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가 합의한 이른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가 1년을 맞았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합의가 불가역적인 최종합의라고 주장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은 한 해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수요집회’가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렸다. 올해로는 마지막 집회현장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박근혜 정부가 국가를 짓밟은 범죄자들과 밀실 합의를 진행했다며 규탄했다. 정부는 자신들이 강행한 일본과의 합의를 묵묵히 수행했지만, 올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까지 주요 인권문제로 다뤄졌다. 미국과 호주, 캐나다, 독일 등 세계 곳곳에 소녀상 평화비가 세워졌다.
1,263차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시민들은 올 한해 별세한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한일 합의 무효를 촉구했다. 2016년 한 해 동안 선종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총 7분이다. 최옥이(91), 김경순(91), 공점엽(97), 이수단(96), 유희남(88), 박숙이(95), 김 모(90) 할머니이며, 이날을 기준으로 39명의 생존자가 남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평화나비전국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오전 11시 30분부터 분향소를 설치하고 올해 별세한 할머니들을 추모했다.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2015년 한일 정부 간 합의로 어느 때보다 고통스럽고 분노했던 1년이었지만, 더 많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 1년이기도 했다”라며 “세계 각지에서 반성과 연대의 뜻을 보내왔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정책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와 그 밑에 있는 윤병세 일당은 한일 합의를 지키겠다고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소녀상을 철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곳곳에 평화비가 세워졌다”며 “이러한 사실들은 이미 한일 정부 간 12‧28위안부 합의가 무효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명숙 해남나비 대표는 “살아생전 공점엽 할머니는 일본으로부터 두 번 다시 전쟁이나 위안부 같은 몹쓸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사과를 받는 것이 단 하나의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다”라며 “단 하나의 소원이 이뤄질 때까지 할머니들의 추모식은 진정한 의미의 추모식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올해 5월 17일 세상을 떠난 공 할머니는 일본군의 잔인함과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증언하며 전쟁의 악랄함과 평화를 지키는 연대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라며 “할머니께서는 이제 돌아가셨지만, 일본의 ‘잘못했다’는 공식적이고 진실한 사과를 우리가 직접 받아내자”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작년 오늘 있었던 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관한 한일합의는 무효”라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없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에게 사전에 한 번도 제대로 협의가 없었던 밀실 합의가 어떻게 유효할 수 있나”고 발언을 시작했다.
이어 “중대한 인권 침해 범죄에는 진실에 대한 조사와 사죄, 배상과 형사처분, 재발 방지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일본 정부가 이 중 제대로 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과거를 기억하지 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함께 연대하고 투쟁해 나가자”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일본군 위안부 사건에 대해서는 국제 법학자들도 유죄로 뜻을 모으고 있다며, “서울시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모든 기록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를 위해 내년도 예산편성도 마쳤음을 밝혔다.
이날 수요집회는 1부 추모제와 2부 시민행동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 추모제에서는 위안부 희생 할머니들의 삶을 소개하는 시간과 추모발언을, 2부 시민행동에서는 한일합의 무효를 촉구하는 발언과 공동결의식 등이 진행됐다.
한편, 이날 부산시민단체가 부산 동구에 위치한 일본영사관 후문 앞에 소녀상을 설치했으나 관할 지자체인 부산 동구청은 직원과 경찰을 동원해 이를 철거했다.
이날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는 낮 12시께 부산 동구 초량동 정발장군 동상 앞에서 수요집회를 진행한 뒤 집회 장소 인근에 위치한 일본영사관 앞 인도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했다.
이후 추진위와 집회참가자들은 경찰과 동구청의 소녀상 철거에 맞서며 연좌농성을 벌였지만, 경찰은 공무집행방해혐의로 이들을 연행했고, 청년들이 모두 끌려 나가자 동구는 직원을 동원해 오후 4시 30분경 곧바로 소녀상을 철거했다.
추진위는 지난 1월부터 소녀상 건립을 위한 1인 시위를 이어왔으나 부산 동구의 반대로 설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오는 31일 오후 9시 일본영사관 앞에서 소녀상 제막식을 할 예정이었지만, 이 또한 동구의 방해로 여의치 않자, 이날 기습적으로 소녀상을 설치했으나 바로 철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