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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기춘이도 기춘이 나름이야”
  • 전순란
  • 등록 2017-01-23 10: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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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1일 토요일 맑음


한겨울에 그것도 한밤중에

꽝꽝 어둠 속으로 뛰쳐나가는 아내

문을 탕탕 두드리며

무작정 밖으로 달려나가는 아내

그래, 나가자, 차라리

나가서 우리 함께 꽁꽁 얼어 버리자...... (홍해리, “얼음미라”)


시인이 치매에 걸린 철없는 아내를 보며 얼마나 속이 타서 차라리 미라가 되어버리고 싶었을까? “그렇게 죽었다가 천년 후에나 슬슬 녹아 물이 되어 울음소리도 없이 땅에 스몄다가 산산히 깨져 사라지고” 싶었을까? 어제는 죽어가는 사람으로 하루 종일 가슴 저렸는데, 오늘 아침엔 살아서도 자기를 놓아버린 한 여인을 바라보는 애달픈 시인의 눈물이 또 나를 울린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춘씨가 구속되었네요”라는 경희씨 핸드폰문자에 나는 우리가 잘 아는 가톨릭 운동가 ‘기춘 형제’인줄 알고 보스코에게 달려갔다. “여보, 인터넷 찾아봐 ‘기춘 형제’가 구속됐다는데 왜지?” 보스코가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보며 “김기춘이를 말하겠지 기춘 형제겠어? 기춘이도 기춘이 나름이야. ‘씨’자를 아무한테나 붙여선 안 된다구” 란다.


바로 그 순간 엊저녁 말람씨와 한 ‘내기’가 생각났다. 나한테 느닷없이 전화를 해와 “김기춘이랑 조윤선이랑 구속되게, 안 되게?”라고 물으며 내기를 하잔다. 자기는 ‘구속된다’에 만원씩 걸겠다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구속 안 된다’는 패밖에 선택 여지가 없었다. ‘꼭 구속될 이유가 어디 있느냐?’니까 진짜 죄 있는 이재용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기각을 시켰으니 아무리 염치없는 사법부라도 오늘은 이 두 사람을 구속을 시켜야 국민들에게 안 맞아 죽는단다. 그리고 둘은 구속되었고 그야말로 나는 말도 안 되는 말남씨 강요로 벌금 2만원을 내게 됐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재용의 구속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만원을 낼 자세였으니까.


▲ (사진출처=경향신문)


지난 50여 년간 한국 정치사회의 온갖 못된 짓을 다 꾸며오고 실행해온 것으로 보도되는 김기춘은 여전히 오리발이다. 김기춘의 조작에 의하여 죄 없는 사람들이 고문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수십 년 후 무죄로 판결을 받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죄악을 짓고도 (더구나 스테파노라는 천주교 신자다!) 양심의 가책을 보이지 않으니, 자기의 피해자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으로 천벌이라는 게 있는지 의아하다. 사람이 잘못하면 후회하고 참회함으로써 용서받고, 종교적인 언어를 빌리자면 ‘구원’을 얻는데 후회할 양심마저 없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만든 저주다.


점심에 소담정 도미니카가 새로 산 스마트폰에 대해 물어볼 게 있을 것 같아 오라고 하여 식사하며 몇 가지 사용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니는 TV도 없이 2G폰으로 살다가 갑자기 갤럭시7로 문화혁명을 한 소감을 ‘흑백의 세계에서 칼라의 세계를 만난 것 같다’고 한다. 보스코도 핸드폰을 바꾸고 나서 하던 말이 ‘모든 사람이 자기 손안에 전화기, TV와 신문사, 컴퓨터와 도서관, 극장과 우체국을 한꺼번에 들고 다니는 셈’이라며 몇 십 년 전엔 상상도 못한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갤럭시7을 배우면서


그러다 보니 이젠 각자가 노는 세상이다. 식탁에 둘러앉아서도 각자의 폰을 들여다보는 식구들, 전철에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눈길을 폰에서 떼지 못하는 시민들, 회사에서나 회의석상에서나, 심지어 미사 중에도 문자를 보는 교인들(성경과 매일미사와 성가와 성무일도까지 다 나온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서로 마주보게 만들까?


그런 역기능이 한심하기도 하지만 오늘 이 대한 강추위에 광화문에 모인 30여만 명의 시민들을 보고 폰의 순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역기능보다 순기능을 찾는 일은 각자의 몫이며, 지리산 산속에서도 광화문 집회와 함께하고, 김기춘 조윤선이 수갑차고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눈으로 보고, 미치광이 취임으로 세계평화를 거덜내며 몰락할 미국의 앞날을 내다보기도 한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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