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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100만 시민의 궐기는 ‘바람 앞에 꺼질 촛불’, 저런 국정농단을 성토하는 여론은 ‘인민재판’?
  • 전순란
  • 등록 2016-11-18 10: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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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7일 목요일 맑음


아침 일찍 호천이가 전화를 했다. 내가 오늘 엄마한테 간다는 말을 듣고 식사 시간에 이모를 30분 이상 기다리다 매일 찬밥을 먹는 엄마를 보기가 딱하다는 얘기다. 사실 엄마가 도우미 아줌마들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식당에 가서 한 식탁에 앉아 먹으면서 돌봄을 받으셔야 하는데 엄마는 지금까지 이모와 함께 먹어왔던 식탁을 쓰겠다고 고집하고, 일찍 식당에 오는 엄마에 비해 이모는 제일 늦게 와 설거지하는 사람까지 늘 이모의 밥상 끝나기를 기다리게 한단다. 



호천이가 엄마에게 화를 내며 도우미 아줌마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니까 “하나밖에 없는 동기간을 두고 그렇게는 못하겠다”라는 엄마의 대답. 자기 때문에 조카가 화내는 걸 본 이모가 “그럼 내가 제시간에 좀 빨리 오마”고 말해야 정상인데 야속하게 가만히 있더란다.


그곳 사람들이 엄마와 이모가 친자매간 맞느냐고 묻곤 한다. 착하고 말없이 남을 배려하는 엄마와 이 양로원의 모든 행정에 시비를 거는 이모가 너무 달라 보였나보다. 그래서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닮았고 이모는 외할머니를 닮았을 뿐 부모는 같다”고 설명해줬다. 요즈음 제 어미를 닮아 국민 전부를 속 썩이는 한 여자 얘기가 나와 한 달 넘게 세상이 들끓고 있다. 그 어미가 매춘언론의 조작으로 그럴듯하게 이미지 관리가 되어 왔는데 딸 때문에 본색이 탄로나자, 꿈결에서 깨어난 속 빈 여자들이 이제사 자기들이 한 투표를 두고 헤맨다. 모름지기 부모 욕을 안 먹이려면 내가 잘 해야 한다.


그런데 실버타운에 와 보니 호천이가 심하게 화를 내고 간 이틀 뒤 간호과장과 원장, 도우미, 아짐들이 번갈아 설득한 결과 엄마가 드디어 3층 도우미팀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신다니 마음이 놓인다. 간호과장 얘기로는, 3층으로 내려오셔서 돌봄을 받은 이후 3층 식구들과 먹을 것도 서로 나누고 오가며 더 건강하고 밝아지셨단다. 돌보는 사람들이 우선 젊고 사랑의 손길로 다독이고 여러 가지로 도우니 엄마도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해 하신단다.


과장님 얘기로 “노인은 덩치만 컸지 우리가 돌볼 애기”라며 그런 자세로 임하라고 돌보미들을 타일렀다나. 얼굴이 보얗게 예뻐진 울 엄마가 아이처럼 사랑스러보인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곳을 찾을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이렇게 살아 계셔서 어린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듯 우리를 반겨주니 큰 복이다.



로마 살레시안대학교에서 빵고 신부가 소속한 공동체 원장으로 계시다가 총본부 ‘가족수도회 담당 최고평의원’으로 가신 에우제니오 신부님이 한국에 오셨다고 아침에 전화를 하셨다. 지난번 이탈리아에 갔을 때 인사를 나눴고, 또 한 분, 한국관구장으로 계시다가 아시아 담당 최고평의원으로 계신 현 신부님도 오셨다기에 인사차 신길동 관구관에 갔다. 점심을 함께하면서 에우제니오 신부님이 어찌나 빵고 신부 칭찬을 하시는지 살레시안 기본자세가 돋보였다.



저렇게 누군가를 칭찬하고 따독인다면 변하지 않고 배길 장사가 없겠다. 저게 살레시안의 힘이구나 하며 기분이 좋았는데, 저녁 뉴스에 나오는 이정현 새누리당(개신교의 두통거리 ‘신천지교’에서 따온 ‘새누리’도 최순실이 지어준 당명이라는데?) 대표의 막말을 듣고 “어떻게 살레시오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저럴 수 있냐? 만약 저런 사람이 ‘자랑스런 살레시안상’을 받았다면 당신이 받은 그 상도 돌려줘요”라고 보스코에게 말했더니 대답이 없다. 국민 전부를 배반하고 정신 나간 여자 옆에서 저렇게 환관 노릇을 하니 살레시안 모두의 수치라고 열을 내자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버린다. 할 말은 더 많았지만 본인이야 얼마나 더 속 터지랴 싶어 그만 말문을 닫았다.


교육대로 되는 이도 있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다. 히틀러도 신학생이었고, 무쏠리니도 살레시오 학교에서 퇴학당한 사람이었다니... 예수의 제자 중에서도 유다스도 나왔으니... 100만 시민의 궐기를 ‘바람 앞에 꺼질 촛불’이라고, 어처구니 없는 국정농단을 성토하는 여론을 ‘인민재판’이라고 부르는 저 자들을 어찌할까나?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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