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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자연과 가까이 사는 이들은 죽음도 쉽게 맞는다
  • 전순란
  • 등록 2016-11-30 10: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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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8일 월요일, 맑음


왜관 분도수도원 이형우 아빠스님의 장례미사가 내일이지만 내일 오전에 보스코의 강연이 광주에서 있어 오늘 문상을 하기로 했다. 보스코가 이 아빠스님과 친하게 지낸 것은 그분이 분도출판사의 ‘교부총서(敎父叢書)’를 시작한 공적 때문이다. 뒤이어 분도수도회가 앞장서서 ‘교부학회(敎父學會)’를 결성, 후원해왔고, 나아가서는 ‘중세철학회’도 후원하고 ‘중세철학(中世哲學)’이라는 학회지도 간행해 오고 있다. 한국사회에 서양고중세 문화를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수도회다. 



보스코가 번역하고 주해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을 분도출판사가 라틴어-한글 대조본으로 꾸준히 발행하고 있어 「그리스도교 교양(1988)」, 「참된 종교(1988)」, 「자유의지론(1998)」, 「신국론(2004)」, 「삼위일체론(2015)」, 최근의 「아카데미아학파 반박(2016)」이 출판되어, 80년대에 로마로 유학 가서 라틴어문학을 전공한 보람을 그의 번역과 주석으로 엮어내고 있다.  교부의 대표작이라 할 「고백록(2016)」만 경세원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


왜관 가는 길에 가야산 밑 성주에 사는 정한길 회장에게 연락하여 함께 문상하기로 해 수도원 소성당에 안치된 시신을 함께 보고 연도를 바쳤다. 소성당 뒷벽에는 한국에 와서 살다가 돌아가신 독일인 수도자들과 먼저 가신 한국인 수사님들 영정이 벽 가득히 붙어 있었다. 특히 임세바스티안 신부님의 사진이 반가웠다. 참 다정하고 번역작가인 보스코를 극진하고 겸손하게 대하던 분이었다. 그분이 돌아가셨을 적에 장례미사에서 조사를 한 것도 보스코였다.


이형우 아빠스님의 누이 수녀와 어머니를 뵙고 조의를 표할 수 있었다. 89세의 모친은 아직도 총총한 정기로 내 손을 잡으시며 당신의 지금 아픔을 조곤조곤 얘기하셨다. “우리 아들이 아파 있을 동안 손에서 묵주를 안 놓았는데... 순서대로 나를 먼저 데려가 달라고 간절히 빌었는데... 성모님께서 ‘날 보렴, 십자가에서 내린 아들 시신을 안고 있던 내 모습!’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어머니, 당신이 먼저 내 이런 아픔을 아셨군요. 더 할 말이 없습네다. 모든 것을 주시는 주님이시거늘, 제가 어찌 의심하겠습니꺼?’라고 말씀드렸다우. 그 뒤론 순서대로 죽게 해 달라는 부탁을 더는 안 했다우.”



그토록 경건하고 그토록 강직하신 모친도 아들을 입관하는 광경을 지켜보시다 관뚜껑이 닫히고 못질하는 나무망치소리가 쿵쾅거리자 거의 실신할 지경이 되셨다. 황해도에서 남하하셔서 일찍 남편을 여의고 일곱 남매를 키우시며 남편처럼 의지하던 큰아들을 앞세우셨으니.... 그분 얼굴은 곧 사그라질 비누거품 같았다.


문상을 마치고 수도원을 나와 정회장 부부와 커피점에 들러 차를 들면서 얼마 전 분도수도원 옛 성당에서 거행된 딸의 결혼식 얘기를 나누고, 부인이 대상포진을 앓고 있어 병원에 가야 해서 우리도 함양으로 돌아왔다.


문정마을에 도착해 오늘 장례식을 치른 문정상회에 들렀다. 지난 번 부면장님 병실에서 고인이 되신 모친과 함께 만났던 큰아들이 나의 문상을 반겼다. “임종을 못하여 아쉽지만 착하게 사셨으니 좋은 곳에서 좋은 분들과 더 재미지게 사시리라는 생각에 그다지 슬프지도 않습니다.”라는 상주의 대답.


“할아버지도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자리에 누우신지 사흘만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저 강에 목욕하러 가셨다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사흘만에 가셨지요. 어머니도 이렇게 주무시다 가셨으니 나도 이 담에 쉽게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지요”라는 말도 덤덤하게 들려준다. (아침에 찾아온 이웃 아줌마가 문이 안 열려 있다고 연락해 와서 가밀라 아줌마네 아들이 창문으로 들어가서 보니 안방에 깔아놓은 이불 속에 숨져 있었단다) 이렇게 산골 농촌에서 자연과 가까이 사는 이들에게는 삶과 죽음이 지척에 있어 친숙하게, 또 ‘쉽게’ 죽음을 맞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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