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9일 목요일, 맑음
‘이주여성인권센터’ 총회가 있어 아침 버스를 타러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함양을 나가다보니 시간이 빠듯했다. 함양 다음 정거장이 수동이어서 차리리 수동으로 가려고 차를 몰았다. 그런데 버스가 5분 걸리는 거리인데 8시 25분이 되어도 안 온다. 매표소 아저씨에게 물으니 그 차는 곧장 고속도로를 타고 동서울로 가는 차라 안 오고 다행히 50분차가 있으니 끊어 놓은 표로 다음 차를 타겠다고 버스회사에 전화하란다.
별 탈 없이 8시55분에 지리산고속은 왔고 기사 아저씨는 연락을 받았다며 나를 웃으며 맞는다. 나는 보스코가 채근을 해서 2층에서 7시45분에 1층 부엌으로 내려왔었다. 그런데 그냥 나오려다 보니까 보스코 밥도 걸리고 점심 찬도 걸려 이것저것 챙기다 또 늦은 것이다. 그래도 오늘 나는 서울로 여행이라도 가니 다행이지만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으로 심기가 몹시 불편한 보스코는 집에서 맘을 달래야 한다. 또 내가 이재용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도 아니니까....
그는 그렇고 또 다른 걱정은 민주와 정의에 목말라 애타게 기다리는 ‘광장의 민중’과 우국지사들은 이 아픔을 어떻게 달랠꼬, 내 맘도 이리 아린데? 나도 지난 밤 몇 번이나 잠을 깨어 결과를 확인했는데, 지금까지 밤낮없이 고생한 박영수팀은 얼마나 허망할까? 그만큼 우리나라 기득권의 횡포와 불의가 사법부까지 깊이 뿌리박았고, 국민의 배금주의가 그만큼 사회를 병들게 했다. 박근혜의 모든 범행증거가 있지만 범인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니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못한다는 억지라니.... 사법부의 이런행해악을 지켜보는 국민이 더 정신을 차린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번 서울에 가면 병원 두 곳을 방문해야 한다. 요즘 들어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서 주변에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특히 ‘맘마말가리타회’(살레시오 수도자 부모님 모임) 부모님들이 여러분 별세하였다. 그때 마다 수도자들이 함께 와 정성스레 미사와 연도를 바쳐 주고 젊은 수사님들은 식사와 허드렛일까지 자기 집 장례처럼 해낸다.
보스코에게 “여보, 나는 ‘살레시오 상조회’에 가입한 것 같아”라고 하니 웃는다. “살레시오 수도회의 가족정신이 유별나서 다른 회원의 부모님까지 내 부모 보내드리듯 하는 거야”란다. “그렇구나. 부러운 사람은 자식 낳아 하나쯤 살레시오회에 수도자로 보내면 되겠네” 보스코는 대답이 없지만 나는 내심 든든하다. 우리 마지막을 이렇게 정성스레 부향받으며 떠날 수 있다는 맘에....
오후 2시에 제17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정기총회’가 있었다. 한국염 목사가 이 단체를 만들고 초대 대표를 한지 16년. 그니와 함께한 내 상임이사직 세월도 16년 되었고 나뿐만 아니고 김상림 이사와 이숭리 이사도 그니와 엮여 지금까지 해왔다. 가난하게 살며 착한 일을 하는 친구를 떠나지 못한 맘 약한 여인들이다.
처음엔 이주여성을 돌보는 활동이 전무한 상태에서 창신동 언덕 작은 교회 한 켠에 용감하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젠 서울, 충북, 대구, 부산, 전주, 목포, 진주 등지에 지부와 상담소, 쉼터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올해로 대표직을 내놓고 잘 키워놓은 후진 허오영숙 새 대표에게 자리를 넘기고 안심하고 떠날 수 있어 고맙단다. 우리들은 한 텀만 이사직을 더 해달라는 부탁을 수락했다. 참가자 소개, 각 지부 사업설명, 강연, 총회 신구 임원 교체, 대표 이취임식 으로 공식행사가 끝나고 나는 언니가 입원한 순천향병원으로 달려갔다.
언니는 걱정이 해결돼선지 얼굴이 밝아지고 편안해졌다. 내가 오빠의 흉을 보자, 오빠가 기침을 많이 해서 문병을 못 온다고, 오빠 흉 이젠 보지 말라고, 그보다 더 나쁜 사람도 많다고, 자기로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과분하다고 날 달랜다. 엊그제 ‘남편 접근 금지!’ 옐로카드 흔들던 사람 어디 갔지? 그러니까 사랑과 미움은 뗄 수 없는 숙명이고 그 여린 심지로도 버텨 준 언니가 난 좋다.
우이동 집에 들어오니 자정이 다 되었다. 보스코에게 안부전화를 걸고서 일기장을 편다. 한국염 목사의 활동이 작은 민들레 씨앗에서 커다란 나무로 자라올라 친구만으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