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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엄마란 속없는 점에서도 하느님과 많이 닮았다
  • 전순란
  • 등록 2016-10-17 10:29:31
  • 수정 2016-10-17 10: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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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비


9시 어린이 미사에 가려면 일요일에도 늦잠은 안 된다. 부지런히 화장하고 부지런히 챙기고 서둘러 골목을 나선다. 성당 가는 골목골목, 그래도 집집이 좁은 마당에 자라는 감나무가 뿌리는 집안에, 몸통은 골목길로 힘껏 내밀어 항아리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바알갛고 노오랗게 익어간다.



우리 집에 단감 천여 개가 달리던 나무가 얼어 죽고 나서 둥치 밑으로 세 가지가 새로 나왔었다. 뿌리도 없이 밑둥에서 곁가지로 나온 데다 병색이 완연하여 한 가지는 묶어 주다가 밑둥에서 떨어져나갔고, 한 가지는 얼마 전 집수리하던 일꾼의 연장에 걸려 부러졌으니 이제 남은 거라고는 달랑 한 가지. 보스코는 그 가지가 흙 속에 뿌리를 내려야 살아남는다고 바닥에서 30cm까지 흙을 덮어 줬다.


저 가지가 우리가 따먹던 맛난 단감인가 궁금하던 차에 올해 감이 딱 한 개 열려 익어가고 있었다. 나뭇잎에 가려 손을 타지 않고 자라더니 붉게 익어 눈에 띄었다. 그 단 한 개가 주인 손에 따져 식탁 위에 올랐다. 우리가 수십 년 따 먹어온 그 단감의 증손자에 틀림없다.



감나무 한 그루에 가지는 하나. 그 가지 하나에 감 하나만 달랑 달린 게 요즘 인간가족 풍경 그대로다. 외가, 친가 통틀어 애라고는 하나, 그게 다니까 얼마나 귀하고 아까워 멋대로 굴어도 나무라는 사람 하나 없으니까 사람 꼴 갖추기가 힘들다. 미루가 한탄하기로도, 요즘 어딜 가도 ‘애가 제일’이어서 공공장소에서도 식당에서도 멋대로 떠들고 함부로 까불어 남에게 피해를 줘도 나무라는 사람 하나 없다. 보다 못해 나무라면 애엄마라는 사람이 되레 덤빈다. “남의 애한테 왜 그래요? 왜 남의 애 기죽여요?”


오늘 미사 중에도 대여섯살 꼬마가 아예 제단을 등지고 돌아앉아 장난에 여념이 없다. 거양성체 무렵에는 아예 성가책을 휘두르며 친구를 때리고 온 회중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선생님 말씀에도 아랑곳 않기에 이 할머니가 그 자리로 옮겨갔다. 아이한테서 책을 뺐고, 앞을 보고 돌아 앉히고 조용하라고 눈총을 주었다. 보스코가 쿡쿡 웃으며 “그샐 못 참고 쯧쯧” 선생님도 있고 모든 교우가 바라보는 데서 거양성체시각에 ‘신부님 엄마’가 자릴 옮기면 교우들에게 분심든단다.


하지만 ‘타고난 주일학교 교사 전순란’이 질 리가 없다. “여보, 교육이란 사회가 하는 거에요. 아이가 잘못되면 사회가, 모든 어른들이 함께 바로 잡아야 해요!” 과연 그 장난꾸러기는 멀리서도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며 미사 내내 조용했다. 오히려 성가책을 들고서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고 목청 높여 노래도 불렀다. 먼 훗날 저 꼬마도 “나를 따르라!”는 가락에 따라 사제가 돼 여전히 소란키만 한 어린이미사를 집전할지 누가 아나?


오늘 미사에선 꼬마 하나가 ‘복사 선서’를 했는데 자못 엄숙하고 성대한 예식이었다. 미사시간이면 엄청 소란스럽게 까불던 아이다. “친구들 사랑하고, 신부님 미사 돕고, 누나와 싸우지 않겠습니다!”라고 한 손을 들고 선서를 하고서도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까불기 시작한다. 여하튼 어린이들의 소란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흐뭇해 굳이 9시 미사에 가는 걸 보면 우리가 늙긴 늙었다.


빵기가 제주도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오는 시각이 12시여서 이번 귀국길에 처음으로 부모와 함께 식사하려니 하고 준비를 하는데, 들어오자마자 청담동 처갓집에 간다고 짐을 싸더니만 2시에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으니 노원전철역까지 실어다 달란다. 이런 섭섭한 얘길 전해들은 문섐은 “못 생긴 소나무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열씨미’ 돌아다니고 ‘열씨미’ 사람 만나는 아들은 그래도 ‘쓸모 있는 나무’라는 증거니 참고 보는 수밖에 없단다. 



내 처녀시절, “얘, 넌 어떻게 얼굴을 볼 수가 없니?”라는 엄마의 꾸중에 “엄마, 난 엄마의 딸만이 아니예요!” 라고 능청을 떨던 값을 고대로 돌려받나보다. 그러고도 밤늦게까지 빵기가 가져갈 참깨며 더덕장아찌, 오이피클을 만들고 있으니 엄마란 속없는 점에서도 하느님과 많이 닮았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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