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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시국미사 봉헌 “대통령은 물러남이 옳다”
  • 최진
  • 등록 2016-10-11 19: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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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천주교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한국가톨릭농민회,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천주교 단체들은 광화문광장에서 ‘불의한 정권의 회개와 민중을 위로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 최진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법 해석에 따라 ‘강제 해산’ 시키고, 백남기 선생의 죽음에 대한 사죄와 진상규명 대신 ‘강제 부검’의 카드를 꺼내 든 박근혜 정부에 맞서 천주교 단체들이 규탄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천주교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한국가톨릭농민회,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천주교 단체들은 10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불의한 정권의 회개와 민중을 위로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불의한’은 의리·도의·정의가 어긋난 것을 뜻하는 형용사로 백남기 선생을 수식하는 ‘의로운’과는 반대개념이다. 


천주교 단체들은 현 정부가 노동자·농민·서민을 위한 정책보다 자신의 정권 유지와 기득권을 위한 정책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또한 자의적 법 해석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특조위를 해산시키고, 백남기 선생 유가족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고집하는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 이날 천주교 단체들은 노동자·농민·서민을 위한 정책보다 정권 유지와 기독권을 위한 정책에 몰두하는 현 정권을 규탄했다. ⓒ 최진


또한, 밥쌀 수입으로 벼랑 끝에 내몰려 이제는 쌀을 싣고선 도로조차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농민들, 숨죽여 울어왔던 고통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주겠다는 정부를 보며 억장이 무너졌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컵라면을 유품으로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노동자와 민중을 함께 위로했다. 


이러한 뜻에 동참하기 위해 전국 15개 교구 200여 명의 신부와 300여 명의 수도자가 광화문 광장에 섰다. 이들을 포함한 신자 1,000여 명은 이날 광장에서 불의한 정부가 회개하길 바라며, 눈물 흘리고 있을 민중을 위로하기 위해 뜻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 이날 시국미사에 전국 15개 교구 신부 200여 명과 수도자 300여 명, 신자 1,000여 명이 함께 했다. ⓒ 최진


▲ 이날 시국미사에 전국 15개 교구 신부 200여 명과 수도자 300여 명, 신자 1,000여 명이 함께 했다. ⓒ 최진



“어둠과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욱더 선명하게 밝아지는 것” 


이날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 김용태 신부는 시국미사 강론을 통해 현시대를 평가하며 “언제까지 명복과 위로와 격려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고한 이들의 죽음과 희생, 무도한 자들의 불의와 부정을 이제는 하나하나 손꼽기도 어려울 정도다. 나라꼴은 엉망진창이 되고 수많은 무고한 생명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어둠과 싸우기 위해서 어둠보다 더 강해지려 해서는 안 된다. 자칫 그러다 어둠을 닮아가는 수가 있다”라며 “어둠과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욱더 선명하게 밝아지는 것이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가 없고,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빛으로 타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의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도 정의·평화·생명·공동선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정의로워야 하고, 다툼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도 끝까지 평화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이 불의한 세상을 이기는 방식은 우리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라며 자신의 강론을 정리했다.


▲ 김용태 신부는 시국미사 강론을 통해 ˝어둠과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욱더 선명하게 밟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최진


이어 “작아지고 약해지고 썩어지고 죽어주는 삶이란 것이 쉬울 리 없지만, 해방 세상의 그 날이 언제 올까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며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며 “독립지사들이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당장 내일 해방이 올 것처럼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았듯이 우리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고 말했다. 


김 신부는 이 땅의 불의한 권력자들이 ‘파멸의 길’을 벗어나서 ‘참 생명의 길’을 선택하면 좋겠지만, 끝끝내 용서받지 못할 길을 갈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다만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참된 길을 걸어갈 따름이다. 임께서 앞장서 가시니 숨이 붙어있는 한 끝까지 따라갈 것”이라며 강론을 마쳤다. 


시국미사 성명서, “국민을 죽이고 진실을 은폐하는 대통령은 물러나라” 


이날 성찬전례 후 마련된 세월호 유가족과 백남기 선생 유가족 발언에는 ‘예은 아빠’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정현찬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가 각각 나왔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오늘 미사의 지향처럼 이 정권과 사회가 회개하길 진심으로 소원한다. 그런데 회개할 것 같지 않다”라며 “분명한 것은 신앙인들이 시국을 걱정하고 분노하며 함께 모여 드리는 기도를 통해 시대가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그리 머지않은 시간에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날 것이고, 그 과정 안에는 신앙인들의 기도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머지 않은 시간에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날 것이며 그 과정 안에는 신앙인들의 기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과 조사관들은 실질적인 조사활동을 할 수 없게 됐지만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며 세월호 관련 소식을 전했다. ⓒ 최진


유 위원장은 지난 9월 30일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조치에 따라 특조위가 실질적인 조사활동을 할 수 없게 됐지만, 상임위원과 조사관들은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며 세월호 관련 소식을 전했다. 또한, 가족과 시민이 직접 진상 조사에 나서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 가까운 시일에 관련 내용을 발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언젠가 이 자리에서 시대를 걱정하며 드리는 시국미사가 아니라, 신앙인들이 희년을 선포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미사와 기도회가 열렸으면 좋겠다”라며 “세월호 가족협의회와 대책위가 그때까지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현찬 대표가 분에 찬 심정으로 시국미사 임시제대에 올랐다. 그는 “병사와 외인사를 구분할 줄도 모르는 의사”가 처음 백남기 선생을 진단하면서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며 모질게 말하고선, 인제 와서 가족이 연명 치료를 거부했다며 가족에게 백남기 선생의 죽음을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규탄했다. 


