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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배 두드리는 기업가,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노동자
  • 전순란
  • 등록 2016-10-19 10: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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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여보, 빨리 움직여요. 할 일이 많잖아?” 남편이 아내를 채근한다. ‘모진 인간 옆에 있다 벼락 맞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바쁜  아들 때문에 어미도 덩달아 바쁘고 바쁜 마누라 땜에 남편도 덩달아 바빠진다. 집안청소와 설거지는 보스코에게 맡기고 11시까지 성남에 가서 처갓집에서 오는 빵기를 데리고 ‘영원’의 장상무를 만나는 길이다. 30년 가까운 내 지기인데 빵기가 하는 활동 때문에 빵기를 그니에게 소개해 주고 나서는 빵기가 일시 귀국하여 그니를 방문할 적마다 내가 동반하는 처지가 되었다. 모자의 역할이 바뀐 셈이다. 


장상무는 새로 태어난 손녀딸 우주의 사진을 보여주는 품이 영락없는 할머니지만 본인이 책임맡고 추진하는 업무는 어느 젊은이보다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완벽하게 장악한다. 그니의 아들도 엄마를 닮아 매사를 거침없이 해나간단다. 말은 않지만 자식은 기질상으로든 보고 배워서든 엄마를 닮고, 그리고 능가한다. 우리 아들을 보더라도 언어능력이나 인지능력은 (다행히) 아빠를 닮았고 집요한 추진력이나 생활력은 내게서 물려받은 듯하다.


장상무와 점심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헤어져 우리 모자는 마트에 들러 제네바에 가져갈 물건들을 시장 봤다. 며늘아기와 통화를 하면서 하나하나 의논하고, 아내 말을 존중하여 물건을 찾고, 철저히 가격을 비교해서 고르고 개수도 정확하게 맞추어간다. 시장 보는 태도로 말하자면 아들에 비해서 이 엄마는 형편없는 덜렁이다. 


마일리지를 이용해서 충분히 가져갈 무게의 물건을 구입했지만 그 많은 걸 끌고 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나도 옛적에 비행기에 실을 가방에 무게가 남으면 하다못해 라면이라도 더 챙겨가 나눠주던 때 생각이 난다. 아들은 다른 약속이 있어 지하철로 가고, 나는 집에 와 대문 앞에 주차를 하고 보스코에게 차 열쇠를 건네면서 물건 하역을 부탁하고 인사동으로 달려갔다.


나락실 갤러리, ‘오채현 돌 조각 초대전’에 들른 보스코 



딱 50분 남은 시간이지만 지하철을 타면 도착이 가능한 거리. 인사동은 여러 나라 말소리와 색색의 피부와 얼굴로 조화를 이루는 명소가 되었다. 더구나 젊은 처녀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나들이 다녀 색색이 아름다운 거리다. 오늘 만난 (모자)체칠리아가 “한 벌 2만 5천원이면 되니 우리도 한번 빌려 입고 활보해요.”라는데 “이 나이에 그 옷을 받쳐 입고 거릴 거닐면 ‘머리에 꽃도 꽂으세요.’라고 할 게야.”라면서 참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라고 한다지만, 먼 옛날 '로마에서는 미친여자와 전순란만 머리에 꽃을 꽂는다구요'라는 놀림을 받은 터이니까...


‘인사랑’에 들어가 수잔 선생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았다. 신부님을 모시는 체칠리아, 요리연구가 수잔선생, 두 명인의 반찬 만드는 비법을 듣다보니 생각만으로도 밥상이 가득하다. 요리 잘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은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 저녁 7시에는 광화문 ‘세월호 미사’에 참석하느라 인사동에서부터 부지런히 걸었다.



보스코는 5시에 집을 나와 돈화문 근방에서 오채현 작가(보스코가 로마 대사관저에 그의 ‘성모자상’을 주문 설치한 바 있다)의 조각전을 보고서 광화문으로 왔다. 오늘은 사제단이 정한 순서상 살레시오 수도회가 미사를 주관하는 날이어서 보스코는 ‘살레시오 청년’이 새겨진 점퍼까지 입고 갔는데 살레시오 수녀님들은 참 많이 왔지만 정작 회원은 이준석 신부 혼자 와서 주례를 하고 강론을 하였다. 세월호 사건 1주기 때에 명강론을 한 이신부님은 오늘도 강론문안도 손에 들지 않고 좀처럼 듣기 힘든 명강론을 하였다. 삼성반도체에서 백혈병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증언도 미사 후에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구내에서 살레시오 수녀님 몇 분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가난하게 사는 분들이어서 그 미사에 함께 온 여학생에게만 김밥 한 줄을 사 주고 당신들은 수녀원에서 싸온 차디찬 옥수수를 저녁으로 먹고 있었다. 가난한 청소년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마련하면서 정작 당신들은 가난하게, 가난하게만 살아가는 모습이 참 정다웠다.


수녀님들의 저 복색에서도, 오늘 복음처럼, 자기들은 평생 먹고 남을 만큼 창고에 쌓아놓고 거들먹거리며, 자기네 공장에서 갖가지 화공약품으로 백혈병 걸려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방치하고 착취하는 부자들의 어리석은 잔학상이 광화문의 화려한 고층빌딩들과 광장에서 두 해 넘게 농성하는 세월호 유가족의 초라한 천막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남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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