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전의 한 친구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청와대가 문화체육관광부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9,473인 명단을 내려보냈다는 언론 보도를 알려줬다.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블랙리스트에 지 작가 이름도 올랐네요. 추카(축하)! 추카! ㅋㅋㅋ”
그리고 그 친구는 인터넷 언론매체에 게재된 블랙리스트 9,473인의 명단도 보내줬다. 2015년 6월 2일에 있었던 ‘문학인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754명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와 있는 걸 확인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리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에 ‘축하’를 받으니 더욱 묘해지면서 기분이 산뜻 좋아졌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 얄궂고도 오묘한 일이었다.
그 카톡 메시지를 아내에게 보여줬다. 블랙리스트에서 내 이름을 확인한 아내는 “당신, 멋지네요, 축하해요”라면서 손을 내밀었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웃음을 머금고 너스레를 떨었다.
“난생 처음 블랙리스트라는 걸 접하는 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고 친구와 아내에게 축하받는 건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야. 평생의 유일무이한, 획기적 경험일 것 같아. 그치?”
“그럼요. 큰 영광이죠. 그 블랙리스트에 당신 이름이 없다면 얼마나 미안하고 허전하고 창피하겠어요.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아내는 나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아내 앞에서 진짜로 면목이 서는 느낌이었다. 자못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한 번 더 기염을 토했다.
“이 명단을 프린트 해가지고 코팅해서 가보로 삼아야겠어. 정말 생각할수록 묘한 일이야. 블랙리스트라는 이 기상천외의 야만적인 문건에 내 이름이 올랐다고 축하를 받고, 아내 입에서 영광이니 다행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으니, 박근혜 정권의 업적이 정말 휘황찬란하다 싶네. 이런 개차반 정권이 어떻게 이 시대에 존재할 수 있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해. 정말 자랑스러워!”
그러자 아내가 정색을 한 표정으로 돌연 이상한 말을 했다.
“이제 결정이 난 거예요. 내 말이 맞은 거예요.”
“무슨 말이요?”
“KBS에서 출연 섭외 왔던 것 말이에요. 결정 단계에서 허사가 될 거라고 내가 예상했잖아요. 내 생각이 맞았어요. 내가 이긴 셈이에요.”
“그렇게 되나…. 그럼 그게 이 블랙리스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다시 의기소침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무산된 방송 출연, 혹시 블랙리스트 때문인가
아내는 40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8월 31일 정년퇴임했다. 아내에게 축하와 감사를 표하는 마음으로 글을 하나 지어 인터넷 매체들에 올렸다. 「평교사 40년…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글이었다.
그 글을 읽은 한 방송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게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아내와 함께 출연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나는 고심 끝에 출연 결심을 하고, 또 어렵게 아내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 작가와는 세 번의 통화가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통화는 지난 추석 3일 전에 있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는 대로 담당 PD와 촬영 기자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구체적인 촬영 계획을 짜기로 약속했다.
그 작가는 내 아내가 40년을 채우고 정년퇴임을 했음에도 관례와는 달리 훈장을 받지 못한 사실에 특히 주목했다. 40년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감사하는 뜻으로 정부 훈장을 대신해 남편인 내가 아내에게 ‘감사패’를 주는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촬영팀은 우리 집에 와서 93세 모친을 모시고 사는 우리 부부의 생활 모습을 자세히 담는다고 했다. 신장 기능을 잃어 매일 복막투석을 하며 살아가는 내가 투석을 시행하는 모습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모습도 담고, 담임선생님의 퇴임 소식에 울음을 터트렸던 아이들이 보고 싶어 아내가 학교를 한번 찾아가는 그림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찍는다고 했다. 방송국에서 준비한 감사패를 내가 아내에게 주는 장면이 피날레라고 했다.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런 구성을 들으니 재미있는 내용이 될 것 같았다. 그런 계획에 나와 아내는 군말 없이 동의를 했다.
그런데 그 작가와 긴 통화를 마치고 났을 때 아내가 이상한 말을 했다. ‘헛 공사’가 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아내는 이미 확신을 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헛 공사라니, 왜?”
“그 작가가 뭔가를 놓치고 있어요. 내가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것 때문에 훈장 대상에서 제외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또 당신이 매주 월요일마다 광화문 시국미사에 참례하면서 시국에 관한 글을 많이 쓰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래서 담당 PD와 촬영 계획서를 만들긴 하나 본데, 틀림없이 윗선에서 결재가 나지 않을 거예요. 윗선에서는 거르는 장치가 있을 거라고요.”
“정말 그러려나?”
“그러니까 방송에 나간다고 아무에게도 미리 말하지 마세요.”
“에이, 설마…!”
나는 아내의 말을 어겼다. 아내가 마지막 5년 동안 봉직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께 조그만 추석 선물을 드리려고 아내와 함께 학교를 찾은 날이었다. 퇴임 전이 아닌 퇴임 후의 ‘감사 표시’임으로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을 거라는 농담도 하며 차를 마시다가 나는 입방정을 떨고 말았다.
KBS 2TV의 <감사패를 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 촬영팀과 함께 와서 아내가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실도 찍을 테니, 미리 허락해주실 것과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학교를 나오며 아내에게서 한소리 들어야 했다. 헛 공사가 될 일인데 그걸 못 참고 입방정을 떨었다며 아내는 내게 눈을 흘겼다.
“두고 보세요. 내 말이 맞을 테니! 방송국에서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을 거예요. 혹시 모르죠, 그 작가가 미안하다는 사과 전화는 할지….”
블랙리스트는 내게도 냉엄한 현실인가
아내의 말은 맞았다. 나는 아내의 그 말 때문에 추석 연휴가 지난 후 그 작가의 전화를 자못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끝내 그녀는 미안하다는 전화도 하지 않았다. 감감 무소식, 완전히 가물치 콧구멍이었다.
나는 그 작가에게 연유를 묻지 않았다. 그 작가에게 어떤 불행한 돌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그 작가 쪽에서 무슨 말이 있을 것으로 여겼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터였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도 그 작가에게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런데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는 조금은 가볍게 생각했다. 세상에 그런 경우도 있구나, 전화로 무슨 말이든 해야 예의에 합당할 터인데, 그 작가가 너무 예의를 모르는구나…. 조금 어이없고 섭섭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다가 날이 가면서 그 일을 거의 잊었는데, 블랙리스트라는 걸 접하고 보니 다시금 불현듯 그 일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어쩌면 혹 블랙리스트가 작용을 해서 방송국의 나에 대한 섭외가 슬며시 없었던 일이 돼버렸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냉큼 들었다.
확인할 수야 없지만, 그러므로 블랙리스트는 나 같은 비중 없는 작가에게도 냉엄한 현실인 셈이었다. 하지만, 영광이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니 참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