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운동과 대체복무제도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데 헌신해온 평화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이 제6회 ‘이돈명 인권상’을 받았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10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시상식을 열고 ‘전쟁없는세상’에 상패와 상금 5백만 원을 수여했다.
2003년에 만들어진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자에 대한 법적인 옹호와 대체복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데 기여해왔다. 또한,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과 군사문화 저지 활동 등 다양한 반 전쟁‧평화운동 확산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날 시상식은 이돈명 변호사 6주기를 하루 앞두고 열렸다. 이돈명 변호사는 한국인권변호사의 1세대로 불리며 1970년대부터 시작된 민주화운동에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다. 특히 천주교 사회운동과 사립학교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 변호사는 천주교인권위 초대 이사장을 맡았으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11년 1월 11일 선종했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받들어 1억 원의 조의금을 모아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기탁했고, 이후 2012년부터 매년 이 변호사의 뜻을 잇는 단체를 선정해 격려와 응원이 뜻으로 상을 수여해 왔다. 그간 ‘이돈명 인권상’은 이 변호사의 추모의 밤 행사에서 함께 열렸으나, 이번부터는 별도의 시상식을 마련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인 김형태 변호사는 “이돈명 변호사의 뜻을 기리는 이 상이 힘든 현장에서 지속적인 투쟁을 해왔던 단체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한국사회가 전쟁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쟁없는세상’이란 단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도 세상의 평화를 위해 열심히 활동해 달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제6회 ‘이돈명 인권상’ 심사를 맡은 백승헌 변호사는 “분단국가인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평화가 간절한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분단이란 상황 때문에 평화활동이 오히려 쉽지 않다. 게다가 병역거부운동이라고 하면 근본적으로 반체제 취급을 받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환경이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없는세상’은 이 분야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전쟁없는세상’은 평화를 이루려는 신념으로 병역거부자들을 옹호하고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뿐 아니라, 이들을 단순히 피해자를 넘어서 평화운동의 주체로 세우는 것에 노력했다. 이것이 가장 큰 선정 이유였다”라고 밝혔다.
백 변호사는 “한국사회에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징역, 구금뿐 아니라, 사회로부터의 배제와 시민권 제한으로 이어진다. 군사문화에 저항해 온 몸을 던지고 있는 활동가들도 재판을 받고 불이익을 받는다”라며 “고독한 피해를 각오하고 평화를 위해 저항한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큰 빚을 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심사를 통해 ‘전쟁없는세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끈질긴 평화활동을 해왔는지 배우는 시간이 됐다며, 군사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전쟁이 없는 세상을 위해 계속 노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병역거부자이면서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인 이용석 씨는 수상 소감에서 “벌써 올해도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판결이 났고, 2년 전부터 무죄판결이 나오고 있다”며 “사회운동으로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족하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조금씩 한국사회의 군사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작은 돌멩이를 놓겠다”고 말했다.
이용석 씨는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한국사회에서는 병역의 의무가 신성한 것이었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었지만, 지금은 보수적인 사법부도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에 대해 손을 들어주고 있다”며 “예전에는 학생운동의 연장선에서 병역거부가 일어났지만, 이제는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강한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들을 위해 그리고 대체복무제도의 논의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이돈명 인권상’에서 받은 상금에 대해 “평화의 신념으로 예비군훈련을 거부한 사람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하고 이 벌금이 매년 쌓인다. 또한 수시로 경찰 조사와 재판을 받아야 해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라며 “그래서 예비군훈련 거부자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있는데, 오늘 받은 상금 일부를 이 기금을 위해 적립할 것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