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5일 목요일, 흐림
서울에 와서 보스코 하는 일은 책상과 소파를 오가며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소파에 누워 책을 보는 게 전부다. 너무 움직이지 않아 무슨 일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손주들이 오면서 내 관심은 온통 걔들에게만 가 있어 ‘좀 나가서 천변을 걷거나 뒷산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오세요’ 잔소리할 여유마저도 없었다. 또 시계가 100m 앞도 안 보이는 오염된 공기 속을 걸으라는 말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런 나의 무관심에 한 열흘 자기 편한 생활을 하다 보니 본인도 느끼는 바가 있었던지 어제는 우이령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단다. 노인들은 전화로 예약신청을 할 수 있다.
지난 가을 대동문엘 가며 과자 두 봉지로 점심을 떼우느라 너무 허기졌으므로 오늘은 준비를 했다. 사과 한개, 빵 두개, 과자, 김밥 한 줄, 컵라면 2개, 막대커피에 보온병... 이만하면 누구도 부럽지 않은 채비다. 오늘이 절기상 ‘소한(小寒)’이지만 “대한이가 소한이네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죽었대”라는 민담이 무색하게 날씨도 푹하고 해가 안 나와 모자도 없이 산보하기엔 최적의 날씨. 일주일 넘게 북한산이 안 보이던 심한 미세 먼지도 어느 정도 사라진 ‘우이령길’엔 오가며 만난 사람 전부가 오늘은 열명도 안 되는 한가한 산길이었다.
도봉산의 암봉들
산에 오르기 전 등산용 깔개를 찾으니 지지난 달 광화문 토요집회에 들고나갔다 잃어버린 것 같아 ‘6번종점’ 등산용품을 파는 가게 모인 곳엘 들렀다. ‘날씨가 푹해 좋겠다’는 내 인사에 가게 아저씨의 푸념이 쏟아진다. 자기네들은 올 겨울이 따뜻해 겨울옷 한 벌도 못 팔아 건물세도 안 나온단다. 더구나 산행이 제일 많은 토요일에 광화문으로 사람들이 가버리니 가게문은 열어 놓았지만 장사는 형편이 없단다. 양초 장수, LED초 장수, 인쇄업자, 시내 중심가의 식당은 특수를 누린다지만, 먼 곳에서 손가락 빨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헌재의 탄핵 결정이 빨리 나와 일상적인 생활로 어서 돌아가야겠다. 하기야 우리 경제 전체가 추락하는 사정이지만....
집을 나와 우이천변으로 달아낸 둘레길을 따라 우이광장에 다다르고, ‘니나노골목’은 차들의 통행이 빈번해 곁으로 나있는 ‘명상의 집’ 가는 한적한 길로 걸어 올라가니 초소까지 한 시간쯤 걸린다.
그 길 초입의 어느 막걸리집 벽에 ‘새우잠을 자도 고래꿈을 꾸어라!’는 낙서가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 아래층 총각의 고된 근무와 출퇴근을 보아도 새우잠을 자고 해거름까지 쟁기질하는 소처럼 부려지다 AI시대의 닭처럼 ‘살처분’되는(거제의 조선소 노동자들을 보라!) 지금의 우리 경제를 장탄식하게 된다.
박정희 시대, 절대 훼손해서 안 될 북한산 발치에 개신교에는 ‘아카데미하우스’, 가톨릭에는 ‘명상의집’을 짓도록 박정희가 특명허가를 내주어 독재에 불만스러운 종교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는 소문이 기억난다. 오늘 올라간 ‘오봉산 석굴암’의 거창한 불사로 오봉 아래가 처참히 파헤쳐지는 광경은 여전히 특혜를 받아 불법을 일삼는 ‘종교계 행태’를 한 눈에 보여준다.
내려오는 길에 앞서 가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명상의집’ 입구에 세워진 성모상을 향해 합장을 하며 절을 하기에 “성당들 다니셔요?”라고 물었다. “절에 다니는데 마리아상이 내다보시기에 인사를 드렸다우. 좋은 분이고 좋은 게 좋은 일이어서”란다. 저렇게 착한 국민의 심성을 종교가 악용해서는 안 되겠다. ‘양부모 총맞아 죽은’ 박근혜의 청순, 가련, 불쌍을 무기로, ‘갓난아기 젖먹이는’ 정유라의 불쌍한 젊은엄마를 내세워 미련한 꼴보수들의 지지를 끌어 올리는(벌써 15%까지?) 사악한 언론이나 저 패악한 무리에게 ‘하나님의 삼박자 축복’을 비는 예배당들이 더는 없으면 좋으련만(오늘 헌재에서 박근혜를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로 시성하는 변호를 한 사람이 ‘대수모’가톨릭인사였다)…
‘소귓고개’ 또는 ‘바윗고개’를 넘어 양주로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오봉산석굴암’의 삼신각에 이르는데 늘 그곳 섬돌에 앉아 건너다보는 북한산은 세상의 모든 인연과 군상과 차단되어 첩첩산중에 홀로 선 고요함을 준다. 보스코랑 한참 그곳에 앉아 있다가 한기가 들어 하산길을 내려섰다. 아침 11시에 집을 나와 6시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다리가 풀렸지만 그래도 지리산에서 갈고닦은 근육들은 모처럼 할 일을 했노라 좋아한다. 지리산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