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 바티칸라디오 >의 1월 2일자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원제 : 교황, 주교들에게 아동의 생명 보호 촉구) - 편집자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형태의 아동 억압이나 착취를 강력히 비판하는 편지를 전세계 주교들에게 보냈다. 이 편지는 지난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에 발표되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친애하는 형제들에게
오늘,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에,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천사가 목자에게 한 말이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이때, 저는 여러분에게 편지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천사의 저 선포를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계속해서 듣고 또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이러한 확신은 우리의 기쁨과 희망의 원천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전례가 우리를 성탄의 핵심으로, 신비한 성탄 기쁨의 원천으로 이끌고 인도하는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목자로서 우리는 신자들 가운데 이러한 기쁨이 충만할 수 있도록 도우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쁨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교회 심지어는 우리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희망이 사라져 우울함으로 빠져들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고 해도, 이러한 기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복음의 기쁨 83항 참조)
성탄은, 좋든 싫든 눈물을 동반하게 됩니다. 복음사가들은 더욱 그럴싸하게 혹은 멋지게 현실을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듣기에는 좋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말에도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성탄은 환상 속으로의 도피나 현실의 도전이나 불의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이들은 하느님 아들의 탄생을 비극과 슬픔으로 가득 찬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를 언급하며, 마태오는 가장 직설적인 말로 이를 보여줍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끓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오 2,18) 이는 헤로데의 독재와 권력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욕망 앞에 자기 자식의 죽음에 통곡한 어머니들의 흐느낌입니다.
오늘날 역시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고통의 신음을 듣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묵과하거나 묵살시킬 수 없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우리는 계속해서 수많은 어머니들, 가족들이 천진난만한 자기 자식들의 죽음 때문에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구유를 관상한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고통의 신음을 관상하는 것이며,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눈과 귀를 여는 것이고, 우리 이웃의 고통에 특히 아이들이 관련된 고통에는 더욱 귀를 기울이고 열린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또한 역사에 이러한 비극의 장이 여전히 기록되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현실과 분리된 구유를 관상함으로써 성탄이 마음 따뜻해지는 감동적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람이 되신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기쁜 소식(복음)의 창조적 힘을 빼앗아버립니다. 이러한 유혹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현실에 등을 돌리고도 성탄의 기쁨을 진정으로 경험할 수 있을까요? 형제자매들과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외면하는데 과연 성탄의 기쁨이 존재나 할 수 있을까요?
성 요셉은 구원의 기쁨을 수호하는 일을 맡은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벌어지고 있던 잔혹한 범죄에 맞서, 순종적이고 충직한 사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성 요셉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러한 사명을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에 성 요셉은 자기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더욱 선명하게 자각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건들을 현실적으로 해석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사목자들은 이와 똑같은 사명을 요구 받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소상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기를 말입니다. 오늘날, 성 요셉을 우리의 모델로 삼아, 우리는 이러한 기쁨을 빼앗기지 말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헤로데와 같은 이들로부터 이 기쁨을 수호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입니다. 요셉처럼,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응답하고 일어서서 직접 문제를 해결할 용기가 필요합니다(마태오 2,20).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집어삼키는 우리 시대의 헤로데와 같은 이들로부터 이 기쁨을 지킬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법 노예 노역자 억압, 성매매나 착취로 인해 아이들은 천진난만함을 빼앗기고, 전쟁과 강제 이주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오로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욕망하고 착취하는 조폭이나, 범죄 조직 혹은 죽음의 상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를 들자면, 현재 장기화된 긴급 상황과 위기 상황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7,500만 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2015년 성적 착취(sexual exploitation) 희생자 중 68%가 아동이었습니다. 동시에, 자기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살아야 하는 아이들의 3분의 1은 어쩔 수 없이 강제이주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5세 이전에 사망하는 아이들의 절반이 영양실조로 인해 죽어 나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1억 5천명의 아동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 중 다수는 노예와 같은 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유니세프에서 발표한 가장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2030년에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아가게 될 아이들이 1억 6,700만 명이 될 것이며, 2016년부터 2030년 사이에는 6,900만 명의 아이들이 5세 이전에 사망하게 될 것이고 1,600만 명의 아이들은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못 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의 목소리와 고통의 신음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어머니이신 교회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기도 합니다. 교회는 자신의 가장 어린 아들과 딸이 받는 고통뿐만 아니라 교회 구성원 중 일부의 죄로 인해 슬퍼하고 있습니다. 신부들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미성년자들의 괴로움과 경험 그리고 고통 때문에 교회가 울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죄입니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이 아이들의 존엄을 파괴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는 희생자들의 고통에 동참하며 이 죄 때문에 슬퍼합니다. 일어난 일, 돕지 못한 일, 감추고 부정하는 일 그리고 권력 남용과 같은 범죄들이 이에 속합니다.
교회는 자기 아들들의 이러한 죄에 대해 비통하게 울고 있으며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을 기념하며 저는 우리 모두가 이런 잔혹한 일들이 더 이상 우리 가운데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지는 일에 다시 한 번 온전히 헌신하겠다고 선언하기를 바랍니다.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리하여 이러한 범죄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합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에 기대도록 합시다.
성탄의 기쁨은 현실의 변두리에서, 이러한 고통을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의 기쁨은 부르심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으로, 이 부르심은 성 요셉이 받은 부르심과 같이 인간 생명을 끌어안고 보호하라는 부르심이며, 이는 특히 오늘날의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의 생명을 보호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성탄은 우리에게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이 태어나고 자랄 수 있도록 도울 것을 요구하는 시기입니다. 성탄은 주교로서 우리가 새로운 용기를 찾을 것을 요구하는 시기입니다. 이 용기란 많은 아이들이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인지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써 이 아이들의 존엄성이 존중 받을 뿐만 아니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보장되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용기인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로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면서, 이를 잘 돌보고 기쁨을 키우도록 합시다.
성 요셉의 신심과 더불어 따뜻한 사랑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따라 우리 마음이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하며, 위와 같은 일을 행하도록 합시다.
우애를 담아
프란치스코 교황
2016년 12월 28일 바티칸
죄 없는 아기 순교자 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