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맑음
대한민국 광화문 외무부 청사 앞은 동토처럼 그늘져 몹시도 추웠다. 유리로 덮인 구름다리 위에 외무부 공무원들이 슬그머니 문틀 뒤에 숨어 우리의 행동을 살피며 오간다. 박근혜 정부 들어 모든 부서가 휘둘려 다들 악한 일에 자발적인 부역자로 생존을 보장받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이 끌려다녔다고들 변명한다.
특별검사팀은 ‘아니다’, ‘모른다’로 일관하다 증거가 나오면 ‘윗선의 지시를 무슨 수로 거부하느냐’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 ‘십상시’니 ‘문고리3인방’이니 하는 청와대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의 범죄, 저 작자들의 위법한 지시를 적극 이행한 각 부처의 ‘늘공’(직업 공무원)들의 범죄도 처벌해야 한다. 조선시대도, 일제 강점기도, 해방후 70년간 기득권의 일원으로 군림해온 기생충들이자 악질적인 하수인들이다. 외무고시를 통과한 저 엘리트들도 그 중 한 무리다.
오전 11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올해 마지막 시위, 126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했다. 더구나 작년 2015년 12월 28일은 아베정권과 박근혜정권이 당사자들 동의 없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와 십억엔으로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여 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죄 진상규명과 역사교육 없이 묻어버린 날이다. 또한 올해만도 좋은 세상 못보고 일곱 분이나 돌아가셔서 이젠 서른아홉 분 밖에 안 남으셨기에 우리의 마음도 바빴다.
행사 중에 경주여고의 이수정 학생의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자신이 정신대 할머니들 얘기를 들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고 그때의 느낌은 ‘아픔과 미안함’이었단다. 그 사연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어 말을 했더니 친구들의 반응은 “끔찍하다.” “말하지 말라.” “얘기 듣기 싫다.”더란다. 그러다 올 봄 학교에서 ‘시사기획단’에 동참하면서 처음에는 초딩 때 기억으로 친구들이 싫어 할 것 같아서 염려했는데 의외로 동참한 친구부터 시작하여 공감하고 분노하여 차츰 그 사실을 알려갔는데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자신과 친구를 바꿔갔단다. 더구나 올해 일곱 분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는데 그분들이 이제는 나비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시길 바란단다.
30여년 전 우리가 초창기에 여신학자협의회 이름으로 시위에 참석했을 때는 몇몇 여성단체의 나이든 아줌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어린 학생들,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한충은님의 구슬픈 대금 연주 ‘꽃길’은 할머니들이 걸어 가고 싶었던 길이었고 저 세상에서라도 걸어보시라는 애닮은 사연이 스며있었다. 충북 성화초등학교 학생들의 ‘고향의 봄’과 ‘소녀와 꽃’은 노래 가사에 눈물이 젖어 흘렀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두터운 목도리에 맨발로 겨울을 나는데 그 추위에서도 철거하려는 일본놈들과 나쁜 일은 골라가면서 하는 박근혜정부 말고도 위안부 소녀 동상을 지키는 모임의 학생들이 있어 고맙고 든든했다.
집회가 끝나고 행진을 하여 외무부 청사 정문 앞에서 연대 발언과 합의 무효를 위한 공동결의식로 꽃으로 합의 무효를 수놓았고, 수녀장상연합회의 최벨라데따 수녀님의 요구서 낭독으로 모든 행사를 마쳤다. 행사 후 3시에서야 한국염 목사 일행과 늦은 점심을 함께 하고 종로3가 까지 걸어가서 헤어졌다.
오후에 공안과를 다녀온 빵기네랑 저녁 7시에 만나 노원 롯데백화점의 스타박스에서 ‘스타워즈 로그 원’이라는 영화감상을 했다. 나랑 지선이는 그 소란스러운 사운드트랙 속에서도 졸고, 시우는 컴퓨터게임 정도로 구경하고, 시리즈 영환데도 보스코는 난생 처음 보는 스타워즈라 내용도 줄거리도 몰라 돌아오면서 시아에게 한참이나 설명을 들어야 했다. 우리 여섯 중에 제대로 영화 감상을 한 사람은 빵기와 시아 부자였다.
나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내용을 두고두고 되새길 영화, 아름다운 이야기, 만화영화 등이지 1분내에 수백명씩 쏴죽이는 전쟁영화나 SF는 친해지기가 힘들다. 그래도 온 가족이 함께 했다는 그 기분은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