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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지요하] 칡넝쿨을 제거하는 아내, 최순실 때문이랍니다
  • 지요하
  • 등록 2016-11-24 11:39:38
  • 수정 2016-11-24 13:3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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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걷기운동을 한다. 주로 오후에 걷기를 하지만, 동녘의 햇빛이 찬란한 날은 불현듯 솟구치는 충동 때문에 오전에 걷기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지난 8월말 아내가 정년퇴직을 한 후로는 거의 매번 아내와 함께 걷기운동을 한다. 

    

그런데 아내는 걷기운동을 나갈 때마다 전지가위를 휴대한다. 다른 나무를 휘감고 있는 칡넝쿨을 자르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자면 칡넝쿨에 휘감겨 애처롭게 죽어가는 나무들을 살리기 위해서다. 


▲ 아내의 칡넝쿨 제거 작업 / 걷기운동을 하던 중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 칡넝쿨을 제거하는 아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 9월 19일의 모습이다. ⓒ 지요하


아내는 걷기운동보다도 칡넝쿨을 제거하는 일이 더 중요하단다. 걷기운동을 하다가 다른 나무를 휘감고 있는 칡넝쿨을 보면 걷기운동은 자동 정지다. 완전히 딴전이다. 남편은 안중에도 없고, 칡넝쿨을 제거하는 일에 완전 몰두한다. 


걷기운동 차림으로 부부가 함께 집을 나왔는데, 걷다보면 나 혼자 걷는다. 혼자 집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혈당 문제 때문에 늘 고심하며 사는 처지인데도 아내는 자신의 혈당보다도 칡넝쿨을 제거하는 일이 더 시급하단다. 


칡넝쿨은 사납고도 포악하다. 들길이나 산길을 걷다보면 칡넝쿨이 창궐해있는 광경을 쉽게 본다. 아내는 공터에 칡넝쿨이 뒤덮여 있는 것은 그냥 두고 보지만, 작은 나무나 어린 소나무 등에 칭칭 휘감겨 있는 칡넝쿨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아내가 작은 나무를 휘감고 있는 칡넝쿨을 제거하는 일은 곧 나무를 살리는 일이다. 칡넝쿨에 침범당한 나무는 비명을 지른다. 울부짖으며 애처롭게 죽어가는 형상이다. 숨이 막혀 죽어가는 나무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아내의 주장이다. 


칡넝쿨에 휘감기고 뒤덮여 거의 죽어가던 나무가 아내를 만난 덕에 구사일생하는 경우도 있다. 누렇게 죽어가던 나무가 칡넝쿨이 제거된 덕에 다시 파랗게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다. 세상에는 도차에 칡넝쿨이 창궐해 있다. 아내가 걷기운동을 하다 말고 칡넝쿨을 제거하는 일은 사실 미미하다. 산과 들에 칡넝쿨이 포악할 정도로 창궐해 있는 광경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칡넝쿨이 제아무리 기승을 부린다 해도 한해살이 풀이니 가을이 가면 다 말라붙게 되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은 하면서도 어린 나무들을 죽이고 있는 칡넝쿨을 보면 나도 적개심이 생긴다. 


칡을 온전히 제거하려면 땅을 파고 뿌리를 캐내야 하는데, 우리가 그 일을 할 수는 없으니 어딜 가다가 칡뿌리나 칡즙 장사꾼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사 먹자고 아내에게 우스갯말을 하기도 했다. 


또 칡도 살아야 할 거 아니냐, 다른 나무들을 휘감거나 뒤덮는 것은 칡넝쿨이 살아가는 고유의 방식이니 그걸 인간이 간섭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게 전적으로 옳은 생각은 아닐 것 같다. 은근 슬쩍 그런 말을 하면서도 나도 아내를 도와 나무를 살리는 일에 소매를 걷어붙이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아내의 전지가위


▲ 아내의 칡넝쿨 제거 작업 / 아내는 걷기운동을 하던 도중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 칡넝쿨들을 제거하는 일에 몰두했다. 지난 10월 8일의 모습이다. ⓒ 지요하


아내가 걷기운동을 하다 말고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 칡넝쿨을 제거하는 일은 단순히 나무들을 살리기 위한 일이었다. 나무들을 살려야 한다는 것 외 다른 생각이 없었다. 


나로서는 칡넝쿨을 보면 정몽주를 타살한 이방원의 ‘드렁칡’이 더러 생각나기도 해서, 이방원의 그 만행 때문에 칡이 더 미워지는 면도 있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는 절대로 옳지 않은 생각이었다. 드렁칡이 제멋대로 포악하게 세상을 뒤덮는 현상은 옳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을 때도 이방원과 드렁칡을 생각했고, 칡넝쿨에 대해 괜히 적개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때의 그 회억이 지금도 내 의식 속에는 무겁게 똬리를 틀고 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 이방원의 드렁칡도 전두환의 드렁칡도 없었다. 칡넝쿨을 제거하는 일에 그런 생각들이 개입된 게 아니었다. 아내는 오로지 칡넝쿨 때문에 죽어가는 나무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최순실 게이트(또는 박근혜 게이트)를 알게 된 후로는 칡넝쿨을 제거하는 일에 더욱 적극성을 보였다.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 포악한 칡넝쿨을 보면 그 엄발난 ‘권력의 화신’들이 생각나서 더욱 적개심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 칡넝쿨을 제거하는 일은 최순실 게이트(또는 박근혜 게이트)로 노정된 불의한 권력의 화신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할 터였다. 



[필진정보]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함. 지금까지 10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15권의 저서를 출간했음.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대전일보문화대상 등 수상. 지역잡지 <갯마을>, 지역신문 <새너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과 논설주간으로 일한 바 있고, 향토문학지 <흙빛문학>과 <태안문학>,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창간함.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외래교수, 한국문인협회 초대 태안지부장, 한국예총 초대 태안지회장,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공동대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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