원 원주민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먼저 와 손가락 없는 손을 모아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서 버림받았을 적에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그분들을 맞아준 유일한 분이 아마도 우리 주님이셨으리라! 인간들이 자신이 가졌다는 것이 모두 무너지고 사라진 밑바닥에서 만난 분, 그때 잡아 주던 분의 손길을 어찌 잊겠는가? 그분들의 그 간절함에 내 기도를 얹어 바친다. 언제라도 당신을 떠나지 않게 해주십사고.


미사가 시작하려는데 미루와 이사야가 살짝 다가와 앉는다! 언제 봐도 반가운 사람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니 더욱 좋다. 더구나 우리 부부네 ‘귀요미’ 미루가 아닌가? 봉재 언니는 동생신부님이 집에서 미사를 드리러 와서 성심원으로 안 오셨단다.


성심원 본관 복도 양쪽 벽에 전시된 김옥수 신부님의 작품 전시회는 참 아름답다. 타일을 파내고 굽고 색을 입힌 작품 실물을 처음 만났다. 그동안 미루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작품을 보니 그분이 어떤 분인지가 보인다. 미사가 끝나고 현관에 서서 교우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오 신부님을 만났다. 거의 두 달만이다.


신부님 사무실에서 차를 대접받고 우리집 배 맛을 보여드리느라 깎는데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어 있어 사부인께 보낸 배들도 그렇지 않나 걱정이 됐다. 편지에도 모양도 작고 볼품없는데다 속조차 모르니 배가 아니고 정성을 받아 달라고 했지만 그다음 사정은 이미 내 시위를 떠났으니 그분의 자비에 맡긴다. 사돈이 어렵다지만 솔직하다 보면 서로 편한 사이가 된다.


이번에 분도출판사에서 보스코가 번역하여 출간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아카데미아학파 반박」이라는 책을 오신부님에게 갖다 드리니 이렇게 어려운 책은 누가 읽느냐고 묻는다. 철학하는 사람들이야 읽겠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읽어도 못 알아들을 책을 번역하느라 보스코는 얼마나 머리에 쥐가 났을까? 그래서 뒷통수 머리털이 다 빠져 ‘소갈머리 없는’ 사람이 됐을 수도 있겠다. 신학을 전공한 나도 뒤적여 보았지만 머리가 딸린다.



옛 적에 안병무 교수님이 우리를 가르치실 때 당신 강의를 우리가 못 알아들으면 “쉬운 얘기를 어려운 말로 쓰는 게 철학인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신학이니 잘 몰라도 절망하지 말라”고 타이르셨다. 인간이 세상도 자신도 모르는 터에 ‘하느님’을 놓고 왈가왈부한다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내 입속이 엉망이라 맵지 않은 칼국수를 먹으러 원지까지 갔는데 하필 그 식당이 다 닫혀 있자, 신부님 하시는 말씀. “원지 사람들은 돈이 많아. 악착같이 일을 안 한다” 동네를 돌고돌아 가게를 열고 있는 ‘북어찜집’엘 갔는데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사야가 “여기 칼국수집 갔다 이리 온 사람 손들어 봐요”하고 물으면 절반은 될 게라고 해서 웃었다.


성심원 마당의 '세월호 기도단'은 이 나라 억울한 이들의 가슴앓이를 아직도 안고 있다


자리를 잡고 앉자 매운 북어찜이 나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맛나게들 먹었고 나는 물에 씻어서 먹어야 했다. 바로 그 식당 앞으로 남강이 흐르는데 큰비로 황토강이 되어 흐른다. 예전 빵고 신부 어렸을 때 전교조 집회에 데리고 가서 함께 들은 정태춘의 ‘황토강으로’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20년도 넘은 시간인데 우리 시국은 아직도 ‘황토강’을 노래하고 있다


... 어여 가자, 어여 가. 구비구비 모였으니

큰 골짜기 마른 골짜기 소리 지르며 넘쳐가자

어여 가자, 어여 가. 성난 몸짓 함성으로

여기 저기 썩은 웅덩이 쓸어버리며 넘쳐 가자....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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