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9일 수요일, 맑음
요즘 밤이면 우리 집에 손님이 온다. 이웃 사는 친구인데 TV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날마다 우편으로 도착하는 ‘한겨레’에서 읽는다. 첫면부터 끝까지 다 읽는단다. 함양 보급소에서 온갖 신문을 한꺼번에 돌리는데 우편이어서 하루쯤 늦게 오는 게 보통이라 늘 ‘구문(舊聞)’이란다.
저녁마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저녁 뉴스를 보러오라고 내가 전화를 걸어준다. 보스코야 시간이 아깝다며 서재를 지키니까 우리 둘이서 뉴스를 보면서 촌평을 하고 앵커에게는 감탄과 찬사를, 등장인물들에게는 욕설과 탄식을 보낸다. 혼자서 하는 욕설보다 둘이서 맞장구치며 하는 욕설은 스트레스를 푸는 카타르시스가 된다.
오도재에서 건나다보는 덕유산쪽 풍경
어제 등장한 민주당 원내총무가 “박근혜 하야하라!”는 말을 못하고 빙빙 돌리자 내 입에서는 당장 욕이 터져 나왔는데 나보다 과격한 그니가 “쟤가 저렇게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들까, 저 운동권 출신이? 정말 광장에서와 TV 앞에서 공인으로 말하기는 아예 다르네? 보수들도 듣고서 ‘어? 별로 과격하지 않으니 저 당 찍어도 괜찮겠네?’라는 생각이 들게 하잖아요?”라고 풀이한다. 오늘 아침 페북에 그 사람에게 온갖 비난과 욕설이 올라오는 걸 보아 다들 열사들인가 보다 나처럼. 하지만 오히려 에둘러 말하던 그 사람이 새 세대를 여는 데는 한발 더 앞서가는 것 아닌가?
아침에 윤희씨에게 할 얘기가 있어 전화를 했더니 “양파 심었느냐?”고 물어와 “씨(모종)가 없어 못 심었다”고 했다. 자기도 누구한테서 얻었지만 나한테 나눠주겠단다. 올가을 잦은 비에 모종이 밭에서 녹아버려 양파모종 구하기가 그리도 힘들다는데 얼른 읍으로 나가서 ‘양파씨’를 받아 왔다.
나간 김에 단풍이 괜찮다는 상림도 둘러보고, 오도재로 넘어오면서 늦가을 마지막 풍경과 지리산 허리도 바라보고, 백무동 초입에 사는 친구에게 들러 갖가지 허브 병졸임도 얻어오고, 마천우체국에 들려 (수량이 너무 많아 오토바이로 실어올 수 없다는 택배아저씨의 호소에) 구례 데레사씨가 보내준 쌀이며 왕밤이며 잡곡 등을 싣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간밤의 첫서리(근방의 다른 마을에 비하면 일주일 늦었다)에 한 해 동안 텃밭에서 수고하던 모든 채소가 숨을 거두었기에 호박 덩굴, 고추 포기, 오이와 토마토, 가지와 파브리카 줄기를 오후 내내 걷어냈다. 욕심을 낼까말까 한참 망설인 끝에 올해는 양파를 한 두렁만 심기로 작정했다. 보스코가 거름을 날라다 괭이질을 해서 한 이랑을 만들었다. 그 이랑에 나는 고랑을 파 올리고, 드물댁까지 일손을 돕는 바람에 비닐을 씌울 수 있었다. 양파씨 심는 일은 드물댁이 맡아서 해주겠단다. 우리가 내일 떠나면 한 주간이 지나야 휴천재로 돌아온다.
오늘은 우리나라만 발칵 뒤집힌 게 아니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얼마 전 브렉시트로 유럽을 발칵 뒤집었던 그 동네, 그 사람들의 큰 형인 히틀러를 능가할만한 국수주의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니, 4년쯤 지나면 그 트럼프패를 돌린 미국의 백인놈들 ‘쓰리 고’에 ‘피박’까지 뒤집어쓰고서 후회하리라 본다. 지금 우리나라 쪽 나겠지 미리 보고 배우지 못하구... 쯧쯧쯧...
우리나라에서야 정신 나간 여자 하나를 찍고서 ‘세월호’에 ‘남북긴장’에 ‘왜군영접’에 ‘사드배치’에 민족의 운명이 백두간두에 있고, ‘혜실게이트’에도 불구하고 경상도에 저학년에 저소득에 늙은 여자들이 여전히 ‘불쌍한 우리 공주님’을 중얼거리고 있다지만, 그것은 한반도를 좌우할 따름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백인, 블루칼라, 저학력, 저소득, 젊은 사내들이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줌으로써 20세기에는 소련과 싸운다면서,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소련이 없어지고 혼자 남았다고 해서 아무데나 침략하고 아무데나 폭격하는 무법의 최강군사대국을 손아귀에 쥔 저 자는 (그의 선거공약으로 미루어 하는 말이지만) 지구를 핵불에다 통구이하고도 남을 인물로 보이니 그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