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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나눔-김혜경] 정유년, 나의 초식동물 이행기
  • 김혜경
  • 등록 2017-01-11 10:34:36
  • 수정 2017-01-11 10: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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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정유년(丁酉年)은 닭의 해다. 예로부터 닭은 어둠에서 빛을 여는,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음기와 액운을 쫓고 양기를 집에 머물게 하는 상서로운 동물로도 여겼다. 세화(새해에 그리는 그림)로 그려 대문 등에 붙여서 귀신을 쫓거나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지난 해 우리는 모두 그 어느 때보다도 긴 어둠의 시간을 살았다. 올해에는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희망찬 날을 맞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울어줄 닭이 남아있기나 할지 모르겠다. 조류독감(AI) 때문에 그러잖아도 비참한 닭의 삶이 더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 (사진출처=AI공익광고 갈무리)


공교롭게도 닭의 해인 올해, 발병이 알려진지 48일 만에 우리가 죽여 버린 닭과 오리들이 3천만 마리가 넘는다. 일단 발생하면 독감에 걸린 닭들은 물론이고, 반경 500m 안은 무조건, 근방 3㎞이내의 닭들까지 ‘예방’차원에서 모두 죽이고 땅에 묻어버린다. AI는 말 그대로 조류들이 걸리는 독감이라는데, 무조건 죽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미국은 AI가 발생한 농가에서는 24시간 이내에 살처분하고 반경 3.2㎞ 안에서는 모니터링을 한단다. 일본도 발생 농가만 살처분하고 3㎞ 안에 있는 농가들은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철새가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말도 그렇다. 날아온 철새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몽땅 떼죽음 당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또 감염된 철새가 직접 닭장에 들어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결국 철새의 똥오줌을 어디엔가 묻힌 사람이 바이러스를 전파했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 게다가 철새는 우리나라만 오는 게 아니다 중국도 가고 일본도 간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만 AI가 퍼지는 건 예방이나 방역에 문제가 있거나 ‘공장식 축산’ 탓일 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하루에 달걀 4000만 개, 한 사람당 일 년에 닭고기 15.4㎏을 소비한다고 한다. 달걀을 얻으려 기르는 닭(산란계)은 7000만 마리, 고기를 얻으려 기르는 닭(육계)은 8000만 마리란다.(2016년 9월 기준) 참고로 한우와 육우를 포함해 젖소와 돼지를 모두 합해도 1000만 마리 안팎이다. 그만큼 치맥이니 치느님이니 하면서 닭을 편하게(?) 많이 먹는다는 거다. 나 역시 가볍게 치킨에 맥주 한잔, 좋아한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보면, 알을 낳는 산란계는 A4용지보다도 좁은 닭장에서 평생을 보낸다. 창문도 없는 커다란 헛간 같은 곳에 약 3만 3000개, 많게는 5만여 개의 닭장들을 3층에서 9층 높이로 층층이 쌓는다. ‘공장식 축산’을 위한 배터리식 닭장이다. 날개 펼칠 공간도 없고 자기 몸을 쪼거나 서로 공격하는 걸 막으려 애초에 부리를 자른다. 히스테리에 시달리다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닭이 부지기수다. 사육장이라기보다는 정신병원이나 공장에 가깝다. 


이 달걀공장에서는 16-20주가 된 암컷들을 한 마리씩 닭장에 넣는다. 그리고는 조명을 어둡게 한 후, 아주 저급한 사료를 굶어 죽지 않을 만큼씩만 먹인다. 그렇게 2-3주가 지나면, 다음에는 하루 16-20시간씩 내내 불을 밝히고 사료도 고단백질로 바꾼다. 그러면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온줄 착각한 닭이 알을 낳기 시작한다. 일 년에 300개 정도 낳는데, 자연 상태에서보다 두세 배는 많은 양이다. 다음 해에는 그만큼 알을 많이 낳지 못하니 도축해 버린다. 산란계는 그야말로 알 낳는 기계다. 그럼 수평아리는? 해마다 2억 5천여 마리가 태어나자마자 전기가 흐르는 판 위로 보내지거나 플라스틱 컨테이너에서 질식사, 혹은 산 채로 톱밥 만드는 펄프제조기에 넣어 폐기(!)한다. 생명을 전혀 생명으로 대접하지 않는 거다.