▲ 정현찬 대표는 故 백남기 선생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작성한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를 비판하며, 부검을 반대한다는 뜻을 강력하게 밝혔다. ⓒ 최진


정 대표는 “백남기 농민이 하늘과 땅과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돌아가셨는데도 이 의사는 병 걸려서 죽었다고 한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지침을 내려도 이 의사는 지금 이 시각까지 우기고 있다”며 한탄했다. 


또한, 부검 영장 집행을 강행하려는 검찰에 대해 “경찰의 손에 죽은 것도 분한데, 검찰은 병원 영안실에 누워있는 시신을 탈취하려고 한다”라며 “이는 백남기 농민을 두 번 죽이려고 칼을 빼 드는 것이다. 시신은 조사할 것이 없고 사인은 명백하다. 검찰은 시신을 조사하기보다 살인자를 체포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아버지를 죽인 그 더러운 손에 다시 칼을 쥐여줄 수 없다는 것이 가족들의 입장”이라며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백남기 선생에 대한 국회 특검발의 서명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시국미사 마지막 순서로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은 ‘세월호를 인양하라’, ‘살인 정권 물러가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1,200여 명의 신자들이 광야에서 외친 힘찬 구호는 종로 거리를 울리며 서울 한복판을 가득 채웠다. 성직자들과 신자들은 시국미사 동안 손에 들고 있었던 ‘우리가 백남기다’, ‘부검 절대 안 돼’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높이 들어 올렸다. 


▲ ⓒ 최진


이후 참석자들은 백남기 선생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장소인 종각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 마련된 영정 앞에 헌화하며 의인의 죽음을 추모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광화문 시국미사 성명문 전문이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에제키엘 18,30)

- 국민을 죽이고 진실을 은폐하는 대통령은 물러남이 옳습니다.



우리는 작년 11월 14일, 쌀값 21만 원 보장하겠다는 대통령 공약을 지켜 달라고, 식용 쌀 수입하면 농민 다 죽고, 농민과 노동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정부의 대답은 경찰의 물대포 직사였습니다. 우리 농민 백남기 임마누엘 님이 쓰러졌습니다. 우리도 같이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9월 25일, 쓰러졌던 우리 농민 백남기 임마누엘 님은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때 우리도 같이 죽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317일. 그의 고통은 끝났지만 유족과 우리 사회의 참혹한 현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력으로 국민을 죽였습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에서조차 반성은커녕 국민을 비웃었습니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데 시신마저 빼앗으려 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이들이 사인규명 운운하며 부검을 하겠다고 우리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모욕하는 패륜입니다.


우리 농민 백남기 님의 죽음을 지켜보며 세월호 참사를 떠올립니다. 비참하게도 두 죽음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은 국가가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고, 백남기 농민은 국가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기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세월호 선체에는 아직도 9명의 찾지 못한 미수습자들이 있고, 304명을 수장한 침몰의 비밀이 있는데 900여일이 넘는 형극의 시간만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침몰의 진실’을 밝힐 선체인양은 계속 미뤄지고, 특조위의 조사활동은 정부와 새누리당의 집요한 방해와 거부로 강제 종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활동은 중단될 수는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 3년 8개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질식하였습니다. 99퍼센트의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습니다. 집회, 결사, 시위, 표현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은 말살되었습니다. 선거 개입과 국민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국정원, 스폰서검사 등이 보여 주는 견제 받지 않는 검찰, 국민을 적으로 삼고 살해하는 경찰 등 절제를 잃은 국가 공권력의 폭력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는 공권력을 정권의 사병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국민 위에 군림하는 박근혜식 공포정치, 독재정치라고 규정합니다.


1대 99의 신분제 사회에서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절망이 우리들의 가슴을 짓누릅니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무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흙 수저와 금 수저로 갈라졌습니다. 저임금과 비정규직은 풀 수 없는 족쇄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도한 불법 노동개악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오직 재벌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의 비리,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의심하는 최순실과 청와대 권력이 개입된 미르.K재단 사태가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약화되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긴장과 대립을 격화시키고 있습니다. 민족을 멸망으로 이끌 전쟁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주님께서 선택하고 축성한 왕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백성을 위한 정의의 보증인이 되라고 말합니다. 정치권력이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예언자들이 나타나 그릇된 정치권력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은 공권력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을 없애고 공동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권력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인간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복음의 가르침을 거스르며, 불의를 저지른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르침과 양심에 따라 그 권력에 저항할 의무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을 죽이지 마십시오.


낙인찍고 편 가르는 혐오와 폭력의 정치를 멈추고 민주주의와 민중의 생존권을 유린하지 마십시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세월호 참사, 우병우, 최순실 권력형 비리, 일본군위안부 졸속 합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배치,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유전자조작 쌀 재배 시도 등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하십시오. 그리고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십시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의 권력자들에게 죄를 알려 주고 회개를 권고하는 이유는 ‘악인들도 악에서 돌아서면 구원받는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은 멸망한다.’는 진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이런 처절한 기도는 지옥으로 가는 그들을 붙잡는 마지막 노력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2016년 10월 10일


광화문 시국미사 참여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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