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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박근혜의 모처럼 업적
  • 전순란
  • 등록 2016-12-05 10: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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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3일 토요일, 맑음


2시 30분 서울행 버스를 탔다. 6시 30분에 광화문 도착 예정이다. 우리에게 매주 주말을 포기하게 하는 연대의 힘이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인다. 새 세상을 보려고, 그 세상에 무임승차 하지 않으려고, 보스코의 밥을 챙겨놓고 집을 나섰다. 김장까지 끝냈으니 걸음도 가볍다. 그도 가고 싶었겠지만 ‘경향잡지’, ‘다산연구소’에 보낼 원고를 더는 미룰 수 없어, 서울 오가노라면 아우구스티누스 번역집필이 여러 날 비워지므로 나더러 두 몫을 하고 오란다.


떠나면서 전화를 하니까 엘리사벳도, 국염씨도 다들 온단다. 전자초를 사려고 함양시내를 다 돌았지만 “그런 건 여기 함양에선 쓸 일이 없소”란다. 양초 한 자루를 사고 보옥당 사장님께 종이컵을 하나 달랬더니 컵 바닥을 十자로 정성스레 칼집까지 내준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이 꽃을 살포시 즈려밟고” 다녀 오시란다. ‘평화시위’라는 꽃밭이다.


얼마 전 ‘평회시위와 폴리스라인을 지키는 준법 시위가 저 자들의 프레임에 걸리는 짓’이라고, 그런 작전에 매이지 말자는 글들이 떴다. 국정원도 일베도 박사모도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를 부지런히 퍼뜨리는 중이다. 그만큼 똥줄이 타겠지. 우리는 저 프레임에 매어서 평화시위를 하는 게 아니다! 평화시위는 누구에게나 설득력 있고,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어 좋다. 70년대 초를 지나온 우리다. 


그때는 긴급조치, 삼선개헌, 유신헌법 숱하게 많은 불법과 탈법으로 벌벌 떠는 다수를 젖혀놓고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다. 밤새 만든 화염병과 돌을 들었고, 최루탄에 각목에 쇠파이프로 맞서 사투를 벌였다. 늘 우리가 불리했다. 두들겨 맞고 갇히고 고문당하고… 항상 당하는 건 국민인데 되레 범법자가 됐고 저 자들은 법을 집행하는 집행관으로 우리를 밟고 섰다. 국가라는 더 큰 폭력에 우리 모두가 쓰러지는데 우리의 폭력은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그때는 민중도 지금만큼 깨어있지 못했고 행여 동조하다가 당할까봐 몸을 사렸다(아들이 고문실에서 죽었는데 “종철아, 애비는 할 말이 없데이!”가 고작이었다). 예컨대 보스코가 한 달 간 남산 6국 지하실에서 고초를 당하다 10.26 새벽에 풀려나는 동안 친구나 지인이 한 사람도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많은 사람이 깨어 있거나 깨어나고 있다. 그때가 소수에 의한 게릴라 전이라면 지금은 모두가 손에 손잡고 세상을 바꾸리라는 꿈을 함께 꾸는 세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약한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주부, 노인과 장애인까지도 나서고 그들도 보호받는 비폭력이어야 한다.



6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김경일 섐과 문정주 섐이 나를 마중나와 있었다! 세상에, 시위하러 상경하는 시골사람 환영객도 있다니!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 문섐네 아들딸이 기다리는 냉면집에서 저녁을 함께했다. 


지우는 박근혜의 모처럼 업적으로 첫째, ‘창조경제’(양초와 시위 물품 생산 활성화, 전단지 인쇄업 등 문화산업의 생산폭증), 둘째 ‘민족대화합’(1~2백만이 함께 모여 화합의 물결을 이뤘다), ‘교육선진화’(초딩, 중딩, 고딩까지 모든 학생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현장으로 나올만큼 깨어났다)에 공헌하고 있다면서 웃는다. 특히 민간의료에 관심이 큰 문섐은 의료민영화가 가져오는 폐단을 닭근혜가 극명하게 보여줬단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모두가 가족처럼 따듯한 시선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아름다웠다.


10시까지 거리를 밀려다니며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와 자유발언을 듣고, 김섐, 문섐과 뜨거운 차를 함께 하고, 오늘의 감동을 다시 확인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정의 추운 날씨에도 마음만은 훈훈하다. “우리는 해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연대와 믿음! 우리는 위대한 국민이다!


빵기는 네팔로 일을 갔는데 스위스의 두 꼬마는 엄마랑 잘 지낸단다. 오늘은 동네 마라톤에 시아가 출전했다는 사진을 보내왔다. 12월 22일 걔들이 올 날만 손꼽는다. 그때까지 닭그네가 하야를 않는다면 두 손주를 데리고 광화문으로 나가 시아에게 자유발언을 시켜야겠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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