고기를 먹는 육계는, 유전자를 조작해 가능한 한 적게 먹고도 빨리 자라는 닭으로 만들었다. 콩이나 옥수수만 GMO가 있는 게 아니었다. 끔찍한 과학기술이다. 이런 닭은 가슴살이 비정상적으로 크거나 근육과 지방 조직이 뼈보다 훨씬 빨리 자라 늘 고통에 시달린다. 물론 교미도 하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살찌우기 위해 병아리일 때는 24시간 조명을 켜놓는다. 그러면 더 많이 먹기 때문이다. 조금 자라면 하루에 4시간쯤만 어둡게 해준다. 겨우 살기 위한 만큼만 잠을 재우고 온갖 약품이 뒤섞인 사료를 먹이면서 몸집을 키운다. 늘 약에 취해 있고, 잠도 부족하고, 배설물로 찌든 지저분하고 비좁은 곳에서 그로테스크하게 자란 몸에 짓눌려 있는 닭이 제정신일 리가 없다. 그러고도 겨우 6주, 그러니까 태어난 지 42일 정도면 도축되어 마트에 진열된다. 자연에서 사는 닭의 수명은 15∼20년이나 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도축은 어떨까? 싣고 갈 상자에 닭을 함부로 던져 넣는 바람에 뼈가 부러지는 일이 다반사다. 물도 모이도 주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달려 도축장에 가면, 닭의 발목에 쇠로 만든 족쇄를 채워 움직이는 컨베이어 시스템에 차례차례 거꾸로 매단다. 깜짝 놀란 닭들은 고통과 공포로 비명을 지르고 정신없이 날개를 푸드덕거린다. 그런 몸부림과 상관없이 컨베이어 시스템은 전기가 통하는 뜨거운 열탕 탱크 속으로 닭들을 끌어가 의식을 마비시킨다. 피부와 깃털에 묻은 오물들이 둥둥 떠다니는 탱크여서 피부 속으로 병원균이 스미거나 흡수되기도 한다. 그곳을 통과한 후에도,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의식은 남아있어서 닭의 눈이 움찔거리고 소리를 내려는 듯 부리를 조금씩 벌리기도 한다. 


이런 채로 피를 빼기위한 자동 목 절단기 라인으로 매달려간다. 절단기에서 목의 동맥이 제대로 잘리지 않은 경우에는 사람이 칼로 잘라야 한다. 머리와 발을 제거한 후 기계가 세로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뜯어낸다. 이때 뱃속에서 터져 나온 배설물로 많은 닭들이 오염되고 이런 오물과 역한 냄새, 바이러스 등을 제거하기 위해 염소(이른바 락스)로 소독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키워지고 죽인 닭들을, 우리는 맛나게 먹는다. 


▲ 닭 사육 대량화를 위한 배터리 케이지 (사진출처=환경스페셜 `동물공장` 갈무리)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식 축산’에서는 당연히 많은 양의 성장촉진제와 이런저런 항생제들을 병아리 때부터 마구 쓴다. 사람에게 쓰이는 항생제는 해마다 1,300톤인데 비해, 가축에게는 1만 1000톤이나 된다. 열배에 가깝다. 이 때문에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병원균도 자꾸 생겨나고 동물의 몸에 쌓였던 각종 약물은 자연스레 그 동물을 먹는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닭만 그럴까? 우리가 먹는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니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동물을 먹어온 나를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별생각 없이 먹어온 달걀이며 치킨이며 너무 미안하고 창피스럽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 한 고기를 좀 덜 먹고, 좀 더 나은 사육환경에서 동물을 키우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우선 나부터 내 앞에 놓인 고기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란 동물인지 먼저 살피겠다. 고기를 먹기 전에는 꼭 먹어야겠는지 한 번 더 생각하겠다. 적어도 밥상 위에 놓인 고기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그 역시 나와 똑같이 귀한 생명이었음을 기억하겠다. 이참에 채식주의자가 되겠노라 선언까지는 못하더라도 먹는 음식을 채식 위주로 바꿔나가겠다. 그러면 나도 초식동물의 순한 눈망울을 조금이나마 닮아갈 수 있으려나. 



⑴ “2017년 대한민국의 닭 가상 인터뷰”(인터뷰/박현철 기자),<한겨레신문> 2017년 1월7일, 17쪽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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