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발표된 <시사저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이 1,2위를 차지했다. 이 결과에 천주교 성직자가 두 사람이나 있다고 감탄하기보다는, 순간 ‘이게 무슨 뜻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의 ‘영향력’이 무슨 기준인지 알 수 없고 또 좋다, 나쁘다로 판별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 이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이 시점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어떤 인물이기에 1위를 했는지 궁금할 분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한번 찾아봤다.
<시사저널>은 염수정 추기경에 대해 “세월호 문제와 관련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희생자) 가족들도 양보를 해야 (정치권과) 서로 뜻이 합해지지 않겠느냐’고 발언했다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염수정 추기경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향력’은 막말에서 나온다?
1970년 사제 수품을 받은 염수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의 여러 본당 주임 사제를 거쳐 2002년 1월 25일 주교 수품, 2014년 2월 22일 추기경으로 서임됐다(‘아…!’ 당시 사람들이 감탄을 했을지 탄식을 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당시 추기경 서임을 위해 바티칸을 방문한 염 추기경은 교황청 일간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을 비판하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한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사제단 신부들 주장이 완전히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서 싸워야 할 독재 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지금은 더 이상 정부에 맞설 때가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이후 서울대교구는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잘못 표현됐고 기자가 발언 취지를 왜곡한 부분도 있다고 해명했지만, 김인국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는 “번역이 아니라 추기경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염 추기경이 서임되고 난 약 2개월 후인 2014년 4월,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 후 2014년 8월 22일, 염 추기경은 ‘고통 받는 자 앞에서 중립은 없다고 교황께서 말씀하셨는데 이제 유가족들 손을 들어줘야 하지 않느냐’는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의 질문에 “같이 기도해요”라는 영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바로 이어 기자가 ‘어떤 기도문을 저희한테 주실 수 있냐’고 묻자 “마음이 아프시면 마음에 그대로 담고 계세요”라고 답을 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염 추기경의 조언에 따라 마음 아픈 일이 생기면 그저 마음에 담고 있으려 해봤으나, 속이 터지는 부작용도 함께 따라왔다.
한편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통 앞에 중립 없다”는 말을 남겼다. 16일 시복미사에 앞서 교황은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차에서 내려 34일째 단식을 하던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기 전 사랑하는 가족을 찾지 못해 팽목항을 지키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에게 자필로 쓴 위로 편지를 전했다.
가톨릭계는 염수정 추기경의 장점으로 ‘신중함과 함께 판단이 선 후 과감한 추진력’을 꼽는다고 <시사저널>은 전했다.
‘과감한 추진력’이 장점이어서인지 염 추기경의 사업 제안으로 시작된 서소문 성지화 사업은 현재 다른 종교와의 갈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 2월 17일에는 ‘서소문역사공원 기념공간 건립공사’ 착공식이 열렸다. ‘서소문공원은 조선후기 국가의 수탈과 관리의 횡포 등으로 개혁주의자들이 처형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해서 각계각층에서 논란이 일었음에도 말이다. (관련기사)
세금포탈 혐의로 기소된 목사도 영향력 있는 종교인
한편, ‘2016년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2위에 오른 정진석 추기경은 “매년 책을 한 권씩 집필해 지금까지 54권의 저서와 역저를 펴낼 정도로 강인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시사저널>이 소개했다. 그러나 정 추기경은 2010년 12월 “주교회의 결과(주교회의는 3월, ‘4대강 사업 반대’라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4대강 사업 반대가 아닌 자연 파괴와 난개발의 위험을 극복해 4대강을 개발하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고 밝혀 크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개신교 성직자 중 유일하게 10위권에 든 조용기 목사에 대해서 <시사저널>은 “2013년 6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131억여원의 손해를 끼치고, 세금 35억원 상당을 포탈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고 소개했다. 또 최근 교회 측에서 조 목사의 사퇴를 요구했던 장로 16명에 대해 출교·제명 결정을 내리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빛바랜 영향력 순위라는 지적도 나온다고도 밝혔다.
故 김수환 추기경은 2010년부터 연속 4년동안 <시사저널>이 설문조사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2015년에는 故 김수환·염수정·정진석 추기경이 나란히 1,2,3위에 올랐고, 이례적으로 외국인 성직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위권에 진입했다.
결국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천주교 성직자들이 1위를 놓치지 않은 셈이니 ‘영향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순위가 곧 ‘이들이 잘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순위에는 독재와 억압이라는 암울한 시대에 한줄기 빛처럼 등장해 정신적 지주가 된 인물과 함께, 사회적 발언을 하는 사제들을 향해 ‘거짓예언자’라고 말했던 인물이 동시에 존재해 조사 기준에 여러 의문이 들기도 한다.
활발한 사회 참여? 아니면 한 단체의 수장이라서? 아니면 미디어에 자주 노출 돼서? 그런 의미에서라면 조용기 목사에 대한 <시사저널>의 소개처럼 ‘빛 바랜 영향력’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사저널>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주제로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8월3일부터 22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우리나라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활동가·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 전문가 각 100명씩 총 1,000명에게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 여론조사로 실시했다고 한다. 한눈에 봐도 조사 대상이 소위 ‘사회기득권층’이다.
기득권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영향력’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를 향해 쓴 소리를 하는 동료 사제들에게 비이성적이라고 비판하거나 4대강을 개발하라고 말할 수 있는 영향력이라면, 그 ‘영향’을 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