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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웅배] ‘공동선’ 그리고 ‘백남기 임마누엘’
  • 김웅배
  • 등록 2016-10-11 11:05:52
  • 수정 2016-10-17 10: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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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석한 故 백남기 선생이 경찰이 직사 살수한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다. 故 백남기 선생은 쓰러진 지 317일째인 9월 25일 선종했다. ⓒ 최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임마누엘이 결국 유명을 달리 했다.


당국에서는 사인을 병사라고 강변하면서, 누가봐도 확실한 사인을 규명한답시고 유족도 원치않는‘부검’을 해야한다고 한다. 이들은 사건의 진상을 요구하는 민의를 허접한 논란거리로 만들어 버리고 명백한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의 결과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사건의 진실을 가리거나 불분명하게 하는데 있다. 과연 이들의 치기어린 수단은 성공한 듯 보인다. 삼척동자도 이해할 만한 확실한 현장 비디오를 앞에 놓고도 온갖 법리를 총동원해 안을 밖이라 우기고, 때에 따라서는 밖을 안이라 우기고 있다. 국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사적 재물처럼 움켜쥔 저들은,‘인간의 존엄성’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그들의 알량한 당리당략에 따라 이불리를 손바닥 뒤집 듯 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통틀어 법의 근본 정신은 강자가 부리는 횡포에 대해 약자를 보호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일부 실정법은 이미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약자들을 얽어매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정치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며,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의 권리를 얻게 된다. (가톨릭 사목헌장 74항)  


5공화국 말기,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의 전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당시의 무도한 집권세력이 공포정치를 통해 공권력을 남용하면서 무고한 학생을 죽음으로 몰고도 은폐·축소한 살인 사건은 말 그대로 극악한 무리들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 엄혹한 시절에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에서 은밀히 자행된 살인도 결국은 세상에 명백히 밝혀졌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말도 안되는 발표를 해서 모든 국민의 공분을 샀고, 진상이 알려지자 누구나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염치는 있었다. 형식적이지만 일부 책임자는 처벌됐고 경찰 최고 수뇌는 경질되었다. 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는 보다 한걸음 나아가게 되었고 군사 독재의 망령이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런데 이 정권은 그야말로 중인환시리에 물대포를 사정없이 쏘아대어, 부당함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멀쩡한 사람을 사경으로 몰아 놓고도 위로는 커녕 사과 한마디 없었다. 필설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5공화국보다도 더 뻔뻔스런 정권이 아닐 수 없다. 전두환 정권의 박종철 치사사건은 사건 자체를 은폐·축소하면서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다가 몇몇 사람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들킨 경우이다. 그러나 백남기 임마누엘 사건은 그런 경우가 아니다. 현장의 기록사진이 버젓이 있고 현대 첨단 의료기록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대명천지에 고대 중국에나 있을 법한 ‘위록지마’를 시전하고 있으니 삶은 돼지머리가 웃을 노릇이다. 이러니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로 ‘혼용무도’의 극치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아마도 이말을 금과옥조로 삼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거짓과 진실이 적당히 배합되면 100%의 거짓말보다 효과가 크다는 말도 역시 신봉하는 듯한 정권이다. 모두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명언(?)들이다. 


87년 민주화의 흐름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그때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폭력적 군사독재의 잔재가 켜켜이 쌓여져 왔다는게 서글플 뿐이다. 


국가와 위정자는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추구할 경우에 정당성이 인정되는 것이고, 국민에 대하여 권리를 갖는다. (회칙 「지상의 평화」)


세월호 문제도 마찬가지다. 저들은 세월호 사건은 단순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말해왔다.


단순 교통사고도 경찰의 리포트가 필요하다. 쌍방의 얘기를 들어보고 현장을 확인하고 상세를 기록으로 남긴다. 혹시 음주 운전은 아닌지, 불법적 요소는 없는지, 보험은 들었는지, 차량 정기 검사와 등록증은 완벽한지, 이중에 하나라도 이상이 있으면 상황이 불리해진다. 이런 단순사고도 이럴진대 철저히 조사를 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사고를 숨기거나 축소한다면? 혹시 사고 당사자 중에 한 쪽이 권력자라서 더 유리하게 하고자 사고를 적당히 마무리 지우려고 한다면? 그 결말이 어찌될 지는 불문가지다. 그 공권력은 권위를 상실한다. 권위를 상실한 공권력은 시정잡배들의 사적 폭력이나 다름없다. 


동시에 공동선을 무시하거나 해치는 국가와 위정자는 존재할 필요가 없고 정당성을 상실하며 권리도 상실한다. (‘공동선’에 대한 가톨릭대사전 해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국가의 최상위 의무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폭력에 대해 너무나 익숙한 민심은, 그 폭력을 일시적으로 보고도 못본 체 하거나 들어도 못들은 체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허위와 진실은 언젠가는 가려지는 법이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루카8, 17) 


“모든 사람을 잠깐동안 속이거나, 몇 명의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링컨의 말이다. 설사 저들, 저들의 입장에서 공권력의 행사가 백번 옳다쳐도,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가혹한 정의보다는 자비가 더 큰 결실을 맺는다.” 이것도 링컨의 말이다.


우린 언제쯤 링컨을 닮은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필진정보]
김웅배 : 서양화를 전공하고, 199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지금까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에디슨 한인 가톨릭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4 복음서를 컬러만화로 만들고 있다. 만화는 '미주가톨릭 다이제스트'에 연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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