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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우리나라 강물과 시내물이 다 어디로 갔을까?”
  • 전순란
  • 등록 2016-09-26 09: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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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5일 일요일, 맑음


집안이 온통 책으로 쌓여있고 먼지가 펄펄 나서 만지는 곳마다 먼지가 묻어나 온몸이 근지럽다. 아침에 2층에 올라온 엽이도 어제 하루 종일 먼지를 털어선지 눈이 빨갛게 충혈 돼 있다. 내가 가사 도구의 먼지를 털어 정리하고 보스코는 책을 털어 정리하는데 그가 할 일이 훨씬 많다. 그가 이건 안 입는다고 버리라고 내놓은 옷 중에는 쓸 만한 옷이 대부분인데도 나더러 좀 버리라면서도 내가 보기엔 정말 버렸으면 딱 좋은 책들도 자기는 그냥 갖고 있어, “언젠가 한번이라도 입지”하고 옷을 못 버리는 심정과 같은 듯하다.



언제나처럼 9시 미사에 갔다. 본당 신부님이 20여 년 전 첫 부임지에 보좌신부로 갔을 때는 주일학교에 적을 둔 애들이 1000여명이더란다(요즘도 그런 숫자의 애들이 나오는 성당이 있나). 그분은 그 많은 애들과 친해지고 싶어 간식을 뺏어 먹기 시작했더니 뺏기기 싫어하던 애들이 차츰 스스로 신부님에게 나눠주고, 나누어준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친해졌다는 얘기로,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비유말씀을 풀어갔다.


미사 후에는 주일학교 교사 한 명이 군에 입대한다고 주일학생들이 “군에 가서도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기도를 해주고 노래(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 주었다. 그 선생님 인사말이 중딩2부터 주일학교 밴드부로 나왔는데 그때마다 군대 가는 선생님에게 바로 그 노래를 불러드렸다고 했다. 노래를 부르고 나서 아이들은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아직도 솜털이 보송보송한 선생님에게 짓궂게 “울지 마!”를 연창하였고, “제대 후 꼭 여러분에게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되레 학생들을 울렸다. 저렇게 아름답던 젊은 날이 내게도 있었다. 한신대학교 4년 내내 ‘초동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을 하던 전순란!


2시에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말남씨 큰아들 ‘황이’(신경황)의 결혼식이 있었다. 청첩장에, 전화에, 그러고서도 (300석을 예약한 식탁에 사람이 안 오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 같은 이 친구의 ‘거국적 행사’에 혹시 빠졌다가 영원히 그니에게 잘릴 것 같아 일찌감치 갔다. 그 남편 신 선생이 돌아가실 적에 보스코가 세례를 주선하고 대부를 섰으며, 물불가리지 않고 환경운동을 하는 말남씨가 보스코를 ‘사부님’으로 떠받드는 처지다. 혼자서 아들 장가를 보내느라 혼주는 낙엽처럼 야위어 있었다. 


오늘 주례는 육사 오병두 교수님이 맡아주셨다. 말남씨의 환경보호운동에 자문해주던 분이다. 주례자는 토목공학자답게 결혼을 아름답고 단단한 집을 짓는 ‘콘크리트’에 비유했다. 콘크리트의 강도를 결정해 주는 게 ‘자갈’로, 곧 남편이다. 아내는 ‘모래’로 자갈 사이를 가득 채워준다. 시멘트가 부부간 ‘사랑’이라는 화학적 반응인데 그 변화를 가져오는 근본이 신뢰와 포용이라는 ‘물’이라고 짤막하지만, 좌중을 조용하게 만든 명주례사였다. 서로의 신뢰와 포용으로 자갈과 모래는 단단한 콘크리트 집을 이뤄낸다.



또 그동안 누구에게도 해답을 들을 수 없던 의문 하나가 오늘 오교수님의 설명으로 풀렸다. 식사 중에 “지리산 동네 휴천강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강) 물이 수십 년 전에 비해서 왜 저렇게 메말라 가는지, 그 많던 강물이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질문에 ‘수리학(水理學)’이 전공인 오교수님의 답인 즉 한반도의 모든 산에 무성한 활엽수가 그 이유란다. 활엽수는 많은 물을 빨아들이고 그 넓은 잎으로 물을 배출하기에 지하수의 물을 모조리 뽑아내 증발시킨단다. 기후변화로 침엽수림이 점차 사라지고 우리네 산을 모조리 점령하는 떡갈나무 단일 수종이 가져온 재앙이란다. 어느 산에 절대 안 마르던 샘이 말라버렸는데, 산 능선의 활엽수를 베어버리자 그 샘에 다시 물이 솟더란다.


결혼식과 식사가 끝나고 ‘차 없는 광화문 광장’에서 여러 풍물을 구경하고 책도 한권 샀다(엘 고어의 긴급 환경리포트 「불편한 진실」). 지구가 브레이크 없는 차처럼 멸망으로 치닫는 데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환경파괴가 원인이란다.



박근혜 정권의 물대포로 쓰러진 백남기 선생이 드디어 눈을 감았다. “우리의 농업은 이제 어디로 갈까?”라는 생전의 고민에 “핵전쟁 못 일으켜 안달하는 이 정권이 한반도의 한겨레를 어디로 끌고 갈까?” 걱정하던 그의 영혼이 이제는 주님 품에서 우리를 도와 주실께다. 그의 죽음에 분노한 가톨릭 농민들에게, 그를 죽인 정권이 오늘 저녁 맨 처음 보인 자세가 공권력행사였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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