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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맨날 한국에서 붕어빵 먹고 살면 좋겠어요’
  • 전순란
  • 등록 2017-01-04 10:06:11
  • 수정 2017-01-04 13: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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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일 월요일, 맑음


점심무렵 빵기네가 도착했다. 외할아버지 댁에서 사촌들과 어지간히 뛰고 놀아 기운이 빠졌을 법도한데 집에 들어와 겉옷을 벗자 부산하게 두 놈이 뛰논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점심에 해 준 파스타를 놓고 시우에게 “빨리 먹어라”, “한입만 더 먹어라” 채근할 필요가 없어진 일. 일곱이나 되는 애들에 끼어서 생존을 위해 먹어야만 해 말없이 먹는 걸 배웠거나, 떠들고 놀다가 허기져 배고팠거나 하리라. 손주들 입으로 밥 들어가는 광경처럼 보기 좋은 게 있을까?



아침부터 덴마크에서 정유라가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뜨고 종일 그 뉴스가 TV 화면을 달군다. 빨리 이 사건이 끝나고 다들 평화롭던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벌써 몇 달째 국민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쓸데없는 일에 다 빠져나가 정상적인 일상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그래도 옆도 안보고 열심히 번역과 글쓰기를 하는 건 우리 보스코 정도다. 시아와 시우가 아무리 곁에서 떠들고 놀아도 자기 일에 열중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내공을 쌓아서다. 그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데 도가 텄는데 요즘은 나이 탓인지 외출을 하고 오거나 여행을 하고나면 일상처럼 작업으로 돌아가는데 꽤 긴 시간이 필요해졌다.


요즘 빵기네 가족이 제일 많이 하는 놀이의 성과물을 살펴보았다. 걔들이 나가서 하는 일은 쇼핑인데, 서점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쇼핑이다. 그러다 보니 사들고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이 책이다. ‘무슨 책인가?’ ‘요즘 애들과 엄마가 흥미로워 하는 책이 주로 무언가?’ 살펴보는데 종류가 다양하다. 과학책, 추리소설, 고전동화 그 밖에 그림 맞추기 등이다. 우리 두 손주가 외국에 살면서도 우리말을 국내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것도 다 며느리의 수고와 노력 덕분이다. 35년 전 내가 하던 고생이다.


넷은 오늘도 점심 후 외출을 하였다. 빵기는 어려서 부터 유난히 눈을 부볐다. 우리 가족 중 제일 먼저 일어나 커튼을 조금 젖히고 우리가 일어날 때까지 책을 보곤 했는데 그게 원인이었는지 해가 뜨고 해를 마주하면 너무 눈을 비벼 어려서 안과에 데려갔더니 심한 난시라고 했다. 중학교 다니면서는 더 심해지고 대학 다닐 때 인도에 갔다가 안질이 걸렸고 뜨거운 태양이 원인이지만 속눈썹이 검은 동자를 상처내서였단다. 돌아와 두 눈 다 쌍꺼풀 수술을 한 뒤 좋아졌지만 작은손주가 아빠를 닮아 심한 난시란다.


어린 나이에 안경을 쓴 모습도 애처롭거니와 형하고 심하게 몸놀림을 하다 안경이 상할까봐 조심하는 동작도 안타깝다. 나처럼 눈이 좋다가 나이 60이 넘어 안경을 쓰는 것도 이리 불편한데 너댓살부터 써야 하다니 안쓰러울 수밖에. 엊그제 공안과에서 검사받은 처방전으로 시우 안경을 덕성여대 구내안경점에서 새로 했다. 안경을 두개나 맞추었다고 내게 자랑하는 시우.


저녁으로는 길거리에서 국물떡볶이, 어묵, 붕어빵, 핫도그를 실컷 먹고 왔다며 즐거워한다. 우리가 ‘불량식품’이라 부르며 즐기는 목록이지만 걔들도 모처럼의 귀국길에 즐기는 메뉴다. 그래도 경제관념이 좀 있는 시아가 내게 하는 말, 할머니, 1프랑(1000원)에 붕어빵이 4개예요! 제네바에선 상상도 못할 가격이예요. 맨날 한국에서 붕어빵 먹고 살면 좋겠어요. 나는 웃었다. ‘그래, 붕어빵 실컷 먹으며 여기서 지지고 볶으며 같이 살자꾸나.’


한복의 용도


아랫동네 사는 오빠한테 (쟤들에겐 할아버지) 세배를 가면서 한복을 갈아입힌다기에 속으로 얼마나 복잡할까 염려했다. 아범이 한복을 내주며 외치는 소리, 변신시작!” 애들은 옷을 몽땅 벗어버리고 다투어 한복을 입고선 그야말로 소림사 무사가 되어 얼마나 날뛰는지! 인사동 일대에 한복을 빌려입고 얌전히 뽐을 내는 처녀들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다.


꼬까옷 갈아입고 우리에게 세배를 하고선 함무이, 세뱃돈 안 받을 테니 한번 더 해볼께요.란다. ‘그래그래, 망자나 재배를 받는다지만 세뱃돈 한 번에 두 번 절 서비스도 좋다 좋아!’ 11시가 넘어도 두 사내놈들이 얼마나 낄낄거리고 쿵쾅거리는지 아범이 둘을 재우느라 한참이나 애를 먹는다. 난 일기를 쓰는 시각이지만 저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손주들의 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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